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는 책 속의 문장들
책과 문장이야말로 우리가 힘들 때 꼭 필요한 위로를 건넨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책은 우리에게 어떤 요구도 하지 않고 대가도 바라지 않으니까요. 그저 묵묵히 곁에 서서 우리 스스로 마음속 깊은 곳을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주죠. 게다가 책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교감의 매개 역할도 합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채널을 운영하면서 좋은 글귀를 전달하며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달래주고 있는 전승환 작가의 인문 에세이집이다. 그가 먼저 발견하고 소개하는 책 속의 숨은 보석 같은 인생의 문장들은 마주하다 보면 어느새 따뜻한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된다.
현대인들은 불안하다. 집중하지 못하고 의욕적이지 않다.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사회와 경제는 더 복잡하게 거대해진 반면, 개인의 능력은 전보다 더 복잡하고 약소해졌기 때문이다. 소속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은 거대한 퍼즐의 한 조각으로 살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삶의 패턴들은 나답게 살지 못한다는 외로움의 방에 갇히게 만든다. 누군가 나를 구출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상태랄까. 그것은 어쩌면 나를 방조함으로써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르는 상태의 결과치로 살아가게 한다.
에리히 프롬은 '건전한 사회'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형태는 '병든 사회'라고 말하며, 개인의 정신건강은 개인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 그에 속해 있는 사회구조에 주로 의존된다고 선언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인류 역사상 가장 고립되어 있고 무력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더욱 독서를 해야 한다. 사람까지 상품화되어 가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자신의 멘털을 지키고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려면 내가 원하는 존재 방식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남들이 원하는 인생이 아닌 내가 진짜 원하는 인생을 찾아야 하는 것이 '내 인생에 대한 예의'라 생각한다.
저자는 그동안 자신이 만났던 인생의 책들 중에서 많은 영감을 준 영혼이 담긴 문장들을 골라 담아 독자들과 이야기하고 있다. 마음을 알아주는 문장을 통해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고백한다. 독서에 대해 진심이 느껴져 뭉클했다. 나는 특히 1부 '나의 감정을 살피다'라는 챕터가 좋았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마주할 때마다 견디며 일으켜 준 것은 책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책 속에서 조용히 속삭이던 영혼이 담긴 문장들 덕분이었다. 저자가 그때의 나를 소환해 만나게 해 준 문장을 읽었을 때 소름이 돋았던 것 같다. 신형철 평론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한 문장이다.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나의 마음 깊숙한 바닥을 훑으며 통과했다. 아무것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을 지나야 할 때를 상기시켰기 때문이다.
좋은 일은 고사하고 매일매일이 고단하고 힘들었던 그때의 나는 쇼펜하우어의 글로도 위로받았다. 쇼펜하우어는 삶이란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살지만 인생은 기쁨을 쫓기보다는 재앙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행복론은 당시 내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현재의 불만족은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그의 말은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게 해줬다.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사랑하고 잊지 않기 위해 필사해 놓은 쇼펜하우어의 문장들이 실타래처럼 따라왔다. 문장의 힘이었다.
그렇다. 행복론은 그 이름 자체가 완곡한 표현일 뿐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덜 불행하게 산다는 것, 즉 참을 정도만큼 산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시작해야 한다. 물론 인생은 실제로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견디고 끝내기 위해 있는 것이다.
노인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통이 없으면 만족하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의 기쁨을 좇기보다 재앙이 닥치지 않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평범함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행이 닥치고 고통스러우면 평온했던 일상을 그리워한다. 평범을 우습게 보지 말라. 일상은 수없이 많은 정상이 누적된 결과물이다.
이 책에는 작가가 오랜 시간 읽고 담아 온 책 속 문장의 향연이 펼쳐져 있다. 우리는 사회에 내던져질 때 인생에서 정작 필요한 처세술이나 관계의 정립 또는 세계관은 배우지 못한 채 시작하고 만다. 연습 없이 바로 실전인 셈이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다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인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금 내 감정이 어떠냐에 따라 꽂히듯이 멈추는 단락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일상은 바쁘게 사는 것이 답이 아니다. 나의 감정, 시간, 나의 관계들을 정립하고 살 필요가 있다. 삶이 허무하지 않도록 더 늦지 않도록 자신의 가치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 길을 독서가 안내해 준다고 나는 믿고 있다.
이 책에는 작가가 읽은 여러 책들 속의 문장이 소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지럽지 않다. 안내를 잘해주는 작가의 능력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