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

by 앵두나무

엄마 집에서 우리 집으로 온 지 세 시간쯤 되었을까... 아빠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영아.. 집에 갈 갔나?"

"네.. 아빠. 잘 왔죠. 근데 왜?"

"너 가고 나서 엄마가 한참을 집에 안 들어와서 전화했더니 영대 뒷산에 가있다는 거라.. 그런데 네 엄마 목소리가 이상해서 물었더니 말을 못 하고 꺼억꺼억 울더라'"

"어? 엄마가 울었다고요? 왜? "

"너랑 윤이랑 있다가 가니까 시원섭섭해서 그렇겠지. 앞으로 엄마한테 전화 자주 해라."

"네. 알았어요...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침대 위에서 자고 있는 딸아이 옆에 한참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엄마가 울었다고? 그것도 꺼억꺼억 소리 내서? 수화기 너머로 아빠한테 그 말을 들었을 때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통화를 끝내고 조금 전 아빠의 말들을 곱씹어보니 왜 더 가슴이 미어지는 걸까... 나는 서윤(딸) 이를 자연 분만으로 낳고 엄마 집으로 가서 산후조리를 4주간 하고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결혼하면서 홀시어머님과 함께 살았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 조리원에 가지 않고 산후 도우미 아줌마의 도움을 받으며 엄마 집에서 조리를 했었다.


아이를 임신했을 때 입덧을 너무 심하게 한 탓에 난 출산하는 날만을 기다렸다. 무거운 몸도 가벼워지고 입덧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길 기대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부른 배는 들어갔고 입덧도 사라졌지만 내 눈앞에 있는 아이는 뱃속에 있을 때처럼 한 몸이어야 했고 오히려 할 일은 더 많아졌다. 엄마는 그런 내 옆에서 아이를 엄마 배 위에 올려놓고 낮잠을 재우며 나는 방에 들어가 쉬라고 했다. 깊은 잠을 자지 못하는 아이가 새벽에 2시간 간격으로 깨면 엄마가 나 대신 아이를 안아 다시 재우곤 했다. 아이의 목욕도 엄마가 씻겨주는 걸 나는 뒷짐 지고 뒤에서 바라보기만 했다. 출산 후 나의 몸이 회복되는 동안 엄마는 말없이 나의 건강을 챙겼고 매번 나의 미역국을 끓여주었다. 낮에는 물론이고 밤에도 깊은 잠을 못 잔 지 한 달쯤이 되었을 때 나는 시어머님과 신랑이 있는 나의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엄마도 나도 아이를 데리고 엄마집으로 온 첫날과 다르지 않게 밥을 먹고 그동안 썼던 아이와 내 물건들을 하나씩 챙기기 시작했다. 곧 남편이 나와 아이를 데리러 왔고 남편은 서둘러 차에 짐들을 가져다 두기 시작했다. 엄마가 딸아이를 안고 나는 내 작은 소지품 가방 하나만 든 채 차에 몸을 실었다. 엄마는 안고 있는 딸아이를 뒷 좌석에 앉은 나에게 안겼다. 그런데 나는 차마 그 순간 엄마 얼굴을 쳐다보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입을 다물고 어금니를 꽉 깨문 채로 문을 닫고 창문을 내렸다. 엄마가 서서 나와 나의 딸을 쳐다본다. 엄마의 눈이 불그레하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다만 한 달 전보다 훨씬 형편없어진 엄마의 얼굴이 그때 보였다. 남편이 엄마에게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는 인사를 하고 나는 내린 차 창문 밖으로 손을 내밀어 엄마에게 흔들며 빨리 들어가라고 했다. '갈게'라는 인사와 함께 내가 창문을 올리자 남편은 차를 운전해 출발했다. 엄마는 우리가 출발하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나는 딱 한번 엄마 쪽으로 뒤돌아보았다. 이내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기가 힘들었다. 이제 한 달 된 아이를 안고서 나는 하염없이 울기 시작했다. 흐르는 눈물을 닦기도 전에 또 눈물이 흘렀다.


나는 결혼을 했고 나의 보호자가 된 남편이 있다. 그리고 내 무릎엔 내가 배 아파 낳은 내 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염없이 흐르는 내 눈물은 무엇일까...

엄마가 나를 두고 떠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엄마를 아주 못 보는 것도 아닌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은 이 감정이 도대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려 고아가 되면 그런 심정일까.. 그렇게 한참을 울고 집에 도착했을 때쯤엔 맘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았다. 그러다 아빠의 전화를 받았고 나는 다시 울컥하는 맘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결혼 전 나는 엄마랑 살면서 엄마의 눈물을 제대로 본적이 거의 없다. 그만큼 엄마는 자식에게 자신의 힘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 내가 어릴 때 엄마는 항상 엄하고 무서웠던 분이셨고 원리 원칙을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셨다. 타인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는 법도 없었다. 그런 엄마가 나와 내 딸이 함께 한 달을 살고 간 후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소리 내어 꺼억꺼억 울었다 하셨다. 엄마는 술을 전혀 못 드시는 분이다. 술 없이는 그날 잠을 못 잘 거 같아 막걸리를 드셨다는 엄마. 한참을 실컷 울고서 집으로 돌아와 저녁도 먹지 않고 주무셨다 했다.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술에 취한 듯 피곤에 취한 듯 그렇게 잠을 청했다는 걸 나는 시간이 꽤 지나고 나서야 엄마를 통해 들을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잘 살필 만큼 성숙하지 못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직장생활로 인해 떨어져 지냈기 때문에 가까이서 엄마의 맘을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어쩌면 내 머릿속에 엄마는 학창 시절 속의 그때의 엄마로 채워져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성인이 되어 엄마와 아주 가까이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엄마의 울음을 알고 난 뒤부터 나는 엄마가 지나온 시간들이 그제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집으로 돌아와 아이 목욕을 시킬 때, 밤에도 어김없이 두 시간에 한 번씩 깨는 아이를 토닥일 때, 아이 낮잠을 재울 때 침대에 기대어 앉아 내 배에다 올려놓고 아이의 등을 두들길 때. 나는 나의 아이를 보며 나의 엄마를 떠올렸고 엄마가 보냈을 그 시간을 거쳐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어렸을 땐 엄마의 손으로 내가 키워졌는데 어른이 되어서는 엄마의 마음으로 내가 채워진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알아차릴 때쯤 이 마음은 또 나의 딸에게로 전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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