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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를 먹다가

필리핀의 망고와 한국의 감

by Daga

필리핀에서 망고를 즐기는 모습은 한국의 감을 떠올리게 한다. 싱싱한 인디안 망고나 달콤한 카라바오 망고를 사과처럼 깎아 소금을 찍어 먹는 필리핀 사람들의 일상은, 내게 망고에 대한 기존 관념을 완전히 깨뜨리고 새로운 시각을 선사했다.

솔직히 한국에서 자란 나는 망고를 ‘완전히 익어야 제맛이 나는 과일’로 여겼다. 동남아에서 수입된 망고가 푹 익어 껍질이 얇아질 정도로 말캉해진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맛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칼로 살짝 껍질을 벗기면, 마치 부드러운 멜론 속살을 가르듯 미끄러져 들어가는 감촉, 그리고 촉촉한 과즙이 뚝뚝 떨어지는 탐스러운 과육은 군침이 돌게 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 만난 망고는 전혀 달랐다. 사과처럼 껍질을 벗기고, 단단한 과육을 잘라 소금을 찍어 아삭아삭 씹어 먹는 모습은 오히려 한국의 단감을 떠올리게 했다. 망고는 단순한 ‘열대 과일’이 아니라, 이곳 사람들에게는 삶의 일부이자 매일 곁에 두고 함께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한국 사람들은 감을 참 다채롭게 즐긴다. 가을 햇살 아래 단단하게 익은 단감은 사각사각한 소리를 내며 깎아 먹고, 서리가 내린 후 물러진 감은 홍시가 되어 껍질을 벗긴 채 호로록 빨아먹거나 숟가락으로 떠먹는다. 홍시는 실처럼 부드러운 속살이 찰랑거리고, 입안에 넣으면 달콤함이 혀끝을 감싸는 황홀한 맛을 선사한다. 씨앗 주변의 쫀득한 부분은 오직 홍시를 즐겨 먹는 사람들만이 아는 작은 기쁨이다.

필리핀에서도 망고를 단단한 상태로 잘라 먹기도 하지만, 완전히 익은 망고를 먹을 때는 또 다른 방식이 등장한다. 노련한 칼솜씨로 망고 씨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과육을 발라내는 모습은 마치 족발 장인이 뼈에서 고기를 발라내는 듯 정교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씨앗 부분을 입에 넣고 남은 과즙까지 핥아먹는 그들의 모습에서, 망고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정성과 애정이 깃든 특별한 존재로 승화된다.

감을 오래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은 곶감으로 말리는 것이다. 겨울철 곶감은 겉은 쫀득하고 속은 촉촉한 젤리처럼 부드럽다. 하얗게 피어나는 당분 가루를 바라보노라면, 그 속에 응축된 달콤함이 혀끝에 닿을 순간을 기다리며 절로 침을 삼키게 된다. 곶감은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사랑하는 겨울철 최고의 간식이다. 한국에서 곶감을 싫어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필리핀에도 ‘드라이드 망고’가 있다. 쫄깃하게 말린 망고는 한국의 곶감처럼 비싸고 고급스러운 간식으로 여겨진다. 곶감이 그러하듯, 드라이드 망고 역시 쉽게 손에 넣기 어려운 가격이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만큼 특별한 존재로 사랑받는다.

망고와 감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두 나라 모두 시원한 디저트로도 즐긴다. 한국에서는 살짝 얼린 아이스홍시가 중년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홍시 특유의 부드러움과 쫀득함이 냉동 과정을 거치며 더욱 매력적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반면, 필리핀에서는 냉동 망고를 갈아 만든 망고 빙수가 젊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두 나라에서 감과 망고를 얼려 먹는 모습은 마치 세대는 다르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여름을 즐기는 듯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한국, 특히 감귤로 유명한 제주도와 망고가 풍성한 필리핀은 왠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화산섬이라는 지리적 특징, 따뜻한 기후, 풍요로운 자연환경까지, 두 곳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진다. 제주도에서는 감귤이 대표적이지만, 예전에는 거의 모든 집에 감나무가 한두 그루씩 있었다고 한다. 필리핀 역시 어디를 가도 망고나무가 흔하게 자란다. 서로 다른 열매를 맺는 나무지만, 그 과일을 향한 애정만큼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망고는 감처럼 소중한 존재다. 우리가 가을날 탐스러운 감을 바라보며 느끼는 풍요로움처럼, 그들에게 망고는 삶의 기쁨이자 자부심, 그리고 애환이 깃든 과일이다. 그래서일까? 망고를 통해 필리핀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감과 자연스레 연결된다.

이처럼 한국과 필리핀의 과일 문화는 겉으로는 다르지만, 그 속에는 깊은 공통점이 있다. 달콤한 망고와 감을 통해 두 나라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를 더 깊이 이해하고, 마음과 마음을 잇는 따뜻한 다리를 놓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어쩌면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 속에, 국경을 넘어선 우정의 씨앗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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