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동네
섣부른 판단의 위험성
한때 나는 한라산에 인접한 교래리와 성읍리 같은 지역을 지날 때마다 흐린 하늘과 끊임없이 내리는 비, 혹은 안개에 싸인 풍경을 보며 "이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한라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성읍리에 위치한 이색 자전거에서 근무하고 있다. 반면,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바다와 인접한 표선 시내로, 고도가 낮아 평균기온이 조금 더 따뜻하다. 두 곳은 겨우 12킬로미터 거리에 있지만, 고도차와 바다와 한라산이라는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날씨가 종종 다르다.
지난 3개월간의 근무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성읍리와 교래리 같은 고지대는 한라산의 영향을 직접 받아 변덕스러운 날씨가 계속된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도 이색 자전거의 날씨는 표선 시내보다 여러모로 좋지 않았다. 성읍리는 한라산의 영향으로 구름이 자욱한 날이 많았고 비도 자주 내렸다.
그러나 장마철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예상외로 반전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의 날씨는 맑은데 반해, 표선으로 퇴근하면 구름이 높게 쌓여 있거나 안개가 자욱하거나 이슬비가 내리거나 심지어 폭우가 내리는 날도 있었다. 퇴근 후 자전거와 전동차가 걱정되어 밭디 기숙사에 있는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곳은 날씨가 괜찮다고 했다.
이때 나는 또 한 번 나의 믿음, 맹종, 선입견, 혹은 아집이 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짧은 기간의 파편적인 경험만을 가지고 동네를 단정 지어 평가했던 것이었다. 이러한 섣부른 판단을 하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동네 혹은 지역만 이렇게 평가 내리고 판단했었을까? 아니다. 내 주변 사람들 평가나 음식점 평가, 그 외 많은 것들을 단편만 보고 판단했었을 것이다. 물론 속담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라는 말도 있고,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라는 말도 있지만, 나의 이번 경우처럼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들을 만나게 되면 나의 판단은 섣부른 판단이 되고 이에 기반한 예측은 반드시 틀리게 되어 있다.
예전에 교래리의 교래자연휴양림을 방문했을 때, 다양한 덤불로 울창한 숲길과 다채로운 이끼들의 아름다움에 놀랐던 적이 있다. 이끼가 카펫처럼 예쁘게 뒤덮은 조그만 바위를 가져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같이 간 제주도 토박이 형님께 여쭈어보니 집에 가져가 봤자 기후가 맞지 않아 다 말라죽는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저 내가 불평했던 날씨가 어떤 동식물들에게는 최고의 기후일 수도 있겠다는 감탄이 나왔다.
'곶자왈'이란 말은 숲이라는 뜻의 제주어 '곶'과 덤불이라는 '자왈'을 합친 덤불숲이라는 의미다. 이 지역은 삼다수가 만들어지는 지하수의 저장창고이자 섬의 허파 역할을 하며, 흙이 많지 않은 특이한 지층구조로 인해 나무들의 뿌리가 옆으로 자라거나 바위를 끌어안는 모습으로 자라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어 신기했다. 이런 생태적 특성과 가치를 모른 채 섣부르게 이 지역을 사람이 못 살 곳이라고 생각했던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나는 더더욱 내가 섣부른 판단을 했었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곶자왈은 제주도의 특수한 생태계로,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한라산과 바다의 기후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된 독특한 환경을 자랑한다.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할 정도로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기도 하며, 제주도의 생태적 다양성을 지키는 중요한 장소다.
이런 기후적 특성과 그 특성들이 만들어내는 생태적 가치를 이해하고 나서, 나는 한라산의 영향으로 고도가 높은 지역의 날씨가 변덕스럽지만, 장마철에는 바다의 영향으로 저지대인 표선 시내가 더 습해지고 비구름이 머무르기 쉬운 환경이 된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나는 단편적인 경험만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의 위험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물론, 한 번의 깨달음으로 오랜 습관이 완전히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무언가를 판단할 때 "혹시 내가 지금 섣부른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여전히 첫인상이나 단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리는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그런 판단의 횟수를 조금씩 줄여나가고 싶다. 사람이든, 장소든, 어떤 상황이든 조금 더 넓은 시야와 깊이 있는 이해 그리고 조금의 인내를 바탕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해볼 것이다.
이는 쉽지 않은 도전이겠지만,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쌓여 언젠가는 나를 조금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나의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노력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번 경험을 통해 얻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추구해 나갈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