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6일 오후 나에게 사진이 전송되었다며 카톡이 왔다.
엄마에게서 온 메시지다.
사진을 열어보니 '사전연명의료 의향서'였다. 사전연명의료 의향서란 19세 이상의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치료) 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을 말한다. 엄마가 예전부터 말로는 여러 번 얘기하셨지만 등록기관에 가서 서류를 작성하고 왔다는 말은 안 하셨었는데 나에게 전송된 메시지는 이미 모든 것이 문서화된 의향서였고 신용카드 모양이었다. 등록증에는 성명, 등록번호, 등록일이 기재되어 있었다. 카톡을 보낸 후 2분쯤 지났을까 엄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아, 내가 방금 카톡 보냈는데 사진 봐봐라. 보고 그거 따로 저장해 놔라."
"엄마 이거 언제 가서 했는데? 날짜 보니까 4월이네."
"어. 그거 저번달에 가서 신청했는데 며칠 전에 나왔다. 등록증 받으러 가니까 담당 직원이 등록증 가지고만 있지 말고 자식들 중 누구 한 명한테라도 꼭 사진으로 보내서 저장하라고 시키더라."
"어.. 알았어요."
"그래. 엄마 지금 나가야 되니까 끊는다. 이따 통화하자"
전화를 끊고 나서 엄마가 보내온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앉아있었다. 엄마가 연명치료는 절대 안 한다고 한건 이미 수년 전부터 늘 말씀하셨었다. 연명치료는 병실 침대에 의식 없이 누워있는 엄마에게도. 그걸 의무감으로든 희망고문으로든 유지하는 자식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어떤 식으로든 도움도 위로도 안되니 명심하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었다. 그 말을 들을 때는 자연스레 그렇게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머리로는 이상적이라고 여겼지만 막상 등록증을 두 눈으로 보는 순간 마음이 이상했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부모와의 시간은 하루씩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그걸 매 순간이 아닌 때때로나 어느 순간 문득 깨닫는다는 것이다. 나도 딸아이를 낳아 키운 지 이제 15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엄마의 딸이기도 하다.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공기 같은 존재다.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모르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혹여라도 엄마의 연명치료 의향서를 병원 측에 내밀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과연 쉽게 내밀 수 있을까... 그 과정에서 의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나는 이미 아빠의 부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느 순간 예기치 않게 가슴속을 파고드는지 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미리 준비하고 있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이 아니며 또 다른 그리움이나 후회 등으로 남기도 한다. 어쩌면 한번 겪어봤기 때문에 더 자신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싶어서...
엄마가 등록증을 만들기 위해 서류를 작성할 때 어떤 마음이셨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내가 내 딸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처럼 엄마도 그런 마음으로 작성하셨겠지.. 내가 자식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보니 내 엄마의 마음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엄마의 그 마음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가 없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내 자식이 나의 마음을 다 헤아리지 못하는 거랑 같은 이치겠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간단하다. 엄마와 자주 만나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 것, 엄마가 같이 옷을 사러 가자고 하면 가서 엄마에게 어울리는 것으로 골라 주는 것, 엄마가 좋아하는 공연이나 콘서트를 같이 보러 가는 것, 엄마가 좋아하는 꽃사진을 찍어 보내 주는 것, 날이 좋은 봄날엔 함께 벚꽃을 보러 가고 가을이면 단풍을 보러 가는 것, 엄마가 봄. 가을로 운동삼아 걷는 저수지 산책길을 함께 걷는 것,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과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손녀딸의 사진을 찍어 보내고 가끔 통화로 할머니의 목소리도 듣게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지만 언제일지 모르는 부모와의 헤어짐을 불안해하거나 걱정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엄마의 일상을 자주 함께 나누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