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9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Review] 추상적인 숫자는 각 개인의 얼굴이기에

양재화,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

by epigram Jul 16. 2023
아래로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다.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며 견문을 쌓으려고 하는 이, 휴양지에서 마음껏 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 혹은 여러 유물과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배움을 쌓으려고 하는 사람들까지.  


이때 이 여행의 공통점은 ‘즐거움’이다. 많은 것을 보고 겪으며 재미를 얻는 것은 대다수 사람이 여행을 원하는 이유이다. 그런데 만약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타인의 고통과 연관이 있다면, 그 여행은 마냥 즐거울 수 있을까?



브런치 글 이미지 1



<다크투어, 내 여행의 이름>은 저자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그 속에서 발생한 제노사이드 현장을 찾아보고, 그 사건의 발생원인과 더불어 억울하게 희생당한 이들을 추모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 여행의 주된 목적은 추상적이기만 했던 숫자와 이름들이 사람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대량학살 사건을 책이나 교과서 등을 통해 접해본 적은 있으나 그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사망자 수는 잘 와닿지 않는다. 이미 먼 역사 속 사건이기도 할뿐더러 직접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책에서 언급된 여러 제노사이드 현장은 대부분이 몰랐던 사건도 존재한다. 너무나 유명해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관련된 독일 나치 학살은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있지만, 아르메니아 학살이나 캄보디아 킬링필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제주 4.3 사건 역시 여러 역사 교과서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사건은 아니기에 대부분이 이 사건에 대한 이름만 알 뿐 정확한 원인과 전개 과정을 알기는 어렵다.


이렇게 우리가 잘 모르는 사건일수록 사망자 수와 희생자 수는 그저 숫자로만 기억될 뿐이다. 아무리 많은 사망자 수가 적혀있다고 해도 얼마든지 무덤덤하게 지나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아보고 제노사이드 현장을 방문해서 그 당시의 현장을 직접 보면 희생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깊이 있게 아로새긴 것인가?



브런치 글 이미지 2



미국 비평가이자 <타인의 고통>을 집필한 저자 수전 손택은 ‘설사 그 상황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아닌 한 그 고통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라고 역설한다. 또한 이러한 장소를 경험한 후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다.’ ‘내 삶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라는 표현과 선 긋기는 최악의 반응들이다. 제노사이드가 발생한 사건은 그 나라만의 특이점이나 징조가 있었던 것이 아닌, 환경이나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언제든 어느 곳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악(惡)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평범하다. 악행을 저지르며 제노사이드와 관련된 사람 역시 선천적으로 악하거나 특정인에게 악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놀랍게도 희대의 만행을 저지른 사람은 대개 임무에 충실한 관료적 인물이었다. 이는 아우슈비츠 소장이었던 루돌프 회스의 회고록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아우슈비츠 수용소장 헤스의 고백록>에는 이러한 말이 쓰여있다.


“나는 나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제3제국의 거대한 학살기계의 하나의 톱니바퀴가 되고 말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결국 이 책을 통해 가장 크게 숙고해보아야 할 것은 ‘희생자 수와 관련한 추상적인 숫자를 어떻게 사람으로 기억할 것인가’이다.  


먼저 우리는 배워야 한다. 물론 이러한 사건을 책이나 시각적 자료를 통해 배우며 제대로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직접 겪지 않았기에 그 사건 속 희생자의 고통과 감정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똑같은 과오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말이 있듯이, 학습을 통해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고 현재 삶의 방향을 올바르게 정립해 나가야 한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이유도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듯싶다. 여러 국가에서 일어난 학살 현장을 직접 보고 배운 후에 책으로 출간해 많은 독자가 이 책을 읽도록 한 것은, 작가 한 사람의 경험과 배움에서 벗어나 많은 이들에게 사건을 알림으로써 더욱 발전된 사회를 기대하려는 의지가 담겨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 사건이 진부한 사건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직접 겪은 일이 아닌 것은 수많은 매체나 책에서 다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저 작은 휴대폰 화면에서의 일, 지루한 글씨들의 향연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일은 결코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 아니다. 상황과 환경이 맞아떨어지면 언제든지 우리 곁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인지하고 관심을 갖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 책을 읽은 이상 이제는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들을 덤덤한 표정으로만 접하며 지나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아트인사이트

www.artinsight.co.kr

브런치 글 이미지 4






작가의 이전글 [Opinion] 영화 <엘리멘탈>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