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번 써보실래요?
일 년 전의 나를 생각해 보면 너무 많은 것이 달라졌다. 사실 나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달라진 것이 없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바뀌었고 인생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중 제일은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일 년 넘게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읽기와 쓰기를 빼고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배우자,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 말고 그저 오롯이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읽기와 글쓰기였다. 앞으로 내가 이 두 가지 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슬그머니 자신이 없어진다.
읽으며 타인의 생각을 알아가고 쓰면서 나를 알아가게 되었다. 쓰는 일은 나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고독이 싫지 않고 두렵지 않다. 오히려 그 시간을 즐기고 기다리게 되는 것 같다. 고독하다는 건 외롭다는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고독은 언제나 나를 일깨우고 밖으로 나아가게 하는 반면 외로움은 스스로의 감옥으로 들어가 버리는 마음이다.
쓰면서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게 얼마나 심적으로 위안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매일 그 시간을 사수하기 위해 해야 할 것들을 빠른 속도로 해치우기도 한다. 역시 모든 게 의지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답답하기도 하고 완성된 들을 목표로 쓰다 보니 글을 끝까지 쓰지 못하고 쉽게 지쳤다.
1년이란 시간이 지난 지금... 조금은 알 것 같다.
쓰는 게 무엇인지....
쓴다는 건 운동화의 바짝 묶은 끈을 살짝 느슨하게 푸는 것, 목에 딱 맞게 조여진 넥타이를 손으로 잡고 약간의 여유를 주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
각 잡고 앉아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노트북의 하얀 모니터 안을 뚫어지게 째려본다고 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백지 위에 볼펜만 들고 있으면 저절로 써지는 것도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의 커튼을 걷고 창을 열어 쏟아지는 햇살에 얼굴을 들이밀고 아직은 차가운 바람을 한껏 들이마시는 것, 해질 무렵 하늘을 노랗고 붉게 물들이는 노을에 나의 마음을 빼앗기는 것, 밖에서 집으로 돌아온 나의 다리에 매달리고 얼굴을 핥아대는 콩이(반려견)를 안고서 녀석의 턱밑을 긁어주는 것, 길가에 핀 꽃들에 발걸음을 멈추고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 것, 상추에 삼겹살 두장과 쌈장, 밥을 차례로 올리고 입이 터질 듯이 오물거리며 먹는 딸아이를 보는 것, 아무것도 아닌 일에 남편과 언성을 높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것, 돌아서면 밥을 하고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하는 나의 마음을 살피는 것, 아이와 대책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마음이 시궁창이 된 것, 엄마와 시어머니의 뒷모습이 예전과는 다르게 자꾸만 짠하게 다가오는 것, 아점을 먹고 커피를 내려마시며 책을 읽을 때 하루 중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 지금처럼 꾸준히 읽고 쓰는 삶에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느끼는 설렘과 두려움이 함께 하는 것.....
이런 것들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이런 알아차림들이 나를 쓰게 만들었다. 그 순간의 감사, 그 순간의 행복, 그 순간의 슬픔과 괴로움, 두려움까지 모두 나를 쓰게 만들었다.
내가 가슴으로 느끼는 모든 것들이 나의 글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래서 그저 내가 더 깨어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글을 써내려 간다.
이 책은 글을 막 쓰기 시작했을 무렵 읽게 되었는데 글쓰기의 교과서 같은 느낌이었다. 글을 쓸 때의 마음가짐, 태도, 하지 말아야 할 점, 어떤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지까지 다정하고 친절하게 안내해 준다. 읽다 보면 알려주는 방식대로 써보고 싶어지고 나에게도 나만의 스토리가 있을 거라는 긍정의 힘을 심어준다.
처음 글쓰기를 할 때는 생각했던 대로 잘 쓰일 것만 같았는데 쓰다 보면 이게 아닌데 싶을 때도 많았고, 쓰기 싫은 날엔 오늘 하루만 쉬어보자라는 게으른 마음이 피어오르던 날도 태반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다 보면 써지고, 쓰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쓰면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내가 글을 계속 쓰는 이유이다.
(P57) 쓰겠다고 마음먹으면 온 세상이 다 교실이고 만인이 스승입니다.
(P82) 글쓰기로 고통을 씻겨내고 극복하는 게 아니라, 내 고통을 글로 공유함으로써 타인의 고통과 연결된다는 점에서 성장과 치유가 됩니다.
(P146) 글쓰기가 내 최상의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것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면서요.
(P219) 좋은 책을 읽거들랑 내게 들어온 가장 좋은 것들을 세상에 풀어놓는다는 보시의 마음으로, 글로 써서 널리 나누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