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이라는 약속
1980년대 말, 초등학교 앞 문구점 골목은 내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참새 방앗간이었다. 입구에는 짱껨뽀 소리를 내는 가위바위보 기계가 있었고, 안쪽으로는 500원짜리 동전 하나로 손바닥만 한 파란 포켓북 만화를 살 수 있었다. 조악한 인쇄 품질에도 불구하고, 그 만화들은 현실 너머의 비밀 통로 같았다.
‘시티헌터’는 ‘파울볼’, ‘쿵후보이 친미’는 ‘용소야’, ‘일격전’은 ‘권법소년 한주먹’이었다. 드래곤볼의 크리링은 ‘사오정’, 베지터는 ‘알랑’, 북두의 권 켄시로는 ‘라이거’로 불렸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빠져들었던 만화들에도 원작자가 있고, 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해 창작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중학생이 되어서는 ‘영웅문’을 접하며 무협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며칠 밤을 새워 3부작을 완독 했고,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것이 김용의 ‘사조삼부곡’이라는 걸 알았다. 영웅문이 인기를 끌자 ‘황용’, ‘천용’ 같은 유사 작가명이 우후죽순 쏟아졌고, 문체도 이야기 구조도 엉망인 책들이 서점을 채웠다.
그때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지금은 알 것 같다. 창작의 가치가 왜곡되는 순간, 시장 전체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면, 소비자는 결국 저품질 콘텐츠만 남은 황무지에 실망하고 등을 돌리게 된다.
2000년대, 소리바다는 음반 시장에 쓰나미를 일으켰다. MP3 파일 하나로 수천 곡이 복사됐고, 지니나 버디버디 같은 메신저를 통해 영화와 노래가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퍼졌다. 고 신해철 님은 100분 토론에서 “CD를 사는 사람은 바보 취급받고, 나는 욕만 먹는다”며 디지털 음악 시장의 몰인정을 절규했지만, 사회는 이미 ‘공짜 문화’에 깊이 취해 있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연간 1억 장을 넘기던 음반 시장은 2005년 2천만 장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수많은 가수와 기획사들이 무대를 떠났다. 생계를 위해 음악을 내려놓는 창작자들이 속출했다.
그러나 위기는 늘 새로운 질서를 낳는다. 애플 아이튠즈의 합법적 음원 구매 시스템, 멜론과 벅스의 구독 기반 스트리밍 서비스는 기술과 제도가 맞물려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정당한 보상 구조가 자리 잡자, 창작자는 안심하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고, 이는 기생충, 오징어 게임, BTS 같은 세계적 콘텐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인공지능이다. 최근 각종 문학·미술 공모전에 AI가 만든 작품들이 대거 출품되며, 심사 기준부터 저작권 문제까지 복잡한 논란이 일고 있다.
AI가 만든 콘텐츠의 저작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문제는 단지 법적 소유권의 차원을 넘는다. 생성형 AI는 수억 개의 창작물을 학습했고, 그 결과 놀라운 결과물을 쏟아낸다. 하지만 그 성과는 누구의 몫이어야 하는가?
해외는 이미 방향을 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AI 학습 데이터의 출처 공개를 의무화했고, 미국은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AI 학습에서 제외할 권리를 보장했다. 일본은 AI 생성물에 대한 표기 의무화를 통해 투명성을 확보하려 한다.
한국도 이제 방향을 정해야 한다. 괜히 어렵게 갈 필요는 없다. 창작의 뿌리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약속만 세우면 된다.
첫째, AI 학습에 사용된 창작물에는 정당한 보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스트리밍 서비스처럼 사용량을 기준으로 정산하는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어떤 창작물이 어떻게 활용됐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기여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가야 한다.
둘째, AI가 만든 콘텐츠에는 그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어디까지가 사람의 손에서 나왔고, 어디서부터가 기계의 조합인지 알 수 없다면, 우리는 콘텐츠를 신뢰할 수 없다. 이야기가 ‘누구의 목소리’인지 명확히 하는 일은 단지 도덕이 아니라, 문화를 지탱하는 기반이다.
셋째, 창작자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AI 학습에서 제외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원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창작물이 무단으로 흡수되고 가공되지 않도록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은 인간을 돕기 위한 것이지, 인간을 소외시키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단순하지만, AI 시대 창작 윤리의 초석이 될 수 있다.
문구점 서랍 속 해적판 만화책 시절을 지나, 소리바다의 공짜 음악 열풍을 지나, 이제 우리는 인공지능과 공존하는 새로운 창작 시대에 서 있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저작권은 위기를 맞았고, 그때마다 사회는 해법을 찾아냈다.
중요한 건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인간의 창작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이다.
어린 시절 해적판 만화책으로 시작된 나의 문화 경험이, 이제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 콘텐츠를 소비하는 성숙한 문화 시민으로 이어졌듯이, AI 시대의 저작권 문제 역시 우리 모두의 인식 변화 속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저작권은 단지 법적 권리가 아니다.
그것은 창작의 불씨이며, 문화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사회적 약속이다.
AI 시대에도, 그 원칙은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