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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Dec 31. 2024

아무튼 여우비 시놉시스(1)

차기작 구상에 적용하는 지브리 작법  





차기작 시놉시스인 척하지만 사실 소재 모음에 가까운.. 아무것도 아닌 무언가를 뱉어내게 되어 도리어 영광입니다. 여러분.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으니 연말 마무리 잘 하시고 새해에 복도 많이 받으십시오.


(넙쭉)


사실 요즘 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찰떡 같은 제목이 나오질 않아 아주 고전 중입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네이밍은 좀 잘하는 편인데, 어쩐지 이번 소설은 그게 참 어렵더라고요. 뭔가 상큼하고 푸른 느낌이 드는 직관적인 제목이 필요할 거 같은데 말이죠. 흠…….


어쨌건 앞서 쓴 6편의 게시글들을 토대로 차기작의 서사 라인을 좀 잡아 나가 볼게요. 우선 <만남>부터 갑니다.



무사히 대학에 입학해 신입생으로 1학기를 보낸 후 여름 방학을 맞은 박은호는 다가오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해 나홀로 제주도 여행을 계획한다. 어릴 적부터 사건 사고에 잘 휘말리고 몸도 허약했던 탓에 자신을 과보호하는 부모님과 죽마고우인지 보디가드인지 모를 채준의 간섭을 피해 몰래 비행기를 탄 은호의 핸드폰은 당연히 잠잠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는 언젠가부터 한라산에 올라 직접 백록담을 보는 것이 최고의 위시였다. 더군다나 이미 탈출은 본격적으로 진행된 상태라 되돌릴 수도 없는 일!


흥분도 잠시,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 잠에 들어 비몽사몽한 상태로 제주 공항 검색대를 통과한 은호는 토끼 인형 키링이 달린 자신의 휴대폰을 찾아 들고 곽지 해수욕장으로 바로 향한다. 귀하게 모은 구식 디지털 카메라 두 대와 폴라로이드 필름 카메라까지 꺼내 해안의 곡선과 뽀얀 모래, 바다 위 윤슬과 포말이 이는 파도까지 마음껏 찍어댄 은호는 근처 과오름까지 오르며 해질녘 풍경에 황홀함을 느낀다. 그때까지도 자신의 폰을 꺼낼 생각조차 안 하던 그는 저녁 별이 뜨는 것을 보고 게스트 하우스 주인에게 연락한다. 자신의 이름과는 살짝 발음이 다르지만 무슨 호 학생이냐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주인 아저씨와 픽업 장소를 정한 후 전화를 끊은 은호는 그제서야 자신의 휴대폰이 류호의 휴대폰임을 알게 된다. 마침 자신이 들고 있는 폰으로 걸려온 전화. 은호는 자신의 폰 번호가 찍힌 전화를 받아 류호와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기로 정한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폰 기종에 키링까지 같은 거야 그렇다치고, 잠금 비번까지 같다는 게 말이 돼?”


말이 안 되지만 말이 된다. 너희들은 천년의 사랑을 할 나의 주인공들이니까.


아무튼 여러 목적으로 픽업 장소로 향하던 은호는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서 사장못을 지나 청용사로 향하다가 목탁 치는 소리에 괜히 겁을 집어 먹고 후다다닥 큰 대로변 버스정류장까지 있는 힘껏 달린다. 마치 누군가 자신의 뒤를 쫓아오는 것 같기도 하고 혹은 자신을 놓치지 않고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한 기이하고 선뜩한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던 은호는 마침 버스 정류장 앞에 도착한 게스트 하우스 주인의 차에 올라타 불안을 가라앉힌다.


은호의 자초지종을 듣던 주인은 혹시 휴대폰을 바꿔간 이가 류호라는 미국에서 온 학생이냐고 묻고, 은호는 마침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오며 두 팔을 들어 인사하는 덩치가 큰 남자애 하나를 발견한다.


여기까지가 만남인데, 이 장면을 이미지로 구현하려고 여러가지 툴로 만들어 보다가 그만 두고야 말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손수 그리겠다고 프로크리에트를 켜서 삽질을 했겠지만, 이번엔 이미지 생성 AI를 켜서 삽질을 양껏하다가 때려치운다.


하하……. 뭐 난 다 이런 식이다.


그래도 이번 편은 제법 구체화된 만남이었다고 여긴다. 그리고 이대로 약 여섯 편 정도를 더 연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 북을 발행하면서 점점 더 명확해지는 사실은 아이디어들이 판매 되기 직전의 상품으로 가기까지의 시간동안 상당히 구체화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마치 이곳에 아카이빙을 해두 듯이 어설픔을 담아낸다.


이게 참 뭐랄까, 전 같으면 미완의 무엇을 누군가가 보게 한다는 거 자체를 굉장히 두려워 했을 것 같은데, 상품성이 있기 위해서는 공개의 과정이 필수적이라는 사고가 잡힌 후로는 그에 대한 부담감이 적어졌다. 더불어 저작권 침해를 받을 거라는 생각도 좀 사라졌다. 어차피 못한다. 설정이라고 불리는 아이디어는 정말 세상에 차고 넘치기 때문에 그 중 내 것 어느 것을 가져다 쓰던 간에 그게 완성본으로 나왔을 때 내가 쓴 글과 얼마나 같게 느껴질지는 알 수가 없다.


실제로 마녀빵집을 교보문고 창작의 날씨에 연재하고 있고, 심지어 출간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단행본 작업 중이었는데도 누군가가 마녀빵집 간판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교묘히 바꿔서 판타지 소설을 출간한 적 있다. 그때 나는 알았다. 결코 핵심을 뺏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고작 기발한 몇 가지 지점을 가져간다고 해서 내 이야기가 망하진 않는다는 것을. 그런 같잖은 농간 쯤은 헤프닝으로 넘어가야 더 좋다는 것을. 그래도 후일에 법적인 영역에 문제가 생길지도 몰라서 소명 자료는 전부 준비해두었다. 일단 난 스토리에 대충 와꾸가 잡히면 저작권 등록부터 넣는 타입이다. 그때도 마녀빵집이 21년에 등록되고 여러 차례 메일링해서 프린트 후 교정을 본 흔적이 남아 있어서 내용 증명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리고 이건 좀 그때의 일로 생긴 능력치지만, 아직 나보다 빠르게 소설 초고를 써서 어디다가 갖다 내는 사람도 몇 못 봤다. 그게 덜 익어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괜히 안타깝고 아쉬울 수야 있어도.  


개인적으로는 아직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그저 더 뾰족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괴발개발한 것들을 우선 빠르고 쉽게, 최대한 많은 양으로 뽑아낼 필요가 있다고 여길 뿐이다. 일종에 피지컬을 만드는 과정이고 그게 여러 층위로 쌓여서 몇 년 후를 바라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다. 난 21년에 소설을 처음 써서 24년에 책을 한 권 냈다. 빠른 축에 속하기 때문에 아직은 열정이라는 에너지가 끓을 때다. 이럴 때 멀리 보고 묵직하게 가야 함을 안다.


소설을 쓰기로 한 건 소설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더 재밌는 비전을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브런치와도 닿았다. 그러다가 대체 브런치를 하는 게 내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 구체적으로 어떤 걸 가지는 효과가 될까? 고민하게 된 거 같다.


어쩌면 연습장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수 일이 지나서 보면 보석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일단 이 번 편을 또 올리고 나서 다음 편 <밀착>을 구상해 올리기까지 더 밀도 있게 고민해 봐야겠다.









이 브런치 북의 처음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hansui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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