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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수인 Nov 18. 2024

벼랑 위의 포뇨

내가 널 지킬 거야!

**본 게시물은 지브리 스튜디오의 2008년 작품 벼랑 위의 포뇨를 10분에서 26분까지 분석해 쓴 것으로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리뷰인가 꿀팁인가 낚시인가 정체 모를 메인 화면……?


약 이틀 간 브런치 메인에 걸린 표지를 보며 실소가 났다. 사실 이 브런치 북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 나도 아직 잘 모른다. 굳이 정하자면 그냥 차기작 제작기 정도로 정리하겠다.


경계선을 끝내고 다음엔 무얼하면 좋을지 세계 최강 우주 계획을 세우던 때에, 친구님께 천공의 성 라퓨타 대본을 따서 소설화한 원고를 보냈었다. 사실 사이사이에 포인트 멘트를 넣어 러닝타임 15분 안에 벌어지는 영화적 사건과 캐릭터에 대해 연구해보는 글이었지만 대본을 따던 중 급격하게 몸이 안 좋아진 바람에 몸져눕고야 말았다.


날이 밝고 카톡을 켰다.


친구: 너 정말 이렇게 쓸 거니?


나놈: ㅋㅋ(친구 반응을 보고 현실 웃음)


친구: 초반에 너가 기획이랍시고 잡아 놨던 라인은 대체 어디 가고 겨우 대본 딴 걸 나에게 보내 놓냐? 난 너 그 디기 유명한 남자. 틱톡에서 작곡하는 과정 보여주고 사람들이 빨리 노래 내 놔 하는 남자. 그 남자처럼 할 줄 알았는데.


나놈: 야 너 틱톡도 해?


친구: 아니 난 유튭으로 봤지. 아니 암튼 그 코 둥근 애


나놈: ㅋㅋㅋㅋㅋㅋ 그게 머야


친구: 이름에 ‘ㅍ’ 들어 감


ㅇㅅㅇ? 이름에 피읖? 그런 이름 가지고 코 둥근 애는 하나 밖에 없지 않나? 이러고 이미지 정보 감사하다는 카톡을 남긴 후 검색에 돌입. 그러나 뭐가 제대로 나올 턱이 있나요? 내가 아는 그 곰돌이만 자꾸 뜨지. 아아, 나 알아요. 지금. 이 글 읽으시는 분들 ‘푸바오’ 떠올린 거 나 다 알어. 맞죠?


아무튼 한참 후에 그가 말해 준 작곡하는 둥근 코 피읖 남자는 무려 빌보드 차트를 숨 쉬 듯이 오르내리시는 ‘찰리푸스’셨다.


(진심 할 말 잃기……………… 쩜쩜쩜만 백 만 개*3)


그렇지만 찰리푸스의 작곡 표류기 쇼츠를 관찰하면서 이 브런치 북의 컨셉이 완전히 잡히긴 했다. 그래! 내가 원했던 게 바로 이거야! 이런 부분을 좀 더 살렸달까? 어쨌건 맨 아래에 이해를 돕는 링크 하나를 달아둘 것이니 시간 나면 보시길 권해드린다.






**

지난 1화 라퓨타에서는 주인공 시타와 파즈가 얼마나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었는지를 연구했었다. 그러니까, <서로를 모르던 두 주인공들이 반드시 만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드시오.>에 충실했던 것이다. 따라서 호랑이 남주와 여우 여주가 여우비 내리는 어느 날 제주도 오름에서 만나는 것까지 설정을 끝냈다. 아 사실, 제주도는 지금 바로 정했다.   


아무튼 이제 주인공들이 거칠 다음 과정은 <얼마나 더 밀착할 수 있는가?> 이다. 벼랑 위의 포뇨는 그 과정이 아주 잘 드러나 있는 영화로 ‘오직 너만을’의 정석을 보여준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포뇨 엄마 아빠-> 소스케 아빠 엄마

바다의 여신이자 인간사에서 관세음보살로 불리는 엄마와 인간이면서 마법사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인면어 포뇨는 수많은 동생들과 함께 아빠의 배에 갇혀 따분한 일상을 지낸다. 어느 날 포뇨 아빠 후지모토가 아주 깊은 바다로 가서 데본기의 기억을 지닌 바다 생물들과 바닷물의 정수를 모으는 일을 하는 동안 포뇨는 아빠 모르게 해파리를 타고 배를 탈출해버린다. 잠 들었다 깨어난 포뇨는 뭍과 가까워진 바닷속에서 폐기물을 수거하는 배에 빨려들어갈 위기에 처하고, 하필이면 유리병에 갇혀 정신을 잃고야 만다. 이때, 벼랑 위에 지은 집에 살며 화물선 선장인 아버지와 노인 요양 보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소스케가 장난감 배를 들고 바닷가로 내려온다.


붉은색 포뇨가 담긴 유리병을 건진 소스케는 금붕어다! 소리치며 그를 꺼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커다란 돌을 들어 유리병을 쪼개다 손가락을 다친 소스케는 병에서 빠져나온 포뇨에게 피를 빨아먹힌다. 이는 대략 10분까지의 장면들로 서로가 서로를 인식하는 동시에 주술적 의미까지 곁들여 강하게 대응하는 내용이다.


소스케를 차에 태워 유치원으로 향하던 엄마 리사는, 양동이에 담긴 포뇨를 보며 말한다. “귀엽지만,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실 텐데?” 그러자 소스케는 “내가 지켜줄 거야.”라고 답한다.


주인공들이 케미를 내며 강하게 달라 붙는 방식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지브리는 보통 여주인공을 발견한 남주인공의 의지에서부터 해당 서사가 진행된다.


소스케는 포뇨에게 포동포동하니까 포뇨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샌드위치 속 햄을 전부 양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집이 어느 벼랑에 붙어 있는지까지 알려준다. 그 뿐이랴. 잠시 유치원 선생님과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온 후 양동이에 잠들어 있던 포뇨가 죽은 줄로만 알고 놀라 울기까지 한다.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는 소스케에게 포뇨가 어떻게 빠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사실 포뇨의 원래 이름은 북유럽 신화 발키리에 나오는 저승사자 브륀힐데로, 러닝타임 20분 경, 요양원 할머니 토시가 그의 정체를 밝힌다.


“저건 금붕어가 아니라 인면어야. 저게 지상으로 올라오면 쓰나미가 일어 재앙이 닥친다고!”


소스케는 토시의 말에 심술을 부리며 물을 뿜어버리는 포뇨를 데리고 바닷가 바위 틈으로 몸을 숨긴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 훈계하려는 엄마 리사의 목소리에 또 다시 다짐한다.


“포뇨, 넌 걱정하지마. 내가 널 지켜줄게.”


맙소사. 나같은 재앙을 인간 꼬맹이인 네가 지켜주겠다고? 포뇨의 입장에서는, 이게 도대체 내가 넘어가고도 남을 이유가 아니고 뭐람? 싶었을 것이다. 원래도 자연물에 가까운 신령한 존재지만, 인간의 피까지 받아 먹어 그들의 세계로 완전히 들어오게 된 포뇨는 그동안 소스케가 한 말들을 기억해내 자신과 소스케의 이름을 따라 말하며 소스케가 좋다는 고백까지 해버린다.


“보쿠모 스키!”


소스케도 그와 같이 좋아하던 그때, 후지모토가 나타나 파도를 일으키고 포뇨를 데려가버린다. 포뇨를 찾으며 울다 지친 소스케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준 리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렇게 말한다.


“소스케, 세상은 운명이란 게 있어. 아무리 괴로워도 그걸 바꿀 수는 없지. 포뇨는 바다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돌아간 거야.”


이 말을 끝으로 두 주인공이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갈 수 있도록 긴밀한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서사는 끝이 난다.


그런데 여러분, 내가 왜 소스케의 지켜주겠단 한마디에 이토록 집착하고 있는지를 눈치채셨는가?


바다로 잡혀 간 포뇨는 인간이 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후지모토가 만든 결계를 뚫고 봉인된 마법까지 풀어버린다. 그 여파로 거대한 쓰나미가 마을을 덮치고 세상이 종말하는 길이 열린다. 그런 포뇨에게서 마법을 빼앗고 세상을 안정시킬 방법을 떠올리던 후지모토에게 그의 부인인 바다의 여신은 포뇨를 정말로 인간으로 만들어버리자는 제안을 한다.


“안돼! 그러다가 포뇨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면 어떡해?!“


“오래된 사랑의 마법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소스케의 지켜줄게는, 후지모토가 두려워하는 바로 그 일까지 너끈히 이겨낼 수 있는 강력한 사랑의 주술인 것이다. ‘포뇨가 결코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이란 의미가 담겨져 있는.


만일 호랑이와 여우가 혼인을 한다면, 그들이 과연 무탈할 수 있을까? 둘 중 누군가든 아니면 둘 다든 무슨 문제가 생겨야 하지 합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어떤 문제가 생겨야 할까? 아니, 아무리 강력한 만남 뒤에 서로가 둘도 없이 밀착해야만 한다고 해도, 반드시 이들에게 어떤 고난으로 작용할 만한 한계가 분명히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같은 종족은 아니니까.


지금 잠깐 떠올려 보니, 한 쪽은 죽지도 늙지도 않고 태어날 다른 한 쪽을 찾아 기다리고, 또 다른 한 쪽은 갑자기 자신을 찾아와 사랑에 빠지게 만든 상대의 죽음을 본 후로 갑자기 늙지도 죽지도 않게 된다면? 그리고 이 사랑이 거듭 계속 된다면?


그러면 이들의 영혼 깊은 곳에는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면 그 상대는 죽고 나는 다음에 그의 영혼을 가지고 다시 태어난 존재와 만나 혼인 후에나 죽게 된다가 새겨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 여러분이라면 이들이 처음 만났을 때, 서로가 서로를 그저 반기도록 놔 둘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어느 한 쪽이 필사적으로 도망쳐야 재밌지 않을까?


좋다. 일단 이건 이렇게 두고, 그렇다면, 그 다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며, 그러니까 이들이 서로의 비밀을 어떻게 알아내고 절정으로 가는 계단을 어떻게 쌓아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만들지 연구를 좀 더 해봐야겠다.










이 브런치의 처음이 궁금하다면,

https://brunch.co.kr/@hansuin/32


그리고 앞에 언급한 영상은 일단 난 틱톡을 안 하기 때문에 유튭해서 하나 긁어 옴.

https://youtube.com/shorts/1G4MIQ8PAio?si=ur26kavCS0-JQsgM

코 둥근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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