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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Dec 02. 2024

하울의 움직이는 성

진짜 우리들을 봐.

**본 게시물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2004년 작품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1시간부터 1시간 30분까지 분석해 쓴 것으로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친구에게 하울을 본다고 했더니 개극혐이라는 반응이 왔다. ㅋㅋ 이유를 듣자 하니 아니! 왜 여주가 하울의 어린 시절로 들어간 그 장면, 그 장면에 왜 그렇게들 열광하는 거야? 개연성이 너무 약하지 않아?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랬다. 하울은 완전히 무감정해지기 직전, 소피를 위해 기억을 봉인해둔다. 그가 어릴 적 살았다던 집 앞 정원은 악마가 유성처럼 떨어진다. 악마들은 계약을 맺어 누군가의 신체를 받아 먹지 못하면 땅으로 꺼져 소멸한다. 이건 소피가 유성이 떨어져 사그라드는 모습을 보는 장면으로 우리에게 의미를 암시한다. 어린 하울은 악마에게 심장을 걸고 종신 계약을 맺을 정도로 마법 실력이 출중하다. 그러나 사실 하울은 죽음과 소멸에 마음이 약할 뿐이다. 그래서 그 순간 캘시퍼를 살린 것이고, 크고 나서는 수 많은 이들의 살상이 지속되는 전쟁이 싫다. 소피는 하울과 캘시퍼 사이에 계약이 성사 되는 모습을 보고, 곧 다른 차원으로 떨어진다. 그때 그는 하울에게 하울! 나 소피야! 기다려! 꼭 갈 거야! 미래에서 기다려! 라고 외친다. 여기가 문제다. 도대체 소피는 어떻게 하울과 자신이 시간 여행, 혹은 차원 여행을 하고 있음을 알았을까?


1. 소피가 하울과 처음 만났을 때, 하울이 “한참 찾았잖아.”라고 한 것. 하울이 여자들의 심장을 노린다고 소문이 난 것도 그가 소피와 닮은 여자들을 캘시퍼에게 데려가 신체 일부인 심장을 가지고 계약하려 들었을 가능성이 높음.


2. 움직이는 성으로 들어온 소피에게 캘시퍼가 날 풀어주면 네 저주도 풀어주겠다며 계약을 시도함. 후에 소피의 신체 일부인 머리카락을 먹고, 저당 잡은 계약자가 둘이라 스스로을 지키며 하울의 심장은 돌려줄 수 있게 된 것 같음.


3. 소피가 하울이 어릴 적 살던 삼촌이 물려주신 외딴 집 정원 앞에서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함. 저도 모르게 흘러 나온 잠재의식으로 추정. 소피는 한 번 이상 하울의 오두막을 들렀음.


개연성 변태인 친구에게 이 내용을 알려줄 수 있게 되어 이제 기쁘다. 엄청나게 돌려 보다보니 해당 장면들이 보인다.


뽑뽀해 짝! 뽑뽀해 짝!


그러나 이 영화는 소피와 하울의 러브 스토리가 메인 서사가 아니다. 이 점에서 하야오가 굉장히 어려운 구조로 영화를 짰다 보게 된다. 두 가지 플랏이 같이 병렬하는 구조라 서사를 러브 스토리로 잡기 쉽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메인 플랏은 소피와 황야의 마녀가 만나 시작된것이다. 이 둘이 <만남>을 가졌기 때문에 소피가 하울과도 이어질 수 있었다.


어쨌건 마녀가 내린 저주로 늙은이가 된 소피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운영하려던 모자 가게를 떠나 마법사가 산다는 높은 언덕에 오르고 여기에서 무대가리 허수아비와 만난다. 덩굴에 자빠져 있는 그를 우연히 구해준 소피는 그에게서 지팡이도 얻고, 잠 잘 곳도 알아낸다. 여기까지가 <밀착>이다. 소피가 늙은이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 있던 곳, 그러니까 고지식한 자신의 가업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 스스로가 품고 있는 진실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샛길로 새자면, 소피는 왜 하필 노파로 변하게 된 걸까? 그건 바로 그가 가진 공포 때문이다. 내가 소피라면, 이렇게 젊은 내가 마른 나무 토막처럼 살다가 그대로 늙어버리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을 테다. 마찬가지로 무대가리 허수아비도 동일하다. 전쟁을 치르는 상대국 왕자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자신의 무능함일 것이다. 아둔한 선택으로 국가와 백성을 잃고 상대국에게 허수아비 취급을 당하게 된다면? 그러한 두려움을 매일매일 반복해서 안고 사는 이들에게 가장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변하라 저주를 건다면, 거는 입장에서야 무척 탁월한 선택이지 않을까?  


그런데 황야의 마녀는 왜 소피를 찾아 저주를 걸었을까? 유성을 잡은 자. 마음이 없는 사내여. 너의 심장은 내 것이다. 황야의 마녀는 소피에게 저주를 걸며 하울에게 경고장을 보낸다. 사실 여기에서 너의 심장은 너의 사랑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나 싶다. 마녀가 허수아비의 본모습을 보고 플러팅하는 장면과 꿰어진다. 그러고 보면 진짜 로맨스티스는 어쩌면 황야의 마녀인지도…


아무튼 이 저주는 당하는 입장에서 보면 가장 두려운 나의 내면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고, 저주 당한 이의 주변인 입장에서 보면 본래 가지고 있던 그의 모습을 알 수 없다라는 뜻으로도 볼 수도 있다. <밀착>에 나온 장면에서 소피를 마녀와 한 패로 의심하는 마르크에게 소피는 자신이 누군지 말할 수가 없었다.


황야의 마녀는 먼저 다가와 자신에게 온갖 관심을 보여 놓고 도망친 하울에게서 한 번쯤은 소피의 존재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이 멋지게 하늘을 날아다니며 자신이 보낸 수하들을 따돌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하울은 귀신 같이 이 노파가 누군지를 안다. 전쟁을 방해하다 와서 자고 있는 소피를 보고, 흉측한 자신을 감추기 위해 욕실로 향할 때마다 하울은 소피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렇게 소피는 움직이는 성의 청소부가 된다. 그는 청소를 하며 진짜 자신이 원하던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찾아낸다.


멋진 자연경관을 보며 차를 마시고, 어디든지 초월해 여행을 떠나고, 사랑하는 하울의 공간을 누비며 그의 식구들과 가족이 된다. 그러는 동시에 스스로에게 뿐만아니라 하울에게까지 진짜 자신의 내면을 인정하도록 만든다. 이 과정이 전부 <성장>이다. 악마의 힘을 너무 많이 빌려 써서 무감정에 가까워진 하울이 청소를 적당히 하라 부탁을 해 와도 소피는 무신경하게 여기며 더욱 열성적으로 청소한다. 마침내 하울의 욕실까지 박박 닦아 하울의 본모습을 보게 된 소피. 점액질처럼 늘어진 하울을 보며 내 친구는 너무 애새끼 같다며 놀렸다.


나 사실 무서워서 이름도 여러 번 바꾸고 계속 도망다니는 삶이야. 하울의 겁 많고 유아적인 작태를 낱낱이 보고야 만 소피는 얼떨결에 하울의 엄마로 가장해 국왕을 알현해 달라는 미션까지 떠맡는다. 무려 전쟁을 그만 둬 달라는 부탁을 하러 가는 길에 그는 황야의 마녀를 다시 만나 계단 오르기 배틀을 한다. 그런 후 왕궁 마법사 설리먼과 독대를 나누는데, 여기에서 소피는 하울의 놀라운 재능을 완전히 소유하려는 설리먼의 위험한 야욕을 꿰뚫고 자신과 하울에게 필요한 진짜 자유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아챈다. <이게 바로 성장을 더 견고하게 완성시킬 시험>이다.


시험, 주인공에게 시험이란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개인적으로 시험은 강력한 적대자에서 비롯된다고 여긴다. 특히나 이런 러브 스토리가 섞인 구원 서사라면 더더욱 이들의 사랑을 아주 견고하게 만들 강력한 적대자가 필요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소피와 하울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대자는 둘이나 된다. 바로 황야의 마녀와 왕궁 전속 마법사 설리먼.


황야의 마녀는 하울의 팔팔한 심장을 노리며 그와의 러브 스토리를 꿈꾸고, 설리먼은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아 대마법사의 길을 걷도록 요구한다. 특히 설리먼은 하울이 최소 한 번은 복종해 찾아올 수밖에 없도록 맹세의 서까지 맺어두었다. 하울이 소피에게 엄마로 가장해 왕을 만나러 가라 한 것은 그 맹세의 서를 교묘하게 지켜서 무력하게 만들기 위한 것. 그의 그런 기지를 보면서 설리먼은 하울이 괴물이 되도록 덫을 만들었고, 소피는 설리먼에게 말려들지 않도록 하울을 진정시킨다.

설리먼이 하울을 사로잡기 위해 소피 앞에서 그의 본모습을 소환하는 장면


하울! 함정이야.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할 수 있어.


그런데, 이 어떤 모습이라는 건 오히려 때론 더 폭력적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소피는 가혹한 현실을 버텨내는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왠지 모르게 위화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가 자신 앞에 주어진 조건들을 불평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충실히 삶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현세대들에게는 이질적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하울은 그런 나의 우려마저도 설득한다. 노인이 된 소피를 진정으로 알아보고 설리먼이 자신의 교묘함을 금방 눈치 챌 걸 알면서도 소피를 그의 앞에 보내 위기를 돌파한다.


아, 이쯤에서 또 샛길로 빠지자면, 영화를 보던 중에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근데 이거 소피는 왜 자꾸 젊어졌다. 늙어졌다. 그래? 참고로 이 친구는 여러 번 영화나 리뷰를 보며 이 영화가 대체 무슨 영환지 이해해 보려고 애쓴 사람이다. 일단 나는 소피가 늙는 건, 감정적으로 그 값이 마이너스일 때, 소피가 젊어지는 건 감정적으로 플러스일 때. 라고 답했다. 그리고 하울이 까마귀 같은 본모습을 보일 때는 소피도 저주에 걸리기 전, 소녀의 모습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해석한 건 소피가 애늙은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저도 모르게 즐거움이 고조 되고 젊은, 혹은 어린, 생생한 감각이 들 때면 원래 가진 그 모습 그대로 젊게, 그렇지 않고 걱정을 하거나 자신의 마음을 누르고 부정할 때면 호호파파 할무니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걸 본인이 직접 알아챌 수는 없다.  대신에 그와 상대하는 다른 캐릭터들과 시청자인 우리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면에서 하야오가 미친 사람 같다. 캐릭터 공부를 얼마나 해댄 건지 황당해질 정도다. 정말로 완벽히 캐릭터 설계를 끝낸 장인만이 할 수 있는 장면들이라고 생각하니까 더더욱 값지다.


<시험>에서 빠져나온 소피와 하울은 더 큰 위협을 느끼고 피신할 준비와 공격 당할 경우를 대비한다. 여기에는 하야오만의 골 때림이 존재하는데, 도망치는 순간, 설리먼의 함정으로 마력을 다 소진해 본인 원래 신체 나이로 돌아온 황야의 마녀와 설리먼의 노견 힌을 소피에게 딸려 보낸다. ㅋㅋ 이런 귀여운 코믹함을 좋아하는 그. 동시에 이들이 결국에는 욕망을 바꿔 소피를 응원해 줄 것이란 믿음을 보여준다.


설리먼의 사주를 받고 소피의 위치를 파악해 감시 벌레를 두고 온 엄마

1시간 27분쯤, 난데없이 소피의 엄마가 피신한 곳으로 찾아온다. 이건 영화적인 포인트인데, 우리는 미드 포인트라고 부른다. 이 포인트를 기점으로 이야기는 절정으로 치닫고 위기가 중첩되어 주인공의 선택을 미친 듯이 밀어붙여 내놓게 만든다. 그리고 이 지점이 지나야 캐릭터들이 가진 욕망이 어떤 결론을 맺는데, 그걸 직면한 후에 캐릭터들이 진정으로 변한다. 미드 포인트까지 봐야 1차 시험에 통과한 것. 다음 관문은 원령 공주로 이어가겠다.


내가 쓸 소설은 음…… 다음 편 앞에 짧게 넣도록 하겠다. 아무래도 서사가 비대한 파트에서 하울을 선택하니 ㅋㅋ 브런치 북 분량이 터질 지경이다.


엇, 기대해 주실 거죠? 여러분? 핳…










이 브런치북의 처음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hansuin/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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