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 Dec 19. 2023

걷는 풍경의 행복

이불속 포근함을 애써 뿌리치고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이제야 진짜 겨울이 왔다. 저번보다 훨씬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감싼다. 주말 내내 집에서 충분한 휴식과 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나와서 그런지, 춥기보다 상쾌하다.

거리의 사람들의 옷차림도 이제 한겨울이다. 아, 모자를 쓰고 나올 걸 그랬나? 점점 귀가 얼어서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곳곳에 소박하게 존재감을 뽐내는 눈 얼음, 볼에 거침없이 맞닿는 한기, 그리고 황량한 거리에서 겨울을 느낀다.


아, 이걸 느낄 수 있어 행복하다. 두 다리가 있어서, 걸을 수 있어서, 이 평범한 거리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감격스럽다. 이 상황 속의 모든 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온전히 의식하고, 그것에 감격하고, 감사한다. 이 모든 걸 완전하게 느낄 때, 나는 벅차오른다.


걷는 길 양쪽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위치하고 있다. 가까워질수록 음식을 조리하는 따뜻한 냄새가 찬기를 뚫고 솔솔 풍겨온다. 벌써 급식 준비를 시작했나 보다. 그 냄새와 그저 평범한 거리의 풍경이 더해져 괜히 갑자기 무슨 소설 속, 애니 속 한 장면을 걷고 있는 것 같다. 머릿속에 학생들을 위해 일찍부터 열심히 점심을 준비하시는 영양사와 조리사 분들이 그려진다. 몇 시간 후 학생들이 항상 애써주시는 그들의 정성과 이 온기를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육교를 건너니 가지치기가 한창이다. 나무들도 이제 본격적으로 월동준비에 들어가나 보다. 윙윙대는 시끄러운 기계소리와 퀴퀴한 냄새를 피해 잽싸게 지나친다. 또 한 번 공공을 위해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한편으로는 나무들은 아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쾌한 음악을 들으며 걷는, 매우 평범하고 매우 익숙한 이 길. 이 길에서 만난 풍경들이 나에겐 행복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밑바탕을 그려준다. 오늘도 역시, 걸어오길 잘했다. 오늘 하루, 느낌이 좋다.


작가의 이전글 그런 날이 온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