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마음을 간지럽히던 어느 4월.
서울서 회사에 다니는 남동생도 볼 겸 겸사겸사해서 친정 엄마와 함께 3살이 된 딸아이를 데리고 대구서 서울로 올라간 날이었다. 동생은 아직 퇴근 전이었고 엄마와 나는 주인 없는 집에 먼저 들어섰다가 현관 입구에 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책상 위는 물론이고 침대 위와 바닥. 책꽂이 앞까지 온통 책으로 꽉 차 있는 원룸.... 혼자 지내기에 그리 적지 않은 공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이 없어 어디로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몰라 아이 손을 잡고 몇 분을 한참 제자리에 서 있었다.
숨을 한번 크게 몰아 쉬고서는 안으로 일단 걸어 들어갔고 틈이 없는 바닥 한편에 가방을 내려놓고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엄마와 나는 전투적으로 방을 치우기 시작했다. 쓰레기 통을 옆에 갖다 놓고 2시간을 쉬지 않고 버리고 치우고 하다 보니 바닥에는 공간이란 게 생겼고 책꽂이의 책들도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 침대 위에서 내내 얌전히 앉아있던 딸아이가 내 옆으로 와서 앉더니 가만히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보다가 갑자기 나지막한 소리로 "삼성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엄마와 나는 처음엔 제대로 못 들어서 그냥 무슨 말을 하는 거겠거니 싶었는데 한번 더 큰소리로 "엄마. 삼성이다 삼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내가 딸아이에게 "윤아.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삼성?" 그랬더니 딸아이가 "어. 삼성! 저기!"라고 하는 것이다. 어리둥절 한 내가 "윤아. 삼성이 어딨어? 너 뭐 보고 삼성이라고 하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꽂이로 다가가더니 흰색 굵은 파일을 손으로 짚는다. "여기 있잖아. 삼성. 이거 삼성이잖아!"
순간 엄마와 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동시에 딸아이를 쳐다보며 내가 물었다. "윤아. 너 그거 삼성인 거 어떻게 알았어?" 딸아이가 한 번 더 대답한다. "이거! 파란 거 이거 삼성이잖아. 외삼촌 회사! 텔레비전에서 봤어" 파일의 앞쪽에는 파란색의 비스듬한 타원형 모양으로 타원형안에 영어로 삼성이라는 로고가 있었다. 그 당시 삼성의 티비 광고가 나올 때마다 제일 마지막 장면에 그 파란색 타원형의 로고가 함께 비쳤었다. 딸아이는 그 광고에서 봤던 것을 동생의 책꽂이에서 똑같은 걸 발견했고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얘기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머릿속에 아이를 향한 설레발은 속수무책으로 날개를 달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내 딸이 지금 3살인데. 글자도 아직 모르는데 삼성을 안다고? 혹시 내가 영재를 낳았나? 그걸 내가 여태 몰랐고 이렇게 알게 된 건가? 내일 대구 내려가면 당장 영재원을 알아봐야 되나?
아주 짧은 찰나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엄마한테 말했다.
"엄마. 엄마도 신기하지? 윤이가 저걸 저렇게 찾아내는 게. 내 딸 많이 똑똑한가?"
"엄마야.. 나도 깜짝 놀랐다. 저 많은 책들이랑 파일 속에서 저걸 어떻게 발견했겠노. 윤아 그거 뭐라고? 다시 한번 얘기해 봐라."
무덤덤한 아이와는 달리 엄마와 나는 동굴 속에서 다이아몬드라도 발견한 사람 같았다. 진짜 다이아몬드가 맞나 흠칫 놀라고 한편으론 미심쩍은 마음에 원석을 닦고 또 닦아서 요리조리 살피며 확인하는 사람들 같았다. 그러면서 자꾸만 딸아이에게 묻는다. 그게 뭐라고? 다시 한번 얘기해 봐.. 하면서...
3살 된 딸아이는 귀찮은데 자꾸만 물어대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굉장히 성가시다고 느낄 때쯤 반가운 손님처럼 집주인인 외삼촌이 들어오니 얼굴에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그랬던 딸아이는 어느새 키와 덩치가 나보다 더 큰 중학교 2학년이 되어있다. 요즘도 가끔 그때의 그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진짜 영재를 낳은 줄 알았거든. 아마도 내가 영재를 낳은 건 맞는데 자라면서 네가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지금처럼 아주 평범한 청소년이 된 것 같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한다. 그러면 딸아이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표정을 짓고는 어깨를 들썩거릴 뿐 나만큼 그 에피소드에 감흥이 없다.
사실 영재가 아니면 어떠한가. 순간의 찰나로 나를 영재맘으로 만들어 주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잊을만하면 그때로 돌아가 내게 웃음을 주는 걸 보면 내 맘속엔 딸아이가 영원한 영재인걸... 지금은 내 울타리 안에서 그 나이대에 아이들이 할법한 행동들로 하루에도 여러 번 나의 인내심을 확인시키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사춘기도 추억의 한 장면처럼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결국 키우는 과정에서 힘든 마음은 휘발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겨주는 아이는 내가 진짜 어른으로 가는 과정의 디딤돌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