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을 아세요?

by 앵두나무


음력으로 8월 5일. 매해 추석 10일 전. 그러니까 어제가 엄마의 생신날이었다.

아침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눈을 떠 등교하는 딸아이를 깨우기 전에 제일 먼저 한 것은 엄마에게 생신 축하한다는 메시지의 카톡을 보낸 것이었다. 톡을 보내고 나서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는 것이 예전과는 다른 온도가 된 것이...


내가 어렸을 적 엄마는 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그 와중에도 내가 아주 소소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들이 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뚜껑이 있는 네모난 프라이팬에 카스테라를 매번 구워주셨다.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맛이었는데 먹기 전부터 카스테라 구워지는 냄새가 나의 코를 자극했다. 말랑말랑 폭신하면서 고소한 버터향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고 대문밖에서도 그 냄새가 나면 오늘은 엄마가 카스테라를 굽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집안으로 들어갔었다. 방금 구워진 카스테라를 잘라 한입 베어 물면 입안에 가득 찬 카스테라만큼 내 맘도 함께 보송보송 채워지는 듯했다. 어느 빵집에 들어가든 카스테라를 볼 때면 그 시절의 엄마표 카스테라가 늘 생각난다.


고등학생 때쯤이었을까... 엄마랑 내가 함께 좌석버스(좌석 두 개가 옆으로 나란히 붙어있는 버스)를 탄 적이 있다. 그날은 무더위가 전국을 강타한 날로 밖에 5분만 서있으면 땀이 절로 흘러내리는 날씨였다. 버스에 올라탔을 때는 마치 천국에 들어선 것 같았다.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어놔서 머릿속에 채워진 땀까지 식혀주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10분쯤 지났을까... 너무 센 에어컨 바람에 머리가 아파왔고 팔과 허벅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너무 춥다는 나의 말에 엄마는 가방을 뒤적이더니 접힌 손수건을 꺼내어 펴고서 나의 허벅지와 무릎을 덮어주었다. 순간 나는 엄마더러 뭐 하는 거냐고.. 이게 뭐냐고 투덜거렸는데 그런 나에게 엄마는 이거라도 하면 훨씬 덜 추울 거라며.. 가만있어보라고 했다. 엄마가 손수건에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나의 허벅지는 더 이상 얼얼하지 않았다. 이제 덜 춥냐는 엄마의 물음에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면서 투덜거릴 줄만 아는 아이였다.


추운 겨울 학교에서 돌아온 내가 손이 너무 시리다고 하면 엄마는 엄마의 두 팔을 들어 올리고 나의 양손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우고는 다시 팔을 내렸다. 순식간에 엄마의 따스한 체온이 나의 두 손으로 전해졌다. 그 순간의 따스함은 손을 데워주기엔 충분했고 한파의 서늘해진 나의 마음까지 데워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온풍기 따위랑은 비교되지 않는 따뜻함이었다. 그 뒤로도 엄마는 겨울날 내가 유독 손이 시리다고 하면 엄마의 겨드랑이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몇십 년이 흐른 후 나의 딸이 학교에서 돌아온 어느 겨울날.. 날 선 바람에 양볼이 빨갛게 얼고 손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진 채 집으로 들어왔다. 나는 주춤하는 기색 없이 나의 양쪽 팔꿈치를 들어 딸아이의 손을 내 겨드랑이에 끼웠다. 딸아이는 놀란 토끼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으흐흐흐~~ 아... 따뜻하다.. 근데 엄마는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어?"라고 물었다. 나는 나의 엄마가 나에게 그렇게 해주었노라 얘기했고 딸아이는 나의 겨드랑이에서 자신의 손을 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 뒤로도 여러 번.. 한파가 몰아친 날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는 나의 겨드랑이에 자기 손을 쑥 끼워 넣었다. 나의 겨드랑이가 마치 자신의 몸인 것처럼... 그렇게 한기가 좀 가시고 나면 나는 내 두 손을 비벼서 아이의 차가운 볼과 귀에 갖다 댄다. 아이는 얌전한 강아지처럼 그저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서 느낀 그 따스함을 딸아이도 똑같이 느끼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내가 엄마에게서 받은 작지만 그 무엇보다 행복했던 기억을 나는 나의 딸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있었다. 그건 생각하거나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의 몸이 자연스레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이의 밥에 생선가시를 발라 얹어주고 뜨거운 국물은 입으로 쉴 새 없이 불어 식혀주는 것처럼 너무 당연스레 하게 되거나 해주고 싶은 것... 아마도 자식을 향한 엄마의 마음일 것이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고 기억에 남는 건 엄마가 사준 어떤 물건이 아니라 엄마가 내게 자연스레 보여준 그런 마음들이었다.


내가 엄마의 딸로만 존재했을 때의 예전이나 내가 내 딸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까지도 엄마는 여전히 내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렇게 있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 내가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안다. 나에게 그런 엄마가 있어 얼마나 다행이고 나는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까지도.... 그런 맘과 동시에 나도 나의 딸에게 그런 엄마이고 싶다는 바람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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