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일요일, 우리 부부는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으로 향했다. 성지 순례와 도장 찍기, 그리고 맛집 찾기를 위해서였다. 감곡매괴성모성지에 들어서며 오래전 기억을 더듬었다. 고딕양식의 성당, 언젠가 큰 은행나무 아래 썼던 편지가 떠올랐지만, 그 나무는 더는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옛날 다이어리를 펼치다 한 장의 편지가 떨어졌다. 전신자 피정으로 감곡성당을 방문했을 때 성모님께 쓴 편지였다. 당시 우리 가정을 '무덤'이라 표현하며 웃음 가득한 가정으로 변화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내용이었다. 편지를 부치지 못하고 가져온 이유가 뭘까?
과외, 성당 봉사, 학부모회, 네트워크 마케팅에 발을 담그기 시작한 때였다. 수많은 일에 매몰되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내이자 어머니가 곁에 있어도 진정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남편의 말없이 강렬하게 표현했던 불만, 서로의 비난, 그 모든 것이 우리 가정의 어둠의 원인이었다. 내가 아니라 남편의 태도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편지를 썼다. 내용은 달랐다. 바라는 기도만이 아니라 감사의 기도로 변한 편지를 우체통에 넣고 발걸음 가볍게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1층과 2층에선 100년이 넘는 감곡 매괴성당의 역사 유물을 볼 수 있다. 임 가밀로 신부의 편지들, 종, 성체거동 시 사용했던 깃발이 전시되어 있다. 성체거동 시 사용한 깃발들은 정성스럽게 수를 놓아 화려했다. 성체거동이 얼마나 중요하 행사였는지 짐작이 갔다. 사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과거로 다녀왔다. 3층 성체조배실에는 가시관에 찔려 피 흘린 예수상이 있다. 예수님과 마주하기 좋은 장소이다.
친구 안나는 "난 감곡성당이 제일 좋아, 가면 편안하고 힘이 생겨." 라며 "감곡 가면 옛날 보리밥집에 꼭 가야 해. 나물 안 먹는 우리 아들들도 먹고 맛있다고 했어. 사찰 음식처럼 정갈하다고." 덧붙인 말이다. 친구의 말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는 성당 중 하나이다. 특히 감곡 매괴 성모 성지를 한국의 루르드라고 부른다. 성모님과 관련된 일화들 때문이다.
감곡성당은 프랑스인 임가밀로 신부로부터 시작되었다. 임가밀로는 1893년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머나먼 조선으로 와 여주 부엉골에서 사목을 시작했다. 사목활동 중 장호원에 이르렀을 때 산 밑에 대궐 같은 집을 바라보며, 임 신부는 성모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성모님,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 놀랍게도 1년 4개월 만에, 저택의 터와 산을 매입할 수 있었다. 감곡성당은 1896년 매괴(묵주 기도)의 성모를 주보성인으로 하여 장호원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하였다.
1943년엔 지금의 성모 광장에 일본인들이 신사를 지으려 했을 때, 임 가밀로 신부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모후 기념패를 땅에 묻고 기도했다."이 공사를 중단하게 해 주시면 이곳을 성모님께 봉헌하겠습니다." 천둥과 소나기, 벼락 등 여러 가지 기상이변으로 공사가 계속 지연되었다. 해방이 돼 일본인들의 꿈은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그 터는 1955년 성모 광장과 2018년 성모 동굴로 태어났다.
한국 전쟁 때에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인민군 사령부로 사용되던 성당에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자 인민군들은 그 원인이 성모상이라고 여겼다. 성모상은 7발의 총알을 맞고도 부서지지 않자, 기관단총으로 쏘았지만 총알들이 비켜갔다. 성모상을 끌어내리려고 하자 성모상에 눈물이 흘러내려 인민군이 철수했다고 한다. 지금도 총상의 흔적을 지닌 성모상이 그날의 기적을 증언하고 있다. 성당 정면에 있는 성모상 가까이 가면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성모님과 관련된 일들로 인해 감곡성당은 2006년 청주교구는 매괴 성모 순례지로 선포하였다. 2009년엔 로마 성모 대성전과 특별한 유대로 묶인 성당 및 순례지로 지정되었다.
감곡성당은 성모님 일화로도 유명하지만 1914년부터 시작된 성체현양대회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1914년 성체성혈 대축일에 시작한 성체현양대회는 지방 최초의 성체 신심행사였다. 성체를 공경하기 위한 행사인 성체 현양대회는 매년 10월 첫 주 목요일마다 하고 있다. 미사와 미사 중 축성한 성체와 함께 행렬, 성체강복으로 끝난다.
감곡은 성모님과 관련된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 한국의 루르드, 파티마라고 불린다. 이곳에서 치유를 받은 분들이 있어서인지 감곡 매괴 성모성지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언어가 들리기도 했다. 추수감사 미사라 성당에서 준비해 준 떡을 나눠 먹으며 성지를 나섰다. 감곡성당을 전에 다녀간 경험과 편지 이야기와 오늘 써서 성모님께 보낸 내용을 말하니 남편은 조용히 듣고 있다.
" 박물관 3층 올라갔다 왔어요?"
"응 다녀왔어, 3층은 따뜻하던데."
"기도 좀 하고 오지 그랬어요."
"나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 이것도 충분합니다."
점심은 감곡성당을 좋아하는 친구가 자주 말했던 옛날 보리집을 찾아갔다. 토, 일요일 휴무란다. 남편은 바로 검색을 하더니 외할머니집 본점으로 향했다. 사람이 많다 일단 합격. 청국장과 순두부국을 주문. 바로 반찬과 물을 가져다준다. 눈으로 보는 반찬 합격. 드디어 뚝배기에 음식이 나왔다.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남편과 난 눈빛으로 "어때? 좋은데." "맛있어요. 괜찮은데요." 남편은 먹다 말고 핸드폰에 저장을 했다. 맛집하나 추가요다. "안나에게 이 집 꼭 알려줘." 란다.
나의 성지 순례에 동참하는 걸 넘어서 남편도 자신만의 성지순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