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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파는 엄마

by 록유

“송이야, 엄마 따라 시장에 가자.”

송이는 얼른 엄마의 손을 잡았습니다.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맛있는 걸 먹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예쁜 옷을 사줄지도 모릅니다.

“엄마 짐 들어야 해.”

엄마는 커다란 대야에 포도를 잔뜩 담았습니다. 그리곤 머리 위에 이었습니다. 그 바람에 송이를 잡을 손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송이는 엄마 치마를 그러쥐었습니다. 포도는 포도밭을 하는 이모가 주신 건데 엄마는 왜 포도를 시장에 가지고 가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엄마, 포도는 왜 가져가요?”

“응, 요거 팔아서 우리 송이 예쁜 원피스 사주려고.”

송이는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이모가 먹으라고 준 포도를 팔아버리면 달콤한 포도를 먹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 예쁜 원피스가 생긴다니 기쁜 것도 같습니다.

엄마를 따라 쫄래쫄래 따라가던 송이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시장에는 구경할 것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엄마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그릇 가게 옆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야를 내려놓고 대야 앞에 포도를 몇 송이 놓았습니다.

“포도 사가세요.”

엄마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힐끗 쳐다보고 가는 사람도 있고 다가와서 포도를 살펴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포도가 싱싱하고 알이 굵어서 그런지 사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때 송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같은 반 친구 희주를 본 것입니다. 갑자기 송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옷가게 옆으로 뛰어갔습니다. 옷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뒤돌아섰습니다.

희주가 지나간 것을 본 송이는 엄마랑 멀찍이 서 있었습니다.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엄마는 포도를 파느라 송이가 옆에 없는 걸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송이는 우두커니 서서 엄마를 보았습니다. 길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엄마가 부끄러웠습니다. 원피스 따위 입고 싶지 않았습니다.

포도를 다 판 엄마가 짐을 챙겼습니다. 그제야 송이가 옆에 없다는 걸 알았습니다. 송이는 삐죽삐죽 엄마 옆으로 갔습니다.

“송이 어디 갔었어? 다리 아프지? 엄마 옆에 앉아있지 그랬어?”

“엄마, 빨리 집에 가.”

엄마는 원피스를 고르러 가자고 했지만 송이는 엄마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포도를 파는 엄마를 부끄러워했으면서, 포도 판 돈으로 원피스를 살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이 부끄러웠습니다. 엄마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엄마를 부끄러워하다니요. 엄마는 힘들게 포도를 팔아서 송이 원피스를 사주려고 했는데 말이죠.

엄마는 몇 가지 장을 보고 시장에서 파는 과자를 사주었습니다. 달달한 과자가 쓰디쓴 맛이 나는 건 왜일까요? 송이는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오늘 저녁에 자기 전에 엄마 어깨를 주물러줘야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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