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 선고가 늦어지면서..
세상의 문제는 멍청이들과 광신도들은 늘 자신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반면 현명한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 버트런드 러셀
어제 가벼운 봄바람이 다정하게 부르길래 우리는 떠밀리듯 뒷동산으로 향했다. 겨울 내내 뻣뻣하게 굳은 내 몸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새순 맞이 봄준비가 한창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산에 올랐다. 오를 기분이 아니었다고 해야 정확하다. 긴 탄핵정국은 대한민국 전반에 집단우울증을 뿌렸다. 전 세계가 빠르게 돌아가는 데 우리나라만 멈춘 시계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빼앗은 겨울이 지나간다. 기다리던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어제도 나지 않았다. 심리 91일째로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중 최장 기록을 세우며 장기화하고 있다. 이렇게 분명한 내란죄에도 주저하는 심판을 나는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한 윤석열 대통령은 헌재에서 국회가 자신의 내란 혐의를 씌우려는 억측이라며 '호수 위에 달그림자 쫓아가는 느낌'이며 계엄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다고 변명을 했다. 그렇다면 생중계하듯 지켜본 국민들의 눈은 허상을 보았다는 이야기다. 또 계엄은 잇따른 야당의 탄핵에 대한 통치권자의 권한이며 계엄령이 아니라 계몽령이었다는 변호인단의 말을 들을 때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더니 급기야 며칠 전엔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던 대통령이 검찰의 항고포기로 석방되었다. 법의 교묘한 틈을 억측으로 뚫어주는 검찰이나 무죄판결을 받은 표정으로 구치소를 나오는 모습까지 온 국민은 분노의 마음으로 지켜봐야 했다. 법은 큰 고기만 빠져나가는 촘촘한 그물이라는 개탄스런 잣대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 나라에 공정과 상식이 진정 있는 것인가 묻고 싶다.
문제는 헌재의 심리가 길어질수록 가짜뉴스가 도를 넘어서고 이제는 거대 야당이 내란 몰이를 하고 있다는 공세로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탄핵 판결 이후 극우세력의 폭동이 있을까 시민들은 두렵기만 하다.
이들의 배후를 조종하는 가짜뉴스 생성자들은 저들의 주장을 현실인식이 부족한 대중들을 현혹하는데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들은 좁은 시야를 가지고 다른 관점이나 입장 그리고 정확한 정보를 수용하려는 비판의식이 없는 사람들을 공략한다. 대한민국의 국론은 분열되고 갈등은 임계점을 건드리며 심화되고 있다.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정치의 결과물이 녹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가, 교육, 일터, 복지.. 어느 하나 정치의 피조물이 아닌 게 없다. 압축성장을 해온 우리나라는 겉모습은 갖춘 듯 보이지만 건너뛴 민주주의와 주권이 생략된 것이 많았다.
사람들은 저항을 할 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폭발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라. 일터에서 비정규직인 사람이 정규직보다 많고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도 낮을뿐더러 여성들의 소득은 그나마 남자들보다 훨씬 작다. 고용주와 노동자들은 서로 믿지 못하고 국가는 알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 지원을 거진 하지 않는다. 절대빈곤 인구와 상대적 빈곤 인구 비율이 높으며 소득 격차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노인이나 중증장애인과 같은 노동 능력이 없는 국민들을 위한 소득 지원도 매우 빈약하다. 그래서인지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국민의 비율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낮은 것이 현실이다.
국가경쟁력은 성숙하고 똑똑한 시민들의 힘에 의해 발전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 계몽하고 발전시키는 꼭 그만큼씩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왕지사 늦어진 만큼 번복할 수 없고 완벽한 헌재의 판결을 기대한다. 그것만이 현재의 혼란을 잠재우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대를 다독이고 중심을 잡아 줄 원로의 부재가 아쉽다. 예전의 정치는 갈등과 위기가 있을 때 원로를 찾아가 고언을 듣고 자세를 낮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고통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저 무겁고 깊은 흙을 뚫고 나오는 새순처럼 우리 대한민국은 반드시 일어설 것이라고 믿는다. 이번 계기로 민주주의는 우리가 투철한 수호의지와 꼼꼼한 질서 위에서만 유지된다는 소중한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