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너는 '이 또한 신의 뜻이겠지', '누군가 뭔가 이뤄낸다면 그건 오롯이 그 사람의 공은 아닌 것 같다', '이번 일이 마무리 됨에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내가 밟았던 생각의 길을 그대로 밟는 너를 보며 난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무리 다르다고 아웅다웅한들, 결국은 이다지도 비슷한, 우린 같은 인간임을 난 생각했다.
- 누군가 평화로운 시간을 누리는 것이 오롯이 그 사람의 공이 아니듯, 힘든 시간이 오롯이 너의 잘못에서 비롯되지 않았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었다.
- 내가 가고 싶은 길과 전혀 다른 곳에 더 센 힘으로 나를 떨궈 놓기도 하고, 몇년을 일군 나의 작은 텃밭이 하루아침에 홍수에 떠내려 가는걸 나로 하여금 지켜보게 하는 때를 나는 인생이 작동하는 때라고 불러왔다. 그런데 인생이 꼭 그렇게 내 의지에 반하는대로만 작동했을까? 그럴리가.
- 현재가 괴로워 먼 미래의 계획으로 가있던 너에게 '그건 그때의 네 인생이 보여주겠지'라는 말을 이제는 서슴없이 한다. 내 모든 시간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걸 이제는 알다보니, 나이 들수록 인생이 알아서 하도록 하는 부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나는 나의 하루를 살테니, 인생 너는 네 일을 알아서 하렴.' 인생에게 내어주는 영역이 점점 커진다는것 자체가 내가 인생을 어느 정도 믿는다는 말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나를 엄한 곳에 떨궈놓고 홍수나 일으키는 인생이기만 했다면 네 일을 알아서 하라는 말을 내가 할 수나 있었을까.
- 나의 첫번째 겨울이 지나고 인생에게 한껏 쫄아있던 내가 그 다음에 만났던 몇년의 시간은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고, 나로 하여 다시 꿈을 꾸게 하고, 새롭게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한발씩 내딛게 했다. 워낙 그 겨울이 혹독했던지라 그 다음에 만나는 웬만한 추위는 견뎌낼만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고집하는 것들에 많이 유연해졌다. '이 길이면 좋겠지만, 아니라면 또 아닌대로 즐겁게 살아봐야지.'
- 나는 인생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신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시간이라 하는 그것과 너도 나도 동행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