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이(딸아이)가 4살이 되던 3월에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껌딱지처럼 나와 하루 종일을 붙어 있던 아이는 아침 9시면 집 앞으로 오는 노란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등원 첫 날 셔틀버스가 도착해 문이 열리고 안에서 선생님이 내리셨다. 나와 가벼운 인사를 하고선 아이를 먼저 태우고 선생님도 차에 올라타셨다. 셔틀의 문이 닫히기 전까지 나의 두 눈은 아이에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어린아이가 나 없이 기관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의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의자에 앉은 아이가 나와 눈이 2초 정도 마주치고는 정면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곧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데 억지로 참느라 입을 앙 다문 모습이었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셔틀버스의 문은 이내 닫혀 버렸다. 아이의 억지로 올라간 입꼬리와 글썽이는 눈은 떠나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도 발걸음을 쉬이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울지 않고 참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게 또 짠해서 맘이 먹먹해져 왔다.
아이는 나의 걱정과는 달리 기관에 적응을 잘하는 모습을 보였다. 식판에 나오는 밥도 편식 없이 싹 다 비운다 했고 친구들과는 잘 어울렸다. 다녀와선 나에게 쪼르르 달려와 누구는 오늘 몬테소리 시간에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었다고, 누구는 점심시간에 국이랑 반찬은 안 먹고 밥만 먹었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주말이 지나고 일요일 저녁이 되면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월요일을 기다렸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다면서... 적응을 잘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 빨리 나에게서 벗어난다 싶어 슬쩍 섭섭한 마음도 생겼다.
아이가 기관에 몇 달을 다녔을 때쯤 부모 참관 수업이 있었다. 신발을 실내화로 바꿔 신고 입구에서 교실로 다가가니 왜 그리도 긴장이 되는 건지 손에 땀까지 났다. 교실문의 네모난 창으로 교실 안쪽이 살짝 보였다. 나는 머리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아이를 찾기 바빴다. 밝게 웃는 선생님의 미소와 함께 교실문이 열렸고 아이를 향한 나의 설렘의 문도 활짝 열렸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아이들이 우리를 향해 일렬로 서있었다. 그 순간 첫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아이와 눈이 마주친 나는 눈물이 왈칵 나올 것만 같았다. 나의 갑작스런 눈물버튼이 당황스러웠다. 어떤 감정인지 온전히 느낄 새도 없이 서있는 아이들과 마주 서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부모들은 바닥에 각자의 자리에 앉았고 아이들은 그대로 서있었다. 담임 선생님의 간단한 인사말과 안내 후 교실에서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들은 노래에 맞추어 그동안 준비한 율동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두 번째 위기가 시작되었다. 아이의 율동을 보는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의 이성과 감성이 따로 노는 듯했다. 아이의 율동은 반박자씩 느린 듯했다. 그때 알았다. 내 아이가 몸치구나.. 아.. 내 딸 맞구나.. 나를 닮은 구석이 있긴 있구나 싶었다. 울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다니...
딸아이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외형은 남편이랑 찍어놓은 붕어빵처럼 닮았다. 데리고 어디를 가면 아무도 내 딸인지 모를 만큼 나와는 딴판으로 생겼다. 그런데 외형 말고 몸 쓰는 것에 쥐약인 건 날 닮은 것이다. 남편은 몸도 유연하고 춤도 잘 추는데 왜 그런 건 날 닮았나 싶었다. 그런 마음도 잠시... 뻣뻣하고 반박자 느려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애써 부지런히 움직이는 모습은 귀엽고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만큼 내 눈물은 더 속절없이 흘러내렸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흐르는 눈물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옆에 있는 다른 엄마, 아빠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얼른 닦아냈지만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속으로 스스로가 참 주책맞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처음으로 배밀이를 하며 방에서 순식간에 사라진 날. 문화센터 수업 중에 처음으로 걸었던 날. 나에게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른 날. 단어에서 문장으로 처음으로 얘기하던 날. 놀이터에서 처음으로 혼자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날. 아이를 데리고 공중목욕탕에 처음으로 간 날. 아이가 내게 보여주었던 처음은 나에게 또 다른 감정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부모 참관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내 품을 떠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에서의 아이를 봤을 때 내 맘은 알 수 없는 벅참으로 부풀어 올랐다. 보는 순간 울컥함과 동시에 내 아이가 저만큼이나 자랐다는 현실을 마주했을 때의 기특함. 그런 감정들은 내가 온전히 아이의 엄마임을 알게 해 주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내가 무엇을 예상하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뛰어넘는 것. 아이는 내가 태어나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의 세상을 내 앞에 펼쳐주었다.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결코 느낄 수 없었을 그런 감정보따리들을.. 더불어 나와 아이는 각자의 시간을 가짐과 동시에 서로가 모르는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