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인생이든 한 번쯤은...

by 앵두나무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영아.. 엄만데.. "

"어 엄마. 아침시간에 웬일로?"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려고 오른손을 올리려는데 팔이 안 올라가는 거라.. 이상해 가지고 세수하려고 해도 오른팔이 내 맘대로 안 움직여져 가지고..... "

"어?? 뭐라고?? 팔이 갑자기 안 움직인다고? 그래서 지금 어딘데? 집이가?"

"아니.. 병원인데.. 와서 검사는 받았고 결과 기다리고 있다."

"엄마 혼자 병원에 갔다고?"

"아니 사장님(엄마 사무실의 동료)한테 전화했더니 태우러 오셨더라고. 그래서 병원 와서 바로 검사부터 했다."

"아니.. 그런 일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연락을 해야지!"

"니는 윤이 학교도 보내야 하고 아침에 바쁘니까.."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팔 못 움직이나? 일단 내가 병원으로 갈게. 어느 병원인데?"


병원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더디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7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음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나는 재촉하듯 빠른 발걸음으로 병실 쪽으로 걸었다. 병실에 들어가기 전 왼편에 휴게실이 있었다. 기다란 소파들과 커다란 티브이가 있었다. 그곳에 환자복을 입고서 링거를 꽂고 앉아 있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나는 엄마를 부르며 다가갔다. 뒤를 돌아보는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에 눈물이 흐를 듯 찰랑였지만 난 결코 울지 않았다. 울 수 없었다. 엄마 앞에서 차마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엄마는 나에게 희미한 미소를 보였고 나는 엄마 옆에 가서 앉았다. 왜 나와있냐는 나의 물음에 엄마는 병실에 있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어제저녁에 자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증상이 없었고 잠도 잘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하려고 오른손을 뻗었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더란다. 순간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구나 싶었고 왼손으로 양치를 하고 왼손으로 반쪽짜리 세수를 했다고 했다. 병원에서 여러 검사를 했고 일단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는 엄마 손을 잡았고 어깨부터 시작해 팔과 손까지 주무르기 시작했다. 엄마 손을 잡고 주무르면서 엄마 손을 자세히 보니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엄마 손도 이제 많이 늙었구나 싶은 생각과 함께 엄마 옆에 앉아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안도했다.


한 시간이 조금 더 흘렀고 주치의가 보호자를 불렀다. 나는 의사 선생님 앞에 긴장되고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앉았고 무슨 얘길 하실지 알 수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의 병명을 얘기하셨다. 엄마는 '허혈성 뇌졸중'으로 팔의 감각이상이 온 것 같다고 하셨다. 혹시나 수술이 필요한 상황을 대비해 대학병원에도 미리 연락을 해놓았는데 CT와 MRI의 판독 결과 혈관이 부었거나 막힌 곳이 없다고 했다. 놓친 부분이 있나 해서 두 번이나 다시 훑었지만 꽈리 같은 것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아마도 아주 잠깐 0.5~1초의 시간 동안 막혔다가 다시 원래대로 피가 흘러간 거 같다면서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것 같다고 하셨다. 이런 경우 전조 증상은 안 나타나는 경우가 많고 나타나더라도 본인이 모르고 지나가는 수가 있다고 하셨다. 일단 몇 초의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일단 증상이 나타나서 오른쪽 팔의 감각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에 입원해서 원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치료를 받으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을 듣고 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무거운 듯 가벼웠지만 마음은 돌덩이를 쌓아놓은 듯 무거웠다. 병실에 있는 엄마에게 가서 선생님의 말을 전하며 앞으로 치료를 열심히 받으면 괜찮아질 거니까 걱정은 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었다. 엄마와 한참의 시간을 보냈을까... 집으로 돌아오기 전 엄마는 씻어야겠다고 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욕실에 들어갔다. 엄마는 양치를 하겠다고 오른손을 뻗었지만 역시나 말을 듣지 않았다. 엄마는 왼손으로 양치를 하면 된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게 둘 수는 없었다. 엄마의 목에 수건을 두르고 엄마 곁에 바짝 다가선 나는 엄마의 양치를 내 손으로 하게 되었다. 양치를 마친 후 엄마의 얼굴도 씻겼다. 엄마는 엄마의 얼굴을 나에게 내밀고 나에게 오롯이 의지하고 있었다. 세수까지 하고 난 뒤 엄마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고 엄마는 다시 병실의 침대로 가서 누웠고 나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 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서윤이(딸아이)를 챙기고 샤워를 하기 전에 침대 아래 바닥에 멍하니 앉았는데 아침부터 내내 참았던 눈물이 볼을 타고 소리 없이 흘렀다. 엄마가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고 나는 엄마를 두고 집에 와서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었다. 오른쪽 팔을 제대로 쓰지 못해 어쭙잖은 포즈로 엉거주춤하게 양치하려는 모습도,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는 엄마의 말들도... 모두 나의 마음을 멍들게 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이 안쓰러웠고 나 말고 아빠가 옆에 계셨으면 좀 더 나았으려나.. 엄마의 마음이 좀 더 편했으려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 양치를 하며 흐느끼며 울기 시작한 나는 샤워기의 물을 가장 세게 틀어놓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눈물의 의미를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엄마는 물리치료와 한방치료를 함께 받았고 며칠이 지나면서 상태는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쯤 엄마는 예전과 똑같지는 않지만 거의 90프로 이상 좋아진 상태였다. 엄마는 그 뒤로 통원치료를 택했고 꾸준히 치료를 받으며 두 달이 넘어갈 시점에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엄마의 상태가 얼마나 좋아졌는지 손가락 마디마디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예전과 같은지.. 아님 아직 그 정도는 아닌지 살펴야 했고 마음은 매일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엄마가 예전처럼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걸 보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흘렸던 많은 눈물은 과연 무슨 의미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부모의 부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는데 엄마까지 잘못되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 건가 하는 내 안의 불안함이 나를 덮쳤던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홀로 남겨질 나의 미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었던 것이고 그것 또한 나의 이기심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부끄러운 감정을 이제야 알아챈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은 신이 머물다가는 순간이 있다고 믿는 나는 나의 엄마에게도 그 짧은 순간 신이 다녀간 거라 여긴다. 살아생전 그리 감사한 순간이 또 있을까... 그때는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재활 치료를 받아 증상이 좋아진 거라 생각했지만 몇 년이 한참 지나 지금 돌이켜보면 그저 운이 좋았다고 하기엔 그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다는 걸 안다. 신이 머물다간 그 시간이 가치롭기 위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현재를 살아야 한다.


지금 시계를 보니 시간이 늦었네..

내일 엄마에게 전화해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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