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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현진 Mar 25. 2024

왕의 귀환

수필(부제-MBC 나는 가수다 임재범)

커버사진 출처: 조엽문학회 카페(2011년 11월 평생학습센터 행사 당시 문예창작반 시화전 사진)  

 사진- 여운 오현진

왕이 돌아왔다.

세상과 단절한 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적막한 숲 속 자신만의 거처에서 은둔하던 상처 입은 호랑이.

전설 속의 영웅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뿐 아무도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던 그가 은둔하던 숲을 벗어나

세상의 중심으로 들어선 것이다.


라일락 향기가 무르익는 오월의 어느 일요일 저녁, 그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었다. 하루 일과를 갈무리하고

평온한 휴일 저녁의 여유를 누리는 그 시간, 창 너머로 아스라 하게 보이는 하늘 저편이 석양에 물들 즈음에 예기치 않게 그가 다가왔다. 그와의 뜻밖의 만남은 일요일 저녁에 방송되는 모 방송사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요즘 방송에서 보기 힘든 레전드 가수들이 나와 경연을 벌이는 이 프로그램을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보다가 차츰 리모컨을 내려놓으며 채널 고정이 되어버렸다. 쟁쟁한 실력을 갖췄지만 

무대에 설 기회가 적어 가까이 접하기 어려웠던 가수들을 볼 수 있고 추억이 어린 명곡들을 들으며 공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데 그가 출연하면서부터 더욱 이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를 <나는 가수다>에서 만나게 되었을 때 사실 믿기지 않았다.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 그를 만난다는 

것은 놀랍고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25년 전 한국 최초의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로 데뷔한 후 한국 록(rock)의 전설로 불리며 국내 최고의 보컬리스트라는 찬사와 함께 인기와 명성을 얻었던 그였지만 음반발매와 

콘서트 공연에 주력하면서 간간이 케이블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온 것 외에는 방송활동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방송에서 직접 그의 공연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그만큼 반가웠고 

또한 설렜다. 오월의 첫 일요일 저녁, 기대와 설렘으로 기다려왔던 그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단정한 캐주얼 정장에 뿔테안경을 쓰고 머리는 삭발한 평범하고 소탈한 차림새의 그가 무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 나온다. 전설로 회자되던 그의 실체가 드러나며 확인되는 순간 방청석의 청중평가단 한 명 

한 명의 얼굴들마다 기대감으로 설레는 감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세상에, 중년의 정장 입은 남자 관객들까지 소녀같이 두 손을 모으고 설레어하는 모습이라니.

이윽고 그의 묵직하고 허스키한 중저음의 음색이 무대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굵고 두터우면서 단단하고

힘 있게 뻗어나가는 그의 음색은 한국인에게서는 거의 나올 수 없고 아시아를 통틀어서도 찾아보기 힘다고 한다. 젊은 시절 파워풀하고 패기 넘치던 그의 목소리는 나이가 들면서 굴곡진 삶의 연륜이 묻어 나오는 

진정성으로 인해 깊이와 울림이 더해져 사람들의 감성을 적신다. 

그가 첫 무대에서 부르는 <너를 위해>는 그의 실제 경험담이 녹아들어 있어서인지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다. 그의 아내는 현재 갑상선 암으로 투병 중이다. 결혼 10주년이 되는 올해 초에 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았지만 다른 장기에 전이된 상태라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우울증과 조울증을 앓으며 무기력하게 살아온 지난날의 삶과 한 달에 100~200만 원 정도의 저작권료 수입에 의존해 왔고 그나마도 몇 달씩 수입이 없을 

때도 많아 생활고를 겪어온 사실을 토로했다. 아내의 병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자신 탓이라 

여기며 눈물짓는 이 남자. 한줄기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남자의 눈물이 너무도 아프다.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며 감정에 북받치는 듯 그는 목이 메어 잠시 흔들리는 듯 하지만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특유의 절제된 창법으로 마무리한다.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하면서 어느덧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가히 신이 내린 음색이라 할 만하다. 굳어버렸던 감정을 내면의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려 흔들어 깨우고 

결국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 남자. 시나브로 어둠이 창가에 밀려드는 동안에 가슴을 울린 노래 

하나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온전히 사로잡고 뒤흔들어놓았다. 말 그대로 왕의 귀환이다.


남진의 <빈 잔>을  *프로그래시브 록 스타일로 편곡한 1차 경연 무대에서 그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검은 가죽 재킷과 타이트한 검은 바지 차림에 옆머리를 약간 밀어서 세련된 느낌을 주는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와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소화해 낸 그의 색다른 변신은 신선하면서도 섹시한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50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20~30대 젊은이들도 소화하기 쉽지 않은 스타일을 선보인 

그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 저 모습이 정녕 50세의 남자란 말인가! 

하긴 그의 실제 나이를 처음 알았을 때 내 눈을 의심했다. 아무리 많게 봐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외모인데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62년생 범띠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확실히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외모이다. 180이 넘는 훤칠한 키에 듬직하고 단단한 체격을 지닌 그는 운동을 꾸준히 한 덕분인지 근육도 탄탄하고 배도 나오지 않고 늘씬하고 날렵 하다. 그래서 옷맵시가 잘 살아난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서구적인 얼굴은 시원시원하고 남자답게 잘 생겼다. 피부는 하얗고 매끈한 데다 목에 주름도 하나 

없다. 그는 젊어 보일 뿐 아니라 잘생기고 남자답고 섹시하기까지 하다. 관록 있는 중년남자의 섹시한 매력은 치명적이다.  

이 남자의 섹시함은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의 거칠면서도 순수한 매력에 도를 넘지 않은 절제의 미학으로 

애를 태우듯 가슴속 작은 떨림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섹시하고 멋진 남자가 부르는 <빈 잔>은 그의 넘치는 

매력만큼이나 환상적이었고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두운 무대 위의 적요를 가르며 둥둥 울리는 대북소리에 

이어 티베트 고승들이 낸다는 인간의 한계에 이르는 최저음과 피처링을 도와주는 뮤지컬 배우의 고혹적인 

구음, 그리고 폭발적인 록샤우팅이 어우러진 <빈 잔>은 세계무대에 내세워도 손색이 없을 최고의 예술 그 

자체였다. 주위를 한순간에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야성미 넘치는 호랑이의 눈빛. 그 강렬한 눈빛을 보면 

가슴이 서늘해지는 전율이 느껴진다. 한이 서린 듯 처절한 포효로 그는 무대를 장악한다. 원곡을 부른 남진도 공연을 보고 너무나 멋지고 환상적이었다고 극찬을 했다고 한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날 독감으로 열이 

40도나 올라 최악의  컨디션이었다는 것이다. 고열로 인해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도 자신의 모든 열정을 불사르며 월드 클래스 급의 무대를 선사한 그는 <빈 잔> 공연 후 상태가 악화되어 병원으로 실려갔다는 후문이다. 그가 공연이 끝나자마자 응급실로 실려갔다는 말에 안타깝고 안쓰러웠다. 그렇게 아픈 몸에도 최고의 멋진 무대를 보여준 그에게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40도 고열에도 이 정도인데 정상적인 컨디션 

일 때 이 무대를 선보였다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심장이 떨린다.


2차 경연에서 그는 윤복희의 <여러분>을 가스펠 송으로 편곡하여 불렀다. 이 무대에서 그는 검은색의 

실크셔츠와 바지, 흰색 재킷의 점잖은 정장 차림에 머리도 밝은 톤으로 염색하여 중후한 매력을 풍겼다. 

위풍당당한 한 마리의 호랑이처럼 늠름하고 위엄 있는 자태로 무대 위에 선 그는 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고 

난 후 관객석을 찬찬히 훑어본다. 그리고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마이크를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의 <여러분>이 그 독보적인 음색을 통해 TV속의 관객들과 TV밖의 내 가슴속을 깊은 울림으로 파고들었다. 굴곡진 그의 인생의 상처와 아픔이 노래 마디마다 아련한 슬픔으로 배어 나와 절절하게 감성을 후벼 파는데 

배길 재간이 없다. 아버지가 당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유명한 아나운서였지만 복잡하고 곡절 많은 사연으로 얽힌 아픈 가족사로 인해 불우한 성장기를 보내야 했고, 그 이후로도 외로움과 상처를 안고 기구한 운명의 

삶을 거쳐온 그에게 사람들은 연민을 느끼며 그의 슬픔과 아픔의 감정을 공유한다. 그래서 진정성이 담긴 

그의 노래가 더욱 절절하게 와닿는 것일 게다. 관객들도 울고 그의 눈가에도 그렁그렁 눈물이 고인다. 

공연에 몰입하여 시청하던 나도 어느새 감정 이입이 되어 주체할 수 없이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가수의 노래에 감동하고 이토록 뜨겁게 눈물을 흘려본 것이 얼마만이던가. 가슴이 먹먹해지는 여운과 함께 노래가 끝나자 관객들은 저마다 눈물을 훔치며 일제히 일어나 열렬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나는 가수다> 무대 최초의 기립박수였다. 그 만의 스타일과 느낌으로 재해석되어 새롭게 탄생한 <여러분>은 공중파 방송에서 감히 접하기 어려운 최고의 무대였고 평생 잊을 수 없는 감동을 안겨주었다. 

원곡자인 윤항기와 윤복희도 감동으로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 말을 더해 무엇하랴.

그러나, 맹장수술로 하차하는 바람에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분>은 이 프로그램에서 마지막 무대가 

되어 버렸다. 그는 마지막 하차 인사를 한 후 후배 가수들의 공연을 지켜보며 일일이 자상하게 챙기고 

다독이는 맏형으로서의 책임을 끝까지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다시 돌아올 운명이라면 이 무대로 돌아와 노래할 것이다. 호랑이의 눈빛을 잊지 말아 달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그는 무대를 떠났다.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였다. 거칠고 순수한 야성의 매력이 그대로 흘러넘치는 야생의 호랑이. 

그런 그가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 스타로서의 

화려한 이름을 내걸고서가 아니라 한 여자의 남편이자 어린 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이고 싶은 가장으로서 

그는 무대에 올랐다. 사랑하는 두 여자, 아내와 딸을 위해 스스로 길들여 짐을 선택한 이 남자.  

그는 임재범이다.


 


                                                                                   - 2011. 6.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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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래시브 록((Progressive rock)- 지적이고 예술적인 느낌의 록 음악.


                                                       아트 락(art rock)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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