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 나를 재정비하는 시간
몇 달 전, 그러니까 작년 가을쯤이었던 것 같다. 작년 초부터 꾸준히 하고 있던 독서모임(사적인 모임)에서 2023년 한 해가 끝나기 전(100일이 조금 넘게 남아있는 상황)에 목표를 세워서 줌모임 때 각자 자신의 목표를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때 이런 말을 했었다. 다음 달쯤에 있을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할 예정이고, 결과는 안 봐도 불 보듯 뻔하겠지만 수상이 되지 않으면 출판사에 투고할 것이라고 당연스레 이야기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어디서 그런 대단한 용기가 튀어나왔을까... 수도 없이 많은 글을 쓰고 또 써야 할 시점에 그저 투고를 하고 또 하고 그런 날들로 작년 연말과 올해 초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느라 지금처럼 매일 쓰는 오늘의 나는 없을 것이다. 왜냐면 현실은 냉정하니까. 또 출판은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니까.
아마도 그때의 나는 글쓰기의 최종 목표를 출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실은 책을 내는 게 중요한 게 아닌데 말이다. 그건 그저 나의 자기소개에 한 줄을 더 늘려주는 역할을 할 뿐, 계속 쓰게 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최근에서야 뼈저리게 알아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어떤 글에 최적화되어 있는지, 어떤 문체를 가지고 있는지, 나의 최고의 장점 2가지를 합쳐 남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글쓰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있다.
나조차도 나의 글쓰기의 어떤 것이 최선인지 모르는데 무슨 책을 쓰고 어떤 책을 내고 싶다는 건지... 너무 단기적인 목표를 잡고 눈에 보이는 무언가(책 출간)에만 혈안이 되어있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브런치북 출간 프로젝트에 응모하고 나서는 2주 넘게.. 아니 3주였나? 글을 쓰지 않았다. 쓸 이유를 찾지 못했던 걸까 아님 쓰기 싫었던 걸까. 아님 둘 다였을까..
아마도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니 계속 써야 할 힘을 잃어버렸던 것이라 여긴다.
블로그는 하지 않지만 나에겐 글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브런치라는 공간이 있다. 언제든지 얼마든지 내가 맘만 먹으면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곳. 혼자만의 일기장이 아닌 곳. 그런 곳을 두고 모든 것을 너무 쉽고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걸 이제라도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
나의 글을 누가 보든 안보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그저 나의 글을 하나씩 쌓아야 하는 게 중요하다. 쓰다 보면 어떤 글감이 나와 잘 맞는지.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어떤 글에 더 많은 공감과 더 많은 반응을 하는지도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삶에 정답이 없듯이 글쓰기에도 정답은 없지 않은가. 그저 내가 잘 쓸 수 있는 글들이 있을 뿐.. 그리고 쓰려는 이에겐 나만의 글을 쓰기 위한 끈기와 노력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증명해 보이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꾸준함의 힘을 믿고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며 글을 써보자. 그 끝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거니까..
이 책의 저자는 꾸준히, 열정적으로 일을 하며 업계에서 인정도 받고 승승장구하는 날을 보내다 언제부터인가 일의 보람도 재미도 느끼는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직을 할지언정 아무리 힘들어도 쉬어야 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불안함, 계속 달리고 있는 동료들에게 뒤처질까 싶은 두려움이 달리는 트럭에서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번아웃을 겪으면서 그동안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자신이 무엇을 할 때 제일 행복한지, 어떤 일을 가장 잘하는지, 어떤 일을 가장 좋아하는지, 일을 하며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알아가게 된다. 이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것을 갭이어라고 한다.
갭이어는 회사 생활을 하든 프리랜서로 일을 하든 창업 준비를 하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고 더 건강하게 오래 일하기 위해서 한 번쯤 해보면 좋은 방법이라고 알려준다. 우리는 누구나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이 속한 곳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보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더 잘 해내고 싶을 때, 계속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아 답답할 때 이 책의 인터뷰에 나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접해보면 마음에 잔잔한 위로가 되어 줄 것이다.
나 또한 최근 들어 나의 글쓰기의 페르소나에 대해 적잖은 고민을 해왔다. 그러나 그건 짧은 시간 안에 당장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빨리 무언가를 해내고 싶어 조급함을 느꼈던 것이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지만 글쓰기는 더더욱 시간이 필요로 하는 것인데 말이다. 나는 묵묵히 쓰고 또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단기적인 목표에 갇혀 내 안의 동기를 주저앉히지 말고 멈추지 않고 쓰기 위해 나를 더 집요하게 파헤쳐 볼 생각이다.
(p115)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생의 큰 행운이다. 이 행운을 결코 잃고 싶지 않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감각',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감각'을 환기하는 것으로 마음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좋아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일이 잘되고 잘못되고의 여부는 외부에 있지만, 좋아하는 마음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니까.
(p131) 더 잘하고 싶거, 더 성장하고 싶은 마음이 클수록 일하는 사람의 진로 고민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한 고민의 지그재그가 결국 유일무이한 커리어 패스를 만드는 것 같다. (중간생략) 매일 하는 고민의 결과가 곧, 내가 화살을 쏜 곳에 과녁이 생긴다는 마음으로 쏘는 10점짜리 화살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