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는 방법을 모르는 싸움

by 앵두나무


올해로 중2가 된 딸아이는 요즘 나와 그야말로 살벌한 전쟁 중이다. 초등 6학년때부터 슬슬 시작된 사춘기는 이제 점점 그 정점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하다. 외동딸로 자란 아이는 어릴 때부터 부모말을 꽤 잘 듣고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잔소리하지 않아도 곧잘 하는 성실한 아이였다. 그런 내 딸이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보며 가슴 한켠이 소리 없이 내려앉는 경험을 요즘 들어 자주 하곤 한다.


학교 갔다 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식 먹으며 조잘조잘 잘도 얘기했었는데 이제는 간식을 들고서는 자기 방으로 곧장 들어간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볼라치면 손사래를 치며 방밖으로 나를 몰아내기 바쁘다.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금. 토요일엔 인스타 라이브로 친구들과 새벽까지 수다를 떨다 늦게 잠들 때가 많아졌다. 주말이면 화장을 곱게 하고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친구를 만나 마라탕을 먹고 디저트로 탕후루를 사 먹는 아이. 친구들과 찜질방도 가고 놀이공원도 함께 다닌다.


엄마 아빠와 함께 했던 많은 것들을 이제 친구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처음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휴일이 되어 학교와 학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면 아이가 내 애인이라도 되는냥 나는 아이가 부모와 시간을 함께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생각했고 행동했다. 오히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을 답답하고 재미없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그걸 피부로 느낀 나는 믿었던 애인에게 바람맞은 것처럼 섭섭하고 맘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리곤 아이가 돌아오겠다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죄 없는 핸드폰만 연신 만지작 거렸다. 아이가 밖에서 자기만의 세상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여전히 돌아올 애인을 기다리는 마음이었다. 덕분에 주말엔 15년 차 부부만 덩그러니 집에 남았다. 항상 아이와 함께였다가 어느 순간 부부만 남겨지니 중년의 부부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날들이 있었다. 그러다 지금은 부부가 브런치를 먹으러 가거나 동네 밥집을 찾아다니며 아이 없는 일상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올해 봄쯤의 일이다. 저녁시간 학원을 다녀온 아이가 간식을 먹겠다며 그릇째 들고선 거실 소파 앞의 테이블에 올려놓길래 부스러기가 많이 생기니 거기 말고 식탁에서 먹으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대답이 없었고 3번쯤 얘기했을까.. 그릇을 들고는 놓을 곳도 없는 자기 방의 터져나가는 책상에서 먹겠다며 일어서길래 식탁에서 먹으라고 큰 소리로 한마디 했더니 그릇을 들고 식탁으로 오며 한다는 말이 '아.. 밥맛 떨어져'...

순간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그 찰나에 나는 나의 감정을 참을 수가 없어 아이에게 다가가서 등을 세게 후려쳤다. 너 지금 뭐라 했냐고. 그게 지금 엄마한테 할 소리냐고. 이제는 하다 하다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도 구분하지 못하냐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이는 듣고만 있었다.


사람들이 아무리 사춘기 무섭다 무섭다며 떠들어대도 내 딸아이만큼은 선을 넘지 않을 거란 굳건한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산산조각 난 순간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는 아이를 보며 내가 지금까지 키워온 내 딸이 맞나 싶었고 내 자신이 부정당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제대로 키워내지 못해 저런 소리를 하는 건가 싶은 맘이 들기도 했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와 처음으로 3일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한 말이라고는 '밥 먹어' 그게 다였다. 간간히 아이는 내게 와서 콩이(우리 집 반려견) 얘기를 꺼낸 적도 있었는데 내가 단답으로 대답만 하니 멋쩍게 자기 방으로 돌어간 적도 있었다.


그 3일이 나에겐 30일보다 더 길게 느껴졌고 3일 동안 혼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이 딸아이는 내 자식이지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 내가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아이의 모든 것을 다 알려고 하는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내가 다 안다고 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결해 줄 필요도 없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아이의 인생을 내가 대신 살아줄 수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걸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나의 바닥이 어디까지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일이기도 했다. 아이가 커가면서 사춘기를 거쳐 온전한 성인으로 자라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나 또한 결혼 후 자연스레 부모가 되었지만 진짜 부모가 되기 위해선 성장통을 겪어야만 했다. 그 성장통은 과거형이 아닌 진행형인 것을 느끼는 것이 요즘 나의 일상이다. 그렇게 간섭을 덜하고 관심을 줄였더니 서로가 서로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소통은 내가 원할 때가 아니라 아이가 원할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예전의 모습처럼 한없이 상냥스럽고 귀엽다가도 어느 순간 돌변해서 나에게 눈을 부릅뜨며 목소리를 높이는 날이면 이제는 제법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아직도 나는 그저 그런 보통의 인간의 모습으로 아이에게 날이 선 모습을 하게 된다. 진짜 부모가 된다는 건 나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인지.. 내가 한 사람의 인간을 얼마나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지 시험에 들게 하는 것만 같다. 아이를 혼내고 나서는 그때 한 번만 더 참을 걸 하며 후회하기도 하고, 방에서 잠들어 있는 아이를 바라볼 때면 이마에 여드름 자국이 있지만 볼에는 아직 솜털이 보송한 걸 보면서 내 눈엔 세 살 때의 모습이 그대로인 것만 같아 여전히 품 안의 자식 같기도 하다.



며칠 전 읽은 책에 나온 글귀가 이런 나의 마음을 이미 알아채고서 차분히 나를 달래는 것 같았다.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인생 자체의 아이들이며 딸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서 오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에게 속한 것은 아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을 줘도 되지만 당신의 생각을 주어선 안 된다.

그들의 마음은 당신이 방문할 수 없는, 꿈속에서도 방문할 수 없는 내일의 집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칼린 지브란의 <예언자> 중에서 -



그저 보통의 엄마인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다짐한다. 지금 불통의 시간을 견딘다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와서 나의 존재가 필요하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주자고.. 언제든 늘 이곳에서 변함없이 너를 믿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때까지.....


늘 그렇듯 아이를 향한 나의 마음은 질걸 알면서도 매번 출발선에 서게 되는 운동선수같은 마음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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