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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크가드너 Dec 05. 2024

근사한 잔치에 초대받았는데...
못갔어

고창 개갑 순교성지


형제들과 저녁 약속시간까지 우리 부부에게 주어진 시간은 4시간이었다. 점심을 먹는 시간까지 포함해야 하니 성지 어느 곳을 다녀와도 빠듯하다. 광주 갈 때 가끔 들렸던 오래된 메밀집에서 쫓기듯 먹고 나왔다. 우리가 기억하는 서비스나 맛이 아니라 추억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영광과 고창 두 곳을 찾아보다  고창 개갑 순교성지 야외제단 뒤쪽 벽화를 보고 싶어 고창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가는 동안 퍼0000에 질문을 했다. 개갑순교성지에 가면 꼭 보고 와야 하는 게 뭐야? 순교자현양탑, 외양간경당, 야외제대와 어부바 성모상을 추천해 주었다. 고창 개갑 순교성지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보이면 좌회전하거나 우회전을 하면 된다. 최여겸 마티아 순교복자를 기념하는 곳이다.




최여겸 순교 복자는 어떤 분일까? 최여겸은 전라도 무장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다. 진산의 윤지충에게 교리를 배웠다. 이 두 복자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을까? 가까운 거리는 아닌데.




또한 최여겸은 처가가 충청도 한산이라 이존창 루도비꼬를 통해 신자가 되었다. 그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무장, 흥덕, 고창, 영광과 함평 등 서, 남해안 지역에 복음을 전파했다. 이 지역에서 28명을 입교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어 사형을 선고받고 고향으로 보내져 개갑장터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광화문에서 윤지충을 비롯한 123위 순교자와 함께 시복 되었다.




피에타상이 먼저 보이고, 성지 입구에서 최여겸마티아 복자상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호기심을 자극한 액자벽을 통해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인다. 멋지고 정리가 잘된  정원이다. 중간에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조형물들도 있었다. 충분히 보고 싶은데 남편이 자꾸만 이동을 해 재촉을 당했다.








외양간 경당 벽면 쪽에 민트색의 어부바 성모상이 보였다. 미소 띤 성모와 엄마에게 업혀 만족스러워하는  아기예수 너무 귀엽다. 바라보는 사람도 좋은 기분을 만들어 주는  어부바상이다. 청개구리도 어부바가 필요했나보다.








외양간 경댱의 내부
외양간 경당


다른 성지와 다르게 매일 오전 7시와 오후 3시 미사가 있다. 외양간경당에 도착한 게 2시 45분쯤이다. 미사가 시작하기 전에 내부를 찍고자 했다.  심플함이 끌어 당겨 잠시 머물렀다. 미사를 하고 싶다보다는 해야하나 고민을 하다 남편을 찾아 나섰다.







최여겸 마티아 수도원


밖으로 나오니 남편은 최여겸마티아 수도원 입구인 순례자 쉼터 근처로 이동했다. "여보 3시 미사 할고 갈까요?"  "시간이 없어."라고 한다. 미사가 중요한데, 여기저기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닌데 혼잣말을 하며 움직였다. 






쉼터 안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성모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각 지역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 성모상들은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있어 아름답게 보였다.특히 스페인 여행을 앞두고 있던 터라, 몬세라트 수도원의 흑인 성모상이 더욱 눈에 띄었다.







쉼터 한쪽에 최여겸 마티아의 사형 선고문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순교복자수도회에서 이 성지를 관리하고 있어 성지가 깔끔하고 심플의 멋이 있구나싶다. 정원이 넓어 많은 사람의 노고가 필요할텐데.



색유리로 된  십자가의 길 7처와 15처


 일반적으로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의 사형선고에서 십자가상의 죽음까지 14처까지이다. 개갑순교성지의 십자가의 길에는 15처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걸으면서 미사를 들어가야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영광이 아닌 고창을 선택하게 된 야외제단 모자이크 벽화이다.벽화내용은 최여겸 순교자가 입교시킨 28명과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최여겸 마티아가 예수님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순교현양탑 ㅏ앞면


순교현양탑은 총4개층로 구분되었고 앞쪽과 뒤쪽의 내용이 달랐다. 앞쪽은 망나니에 의해 순교자가 처형당하는 모습이고 뒷면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다. 



예수님이 지금 우리를 초대했는데 거절을 한 거네. 미사를 할 수 있게 영광인 아닌 이곳으로 향하게 한 거고 미사 시간도 3시, 아무리 봐도 미사 참석하라는 거였다. 

"여보 나 다른 곳 안 가도 돼. 미사하고 가자."라고 다시 말을 해도 또 시간이 없다며 거절을 했다. 아쉬움이 너무 남아 또다시 말을 했다. 

"여보 사람이 별로 없으니 미사 금방 끝날 거야."라고 해도 아니란다. 너무 속이 상했지만 나만 고집할 수 없어 아쉬움을 접었다. 루카복음 14장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초대에 응하지 않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치 내가 초대받고도 잔치에 못 가는 것 같아 미련이 많이 남았다. 


운전을 평소보다 훨씬 빠르게 해 "왜 이렇게 빨리 가요? 아직 여유 있어요." "늦으면 안되니까.5시 아니야?" "5시 30분이에요." 남편이 서두른 이유인즉슨 5시로 착각했던 것이다. 서로 소통을 했으면, 30분이면 미사 참석했어도 됐는데.




남편의 서두름으로 약속 장소인 계절한정식 명성에 먼저 도착해 기다려야 했다. 지난번 아버지 생신 때 맛있었는데 오늘은 어떨까? 날 고모할머니라고 부를 손자도 왔다. 잠에서 깨어나 울지도 않고 눈을 맞추며 잘 웃는다. 아이들은 정말 마법사 같다. 모두들 웃게 만든다. 모두 자리에 앉아 음식들이 하나씩 들어온다. 





생고기를 즐겨하지 않는 편이다. 이곳에서 육사시미가 맛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젓가락이 몇 번 더 갔다. 생선회, 각종 전, 표고버섯 탕수, 들깨떡국과 마지막 보리굴비와 찻물이 나왔다. 


오빠들과 대화를 통해 밥을 찬 녹차물에 말아먹으면 밥이 더 쫀득해진다고 했다. 보리굴비가 짜서 씻어 먹으라고 주는 줄 알았더니만. 녹차에 만 밥에 보리굴비를 올리고 고추장까지 해서 먹으니 이것 또한 맛있다. 먹는 이야기와 서로들 사는 이야기에 시간이 휘리릭 가버렸다. 


평택에서 광주, 고창, 광주까지 긴 여정이 끝났다. 아직까지도 개갑성지 예수님의  잔치에 못 간 게 아쉽다. 약속 시간을 착각한 남편의 태도를 이해하지만 난 여전히 너무나도 중요한 잔치에 초대받았는데 가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왜 우기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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