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ma Jun 02. 2023

[엄마, 안녕] 13. 명의

선택받지 못한 자


엄마가 밤새 구토를 하던 다음 날, 엄마를 두고 일정을 갔다가 동료 H를 만났었다. H를 보자 눈물이 먼저 흘렀고, 엄마가 폐암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H는 폐암 전문의를 검색해서 나에게 알려줬다.  폐암 전문의도 수술 방면과 약물치료 방면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것조차 몰랐던 때이다. H가 알려준 의사 선생님들 중 한 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분은 유명한 대학병원의 약물 치료 방면에서 명의로 알려져 있었다. 나도 몇 번 더 검색을 해보니, 그 의사 선생님이 좋아 보였다. 진단받은 병원의 선생님이 나쁘다기보다는 더 좋은 선생님한테 더 좋은 치료를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바로 유명한 대학 병원의 명의한테 예약을 했다. 유명한 명의라 아주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엄마가 암 진단을 받았는지 물어봐서 조직검사를 시행했고 다음 날 진단을 받는다고 말하니, 3일 후에 바로 예약이 이뤄졌었다.



기존 병원에서 진단을 받던 날, 진료 전 미리 피검사를 하라고 했다.  비용이 생각보다 비쌌다. 직원한테 물어봐도 정확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 돌려받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이 무슨 뜻인지도 알 수 없었다. 너무 답답했고, 병원을 빨리 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또 막상 병원을 옮기겠다는 말을 하려니, 의사 선생님한테 미안해져서 심장까지 두근거렸다. 그렇게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은 폐암 말기라고 진단했다.

표적치료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피검사(이게 그 비싼 피검사였다)를 진행했다는 이야기까지 듣자, 차마 병원을 옮기겠다고 말할 수 없었다. 피검사 결과 나오면 그때 옮겨야겠다 생각하고,  유명한 대학병원의 명의 예약을 취소했었다.

다시 다음 진료 일정을 잡고, 뇌 MRI를 예약하 한 보따리의 약을 처방받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마약성진통제 2개와 소화촉진제를 같이 먹고 그 밤, 엄마는 뱃속이 꾸룩 거리며 물소리가 난다며 밤새 고통에 시달렸었다. 약 때문인지, 뭐가 잘못된 건지 알지 못한 채, 밤새 엄마의 고통을 지켜볼 뿐이었다. 빨리 더 좋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그 의사 선생님한테 말하는 게 미안해서 말을 못 했던 내 우유부단함이 엄마를 힘들게 한 거 같아서 나도 고통스러운 밤이었었다. 

날이 밝자마자, 유명한 대학병원에 전화해서 예약을 다시 다. 대학병원인데 그렇게 빨리 예약되는 것이 참 신기했었다.


다음 진료일에 오빠가 병원 옮기겠다는 얘기를 하기로 했다. 오빠는 마침 여수 일정에 잠시 여유가 생겨서 병원에 함께 올 수 있었다. 그래서 엄마와 언니, 오빠, 내가 진료실 안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었다.

의사 선생님은 표적치료를 위한 피검사에서, 4개의 돌연변이 중 2개는 일치하지 않고, 남은 2개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했었다. 

의사의 말을 차분히 듣고 나서 오빠는 병원을 옮기겠다고 했다. 의사는 상관없다는 듯 그러라고 치료 잘 받으라고 하고 진료를 마쳤다. 내가 전전긍긍했던 것에 비해 너무 순순히 말해서 아쉬울 정도였었다.



드디어 유명한 대학병원의 명의를 만나러 갔다.

암센터가 따로 있었고, 폐암센터 접수창구 앞에는 아주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로 가득했었다.


암 환자가 진짜 많았다.


한참을 기다린 후,  엄마 차례가 다가온다고 진료실 앞으로 가라는 알림이 떴다. 진료실 앞도 사람들로 북적여서, 오빠와 엄마는 접수창구 앞 의자에 조금 더 앉아 있게 하고 나만 진료실 앞으로 가서 기다렸다. 진료실 앞의 TV 모니터에서는 명의가 출연한 TV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었다. 진료실 앞에서도 한참을 기다렸기에 나는 명의를 직접 보기도 전에 이미 얼굴을 익혔고 친숙한 느낌마저 들었었다. 그때, 간호사가 어떤 남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들렸다.

"...... 언제든 다시 선생님으로 바꿀 수 있어요."

그 남자는 보호자도 없이 혼자였는데, 예약한 명의 말고 다른 선생님께 진료를 받게 된다는 말에 어리둥절한 듯 보였다.  


엄마가 호명 됐다. 오빠와 엄마랑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간호사 2명과 명의가 있었는데, 모두 서서 업무를 보고 있었다. 일정을 담당하는 간호사가 문 앞에 있었고, 진료실 안 쪽에는 명의와 명의의 지시사항을 기록하는 간호사가 있었다. 명의는 눈이 충혈되어 있었고, 간혹 눈을 힘겹게 깜빡여서 엄마보다 더 힘들어 보였었다. 그러나 말을 시작하자 발음이 정확했고, 자신감과 확신에 찬 느낌이었다. 말솜씨가 아주 유려했었다. 진료실 안의 구조나 말투 등이 아주 전문가적인 느낌이 들어서 나는 안심이 됐었다.

명의는 미리 제출한 엄마의 진료 기록지를 보고 암이 맞다고 했다. EGFR, PD-1, PD-L1, T세포, 키트루다...... 등등의  어려운 용어를 노트에 쓰면서 설명을 했고, 용어를 사용할 때마다 폐암에 대한 설명이 적힌 소책자나, 자신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사진과 설명이 적힌 프린트물을 하나씩 나눠줬었다. 그 행동은 멈칫하거나 불필요한 동작도 없이 숙련되어 있었다. 흡사 아주 오래 공연을 한 1인극 배우 같기도 했고, 영업사원이 물건을 파는 것 같기도 했었다. 아니, 영업사원 말고 영업부장님 정도의 느낌이었다.

명의의 설명을 나는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오빠는 미리 검색을 하고 공부를 했는지 용어를 제법 알아듣고 있었다. 명의는 오빠한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표적치료 검사에서 2개의 돌연변이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안타깝고, 남은 2개의 검사 결과도 기존병원에서 빠른 시간 내에 갖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결과도 일치하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면서 '가던트'라는 검사를 통해 더 정밀하게 다른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지 알아보겠냐고 물었다. 미국에서 검사하는 것이라 보험처리가 안 돼서 굉장히 비쌌다. 오빠는 뭐라도 하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임상실험에 참가하겠냐고 물었고, 오빠는 또 뭐든 하겠다고 했었다. 명의는 옆 간호사한테 응급으로 뇌 MRI를 찍게 하라고 지시하고, 어느 선생님한테 어떻게 하라는 말을 전하고 있었다. 엄마의 증상을 묻고 붙이는 마약성 진통제와 신경통약, 소화촉진제 등을 처방해 줬었다. 그렇게 진료가 끝났다.


밖으로 나오니 주치의가 바뀌었다는 문자가 왔다. 우리를 어딘가로 데려가서 다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하시는 분은 이후 일정을 설명했고, 내가 주치의가 바뀐 것이냐고 묻자,

"다 한 팀이에요. 진료를 받다가 언제든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선생님으로 바꿀 수 있으니까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아까 남자한테 하던 말을 우리한테 하고 있었다.

한 팀이긴 했었다. 신약개발팀의 다른 의사 선생님으로 바뀐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탈락된 기분이었다. 아, 엄마는 명의한테 진료를 못 받는구나. 그래서 예약이 그렇게 쉽게 이뤄졌구나.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기존 병원으로 갈 수도 없었다.

이 큰 병원의 시스템이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었다. 아니,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시 어떤 사람들이 오더니 엄마의 마른 팔에서 잘 나오지도 않은 피를 3~4통이나 뽑았다. 핏줄을 찾지 못해서 주사 바늘도 몇 번이나 찔렀었다. 그들은 신약 임상실험팀에서 왔다고 하면서 집에 가서 대변을 받아오라고 키트를 주었다. 그리고 서류에 이름과 주소 등을 쓰라고 했다. 엄마는 글자 쓰는 것에 대해 부담을 갖고 있었기에, 내가 대신 쓰고 이름만 엄마가 써도 되겠냐고, 늘 그랬었다고 이해를 구했지만, 그들은 아랑곳없이 엄마한테 쓰게 했었다.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마는 힘들게 글자를 쓰고 있었다. 난 한 번 더 내가 쓰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꼭 엄마가 써야 한다고 했다.

"잘 쓰고 계세요. 집에 가서 대변을 받아오시면 교통비로 10만 원 드려요."

엄마는 힘겹게 다시 썼다. 난 또 지켜보다가,

"엄마가 힘들어하시잖아요!!"

라고 화를 냈었다. 오빠와 엄마는 내가 화를 내자 놀랐고, 엄마는 자신 때문에 불란이 생기는 것이 싫어서 그냥 자신이 쓰겠다고 하면서 힘겹게 글자썼었다. 그들은 내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피 뽑고, 대변을 받아 오시면 10만 원 드려요."


사람을 10만 원에 홀리는 것 같아서, 엄마를 치료할 환자가 아니라 실험군으로만 보는 거 같아서 그들이 더 미워졌었다. 난 더 이상 볼 수가 없어서 그 자리를 떠났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유명한 대학병원의 명의라는 것에 현혹됐던 나의 어리석음과 욕심에 대한 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지만, 명의에게 선택받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을 명의나 간호사한테는 표현 못하고, 아무 힘없는 그저 신약 임상참여에 동의는 그들에게 쏟아부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치졸하게도.

작가의 이전글 [엄마, 안녕] 12. 네 자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