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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두나무 May 17. 2024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저번 주 어버이날. 저녁 약속이 있어 밤 11시가 다되어 들어온 남편이 어딘가 부르퉁한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윤이는 어버이날인데 카네이션 한송이도 안 주더나?"

"카네이션? 안주던데..."

"쟈(딸아이)를 영~ 잘못 키운 거 같다. 가정교육이 제대로 안된 거 맞다."

"꽃 달라고 농담으로라도 얘기할 시기는 지났지. 나이가 몇 살인데! 자기가 줘야 될 거 같다고 느끼면 알아서 하겠지."


남편은 어버이날이 그렇게 다른 여느 날과 똑같이 마무리되자 어지간히도 섭섭했는지 그 담날까지 시무룩한 듯했다. 반면 나는 딸아이에게 그다지 서운한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 시절 아이들 중에는 기념일을 때맞춰 잘 챙기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내 자식처럼 그저 덤덤히 보내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부산스럽고 치열하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에게 내가 바라는 건 어버이날의 카네이션이나 손 편지가 아니라 일상의 평안함이었다.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고성이 오가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는 날들의 연속이 꽤나 힘겹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게 어버이날과 평범한 며칠이 지난 일요일 밤. 집이 발칵 뒤집혔다. 국어학원에 갔다가 친구랑 만나서 저녁 먹고 밤 10시가 다되어 들어온 딸아이. 약속한 시간보다 1시간이나 늦게 귀가해 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데 들어와서는 옷을 갈아입지도, 씻지도, 해야 할 일(학원숙제와 학교 수행준비)들을 하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워 1시간 넘게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 아이의 행동은 나의 분노 버튼을 눌렀고 책상 위, 화장대 위, 의자 위의 정리되지 않은 모든 물건들은 나의 빡침 버튼까지도 눌러버렸다. 밤 11시가 넘어 나의 샤우팅과 함께 딸아이의 등짝을 한 10대는 때린 것 같다(몇 년 만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거실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방으로 들어와 아이에게 처음으로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아이에게 잔소리하고 화내는 역할은 항상 내 몫이며 남편은 딸아이에게 화를 못(?) 내고 화내더라도 며칠을 못 가는 스타일의 일명 딸바보다).  나더러 방에서 나가고 자기가 얘기하겠다는 남편을 뒤로하고 안방으로 돌아온 나는 쉽사리 화가 가라앉질 않았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것 말고 내가 하는 말에 더 큰 소리로 말대답을 따박따박하고,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데 눈을 감고서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아이의 행동이 도저히 용납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애를 저렇게 예의 없게 키운 건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애가 왜 저런 건지. 아이의 머릿속에는 무엇으로 가득 차 저렇게밖에 못하는 건지. 자신이 쓴 물건과 벗어놓은 옷을 제자리에 놓고 정리하는 것. 적어도 부모가 말을 할 때는 제대로 듣기라도 해야 하는 것.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그날 밤 또 한 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침대에 누워 한 시간을 넘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전날 밤 시궁창 같았던 맘에 공기가 통했는지 전날만큼 답답하지 않았다. 이른 오전부터 친구들과의 약속으로 모임장소에 가면서 차의 오디오 볼륨을 최대한으로 높여 오로지 노래에만 집중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전날 저녁의 일을 말하게 되었고 다들 같은 나이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니 그 마음이 어떤 건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모두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내가 예전에 딸아이에 대해 써 놓았던 어떤 한 챕터의 글을 읽었다. 아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 아무 날도 아닌 어느 날, 이유 없이 나에게 연보라색 꽃을 꺾어다 주었던 그날. 그날을 잊지 못해 적어놓았던 그 마음을 다시 주섬주섬 꺼내 읽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두 뺨에 눈물이 흘렀다. 그런 날이 그리워서였을까... 글쎄...


그런 맘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순간은 늘 오래가지 못하고 그저 찰나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나는 왜 그 순간을 잘 견뎌내지 못했을까라는 자책과 이 또한 지나가는 과정이며 이것이 영원하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알고 있는데 왜 매번 처음 당하는 사람인 것처럼 생속인건지에 대한 답답한 마음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보다 더 어린 날 딸아이의 그 보드라운 마음이 여전히 작은 불씨로 남아있을 거라 믿는다. 십 년 전 아이의 그 마음이 그날 나를 가만히 위로해 준 것처럼 내가 느낀 커다란 서글픔이 결코 오래가지는 않을 거란 바람을 품고 이 맘을 기록해 두기로 한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게 희미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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