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순씨를 아세요?

by 앵두나무


엄마랑 나는 일주일에 적게는 2일, 많게는 3~4일 정도 통화를 하고 지낸다. 남편은 엄마랑 무슨 얘기를 할게 그렇게 많냐고 하는데 하루 일과 중 어떤 일에 대해 얘기하는 날도 있고, 고민거리가 있거나 그날 뉴스거리에 대해서 얘기하는 날도 있다.

서로의 일상을 자주 공유하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엄마의 개인적인 취향은 얼마나 알고 있는지.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모습은 어땠는지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로부터 듣지 못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졌다. 나의 엄마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오롯이 여자 옥순 씨는 어떤 사람인지 들어보기로 했다.


하늘의 구름이 한 폭의 그림 같던 날 엄마와 스타벅스에서 만났다. 엄마는 은빛의 브로치를 단 검은색 재킷에 회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인지 갈증이 난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커피를 즐기지 않는 엄마는 자몽 허니 블랙티를 시켰다. 마주 보고 앉은 엄마와 나는 전날 엄마가 부산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내 나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Q.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요?

A. 예전 젊었을 때는 분위기 있어서 가을, 겨울이 좋았는데 나이 들어갈수록 봄이 좋더라. 봄은 새롭고 희망적이고 새싹도 나고 따뜻하니까 좋아지더라고.. 나이 들수록 새로운 것이 별로 없으니까 뭔가 기대를 하게 되고 그래서 봄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한 것 같다.


Q.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예요?

A. 음식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나는 상추쌈이 그렇게 좋다. 마트 같은 곳에서 파는 짙은 색의 상추 말고 난전의 할머니들이 직접 길러서 파는 잎이 작고 보들보들하고 얇은 상추가 좋다. 한 번에 대여섯 장씩 얹어서 먹어야 하는 거 그런 거. 거기에 멸치 다시물을 내고 빡빡한 된장을 끓여서 같이 먹으면 딴 반찬 없어도 밥 한 그릇 뚝딱 먹을 수 있지. 먹고 나면 속도 편하고 배도 부르고.. 은근히 건강식이다.

나는 그런 보들한 상추를 보면 집 냉장고에 있는데도 또 사서 넣어 놓고 싶다. 내가 아무것도 욕심이 없는데 상추는 볼 때마다 욕심이 난다.


Q. 엄마의 이상형은 어떤 사람인가요?

A. 내 이상형? 내 이상형은 인물(생김새)은 전혀 중요하지 않고 감성적이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 그리고 차분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사람이다.


Q. 그럼 아빠는 엄마의 이상형에 가까웠나요?

A. 아빠가 말수가 적고 차분하잖아. 연애 때는 책도 많이 읽었고 사람이 진솔하고 의리가 있었지. 순정 파고 거짓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게 좋았지. 그런데 살다 보면 단점도 보이고 그런 게 싫은 적도 많았고 그런 점들 때문에 힘든 적도 있었지만 장점이 더 많은 사람이었지.


Q. 아빠 돌아가시고 가장 보고 싶었던 때는 언제였어요?

A. 설인이(남동생) 장가갔을 때, 승현이(남동생 아들) 태어났을 때, 집안에 큰일 있을 때랑 명절 때가 가장 생각이 많이 나지.


Q. 엄마가 어렸을 때에 있었던 일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예요?

A. 내가 학교 들어가기 전 5~6살 때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그때 진짜 이쁘장하게 생겼었거든. 우리 외갓집.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가 그 당시에 지역에서 제일 유명한 중국집을 하셨는데 엄청 부자셨거든. 우리 외할머니는 부지런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욕심도 많으신 분이셨지. 그래서 어렸을 적 외할머니의 식당에 가면 거기에 오는 손님들이며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다들 예쁘다고 안아주고 얼굴도 한 번씩 쓰다듬고 했었지. 내가 밥 먹고 나면 이모가 내 이빨에 끼인 음식물도 빼줄 정도로 나를 예뻐했고.... 그 당시 더블 단추가 달린 빨간 점퍼를 외삼촌이 사주셨는데 나는 아직도 그걸 잊지 못하고 있거든. 하얀 운동화도 사주셨는데 그때는 그런 게 참 귀했거든.. 내가 이 나이 먹고 보니까 내가 인생을 살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은 때는 그때인 것 같더라고. 아주 어렸을 적의 일인데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한 걸 보면 내가 그때 받은 사랑이 되게 좋았던 거 같아. 그래서 사람은 어렸을 때 받은 사랑이 참 중요한 것 같아. 그 기억으로 살게도 하니까..


Q. 다음 생애에 다시 태어나면 하고 싶은 것이나 이루고 싶은 게 있나요?

A. 글쎄... 나는 그런 생각은 안 해봤는데 다시 태어나고 싶지는 않네. 한 세상 살아봤으면 그걸로 충분하지 뭐.. 나는 젊었을 때부터 그렇게 큰 욕심이 없어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어떻게 그렇게 욕심이 없을 수 있냐고 하는데 나한테는 그게 노력하거나 힘든 일이 아니거든. 지금까지도 큰 욕심 없이 살아서 그런지 뭔가를 더 크게 이루고 싶다거나 바라는 건 없고 그냥 지금 살아 있는 동안 건강하게 살다가 자식들 고생 안 시키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살지.


Q. 그럼 혹시라도 다시 태어난다면 결혼은 할 건가요?

A. 결혼에 초점을 둔다기보다는 나는 자식은 낳고 싶거든. 그래서 결혼을 해야 될 거 같네. 남자랑 사는 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 비슷할 것 같은데.. 자식은 느낌이 또 달라서 나에게 있어서 가장 든든하고 믿고 얘기할 수 있는 존재라 소중하니까..

자식은 낳고 싶지. 자식은 좋아..



엄마의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알던 엄마와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다만 내가 엄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여겼지만 나는 엄마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엄마도 엄마가 되기 이전에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자 손녀, 조카였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분위기 있는 계절을 좋아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생명력 있는 것이 더 좋아졌다고 했다. 그런 부분은 내가 엄마에게 물어보지 않아 알지 못했던 것들이었다. 순정파인 아빠를 만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결혼을 했으며 나와 내 동생을 낳고 키우면서 엄마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돌아가신 아빠가 생각나는 때를 얘기할 때 엄마는 담담하게 얘기했는데 듣는 나는 왜인지 울컥하는 맘을 추스리기가 힘들었다. 아마도 그런 얘기를 하는 동안 아빠가 그리워서였겠지. 엄마의 말을 받아 적는 노트 위로 훔치기도 전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문득 그리워지는 누군가가 있을 때는 그 사람의 특징이나 좋았던 점에 대해 그때 그랬었다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남겨진 자의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괜찮다. 자연스러운 거니까...



'누구도 그것, 그러니까 완전한 진실을 알 수는 없었다. 그건 너무 광대하고 복잡했다. "우리가 아는 건 전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불과해요." 프랭크는 그렇게 말했다. 진실이나 사실 같은 것은 사실 없다는 것이었다.'

< 제임스 설터의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중에서 >



내가 지금의 엄마 나이쯤 되면 엄마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자신은 없다. 나도 가끔 내 맘을 잘 모를 때가 있는데 내가 나 아닌 타인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인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자식은 낳고 싶다고 했을 때 약간 놀랐고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전부터 뼛속까지 엄마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내 딸을 낳아 키워보니 그게 어떤 마음인지 희미하게 알 것 같았다. 여자라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부모라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뒤섞인 정확하게 말로 표현해 내기 어려운 그런 마음들 일 것이다.


카페에서 나와 따뜻한 햇살아래 엄마의 고운 피부가 더 좋아 보였다. 내가 더 나이가 들어도 엄마의 그날 모습은 선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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