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손이 가야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아이는 이제 혼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혼자서 하길 그 어느 때보다 원하고 있었다. 아이는 자라서 어느새 내 키보다 훌쩍 더 커버렸고 커진 덩치만큼 나에게서 조금씩 벗어나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런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나는 내 안에 자리 잡은 아이의 자리를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그 자리는 꽤나 크고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춘기 아이의 자리를 덜어내니 그 안에 커다란 웅덩이가 생겼고 나는 내 안의 웅덩이를 채우고 싶어졌다. 아니 채워야만 했다.
아이가 자란 만큼 나는 얼마나 자랐는지.. 아이가 성장한 만큼 나는 얼마나 성숙해졌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내가 무엇을 하며 시간을 쌓아왔는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그저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 아이에게 나의 모든 시간을 쏟아부은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런 내 자신이 답답해졌고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생각해 보았지만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무기력이란 게 찾아왔다. 무기력은 나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도 즐겁지 않았고 누군가를 만나 실컷 수다를 떨다오면 재미는 잠시 허무함이 밀려왔다. 혼자 있는 시간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마음 따라 몸도 같이 늘어졌고 타인에 대한 관심도 줄었다. 세상 모든 것에 무관심해졌다.
하지만 인생은 유한하기에 따분하고 답답한 마음을 안고 남은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나는 독서모임에 가입해 사람들과 함께 책을 읽고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를 알아가는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글을 쓰다 보니 예전의 나를 다시 마주할 수 있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글로 쓰다 보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건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두려워하는지. 나는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서서히 알아가게 되었다. 내가 들여다보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시간의 감정들이 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낮이든 밤이든 글을 쓰는 시간 동안 나는 오롯이 나로 존재할 수 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 안에 무엇인가로 차오른 것을 글로 쓰고 나면 묵혔던 것들을 쏟아내듯 섭섭하기보다 속 시원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나는 무기력할 틈이 없었다. 나의 온 신경은 재미난 책을 찾아 읽기에 바빴고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 써내려 가야 할지 생각하는데 시간을 할애했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아이를 키워온 그 긴 시간들이 그저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글을 쓰며 알게 되었다.
내가 그 시간을 지나온 것이 나의 글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깨달음을 주었는지...
쓰지 않아 미처 몰랐을 뿐이었다.
어떤 시간이든 어떤 경험이든 헛된 것은 없듯이 나는 내가 겪어온 시간만큼 나를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모두 나만의 글이 될 수 있었다. 말로 하는 표현이 유독 약한 나는 글로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좀 더 수월한 편이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마주하는 것보다 글로 보는 나는 좀 더 다정해진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가족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글로는 맘을 그대로 전할 수 있었다. 실제의 나보다 글로 보이는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글에서처럼 실존하는 나도 다정한 사람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글과 같은 사람이기 위해 멈칫하던 마음들도 용기를 내어보게 되고 상대에게 다정한 말을 한 번 더 건네게 된다.
글을 쓰며 조금씩 나아지는 사람이 된다면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서 나의 모습도 기대가 된다. 품위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많은 말을 하지 않더라도 필요한 말을 할 줄 알고 타인의 말을 듣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 되고 싶다. 적지 않은 나이에 글쓰기를 시작했지만 나는 나의 나이가 좋다. 사람과의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알고, 생활에 필요하지만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안다. 지금보다 더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으면 그에 따른 세상을 보는 눈은 더 확장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 다양하고 더 자유로운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 미래의 행복을 끌어다 지금 미리 행복한 것처럼 입가에 옅은 미소가 자연스레 퍼진다.
사춘기 딸과 잘 지내야지라는 매일의 약속이 무색할 만큼 아이의 따박따박 말대꾸에 여전히 버럭하고 자주 속상해하지만 그 사춘기 덕분에 내 안의 자유를 찾게 되었다.
"인간은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아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그리고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아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아! 그러려면 더 깊숙한 곳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 로런스의 '상황과 이야기' 중에서 >
그래서 오늘도 나는 더 깊숙한 곳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더불어 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딸의 사춘기여~~ 땡큐 쏘 머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