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고 싶었던건 여한 없이 다 해본 것 같다는 그녀의 말 뒤에는 '그래서인지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은게 없다'는 말이 따라 붙었다. 하고 싶은게 없어서 고민하던 20대의 그녀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여한 없이 다 해본 것 같다는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짓다, 더 이상 하고 싶은게 없다는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전개 앞에서는 당황했다. 여행도 하고 싶은만큼 했고, 해외에서 살아보는 것도 했고, 하고 싶던 대학원 공부도 했다는 그녀. 누군가는 충분히 그렇게 느낄 수 있었는데, 왜 난 하고 싶은걸 다 해봤으니, 당연히 다음 전개는 그 속에서 더 하고 싶은걸 찾는 일이 될거라 생각했던 걸까.
혹시나 '더 이상 하고 싶은게 없다'는 그녀의 말이 의욕 상실로 이어질까, 그녀가 더 할만한 일이 뭐가 있을지 함께 고민해보던 때도 있었다. '하고 싶은걸 다 해봤다면 이제는 그 중에서 정말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을 찾고 질적 성장을 도모해야 하는 때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더 이상 우리의 화두가 아니게 되었을 즈음, 답은 저절로 우리를 찾아왔다.
- 인생이라는게 하고 싶은 걸 경험하는 일로만 채우는 시간은 아니라는 것을, 하고 싶은 일을 찾고 거기에 뛰어들어 보는 것 자체가 유의미했던 시기 다음에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그간 뿌려놓은 씨앗들이 어떤 결실로 거둬지는걸 지켜보는 시간이 우리에겐 예비되어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간 해왔던 것들을 내가 빼먹거나, 그간 해왔던 것들이 나를 잡아먹는 시기가 있다는 것을 서른 일곱의 우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인생이 다른 계절로 접어들고 있음을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알아차렸다.
- 내가 무엇을 해왔느냐 뿐만 아니라,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내가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왔는지 그 모든 것들이 고스란히 내게 돌아오는 계절은 존재한다. 누군가의 오늘을 보며 과거의 무엇이 오늘을 만들었는지, 그 원인을 그 사람에게서 찾을 수 있는 시기가 존재한다. 단발적인 실패의 경험이 인생의 경험으로 용인되는 경험의 시기 다음에, 반복된 실패가 곧 그 사람의 인생으로 굳어지는 수확기가 존재한다. 이 무서운 인과응보의 법칙. 그 법칙 속에서 누군가는 그 계절을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그 계절을 마치 기다려온 듯 하였다.
- 나는 잡아 먹힐 것이냐, 잡아 먹을 것이냐. 그 계절의 초입에서 나는 이 계절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해본다. 그저 바르게, 착하게, 최선을 다해서 충실히 살라는 말. 전혀 세련되지 않았던, 이 진부한 말들이 최소한 내가 쓴 시간에 내가 잡아 먹히는 인생이 되지 않게 해주는 말이었다. 그 기본이 진리라는 생각에 그녀도 나도 공감했다. 그리고 늘 그랬듯 우리는 다음 5년을 기약했다. 친구야, 우리 앞으로 잘 살아가보자.
- 이렇게 때가 되면 다 알게 되는 것들인줄 알았다면 서로가 서로에게 잔소리를 좀 덜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