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수 Oct 01. 2023

백화점 말고, 기 살려 줄 옷 가게를 찾아서

큰 마음먹고 백화점에 갔다.


옷 한 벌 쯤은 내게 선물해 줄 수 있지 않겠냐고. 남편도 내가 필요하다면 돈을 쓰라 했다. 돈 쓰는 것에 크게 눈치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도 눈치가 보였다. 나를 위해 돈을 쓰는 것에는 종종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뒤 따랐다.

아이를 위해선 지갑을 당연한 듯 열면서 나를 위한 일엔 그게 쉽지 않았다. 특히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 일엔 더 했다. 그런 내가 백화점 문화센터를 다녀와서 옷에 대해서는 마음이 좀 달라졌다. 나를 위해서도 과감하게 지갑을 열고 싶었다.



마음먹고 간 백화점이다. 또 가성비만 따지지 말고 눈에 쏙 드는 걸로. 내 품격을 쓱 올려다 주는 옷을 사 입어야지. 마네킹이 입은 옷들을 유심히 살폈다. 언젠가부터 백화점 옷은 삼사만 원 하는 청바지도 비싸다며 거의 사 본 적이 없는데. 예쁜 옷이 천지에 널렸다. 체크무늬 원피스도 세련됐고, 베이지색 코트는 보기만 해도 우아했다. 돈을 따지지 않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가격표를 찾아내서 눈으로 훑었다. 오메. 이 돈이면 우리 가족 일박으로 여행도 갈 수 있겠는데. 그렇게 내려놓은 가격표들이 겹겹이 쌓여들 때 고개가 푹 숙여졌다. 어떻게야 내가 살 수도 있겠지만 이걸 선택함으로 내가 포기해야 할 것들이 줄줄이 생각났다. 이걸로 애들 태권도도 보내고, 외식도 몇 번은 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어깨를 숙인 채 매장을 나왔다.


단념하려니 기운이 쑥 빠졌다. 다시 한번 중저가 브랜드로 눈을 돌렸다. 매대에 놓인 것이나 보세옷 가게 보다 저렴한 브랜드의 옷들도 있었다. 나는 여러 벌을 살 수 없으니 신중을 귀하고, 여러 번 옷을 입고 비교해 가며 하나를 장만했다. 돈 모아서 다음 달에 또 오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백화점을 나섰다.





베이지색 목이 환하게 파인 빅  카라의 셔츠는 내 둥글고 넓은 얼굴을 잘 커버해 줬다. 목이 짧지만 쇄골은 나름 자신 있는 내게 잘 어울리는 핏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껴 입던 옷 말고 생각해서 구매한 옷을 입고 나서니 나름 신바람이 났다.

그때가 시작일까. 옷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코트도 입고 싶고, 목이 짧은 앵클 부츠도 사고 싶었다. 스카프를 목에 두르면 지적이려나. 이 많은 것들을 하나 둘 장만하려면 나는 얼마나 돈이 있어야 할까. 아쉬운 마음에 입맛만 쩝쩝 다셨다. 그때 또 하나 알게 된 매장이 있었다.














‘환경’이라는 주제로 독서모임에서 자유롭게 책을 골라 독서모임을 했던 적 있다. 그때 영국의 환경보호 시스템에 관한 책을 읽었다. ‘런던 하늘 맑음’이라는 그 책은 참 인상 깊었다. 빗물을 모아 사용하고, 친환경적이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건물을 만드는 런던. 그 책 속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로 중고 물품이었다. 안 그래도 당근마켓으로 중고를 잘 사용하고 있었는데 옷도 중고 옷을 즐겨 입는다는 런던 사람들.




중고 물품을 대상으로 한 빈티지 마켓이 성행한다는 그 책을 읽고 나도 중고 옷을 한 번 입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헌 옷을 물려 입는 게 그렇게 싫었는데 졸지에 내가 관심을 다시 가지게 되다니. 구제 옷이라면 한창 어릴 때 부산 자갈치 시장에 가서 저렴하게 청바지를 샀던 게 기억났다. 그때는 할머니가 입었던 것만 같은 하얀 니트 카디건이나 무늬가 복고 스런 스웨터를 중고로 사려고 열을 낼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그때의 기억이 나쁘지 않아서일까. 헌 옷, 중고 옷이라는 어감이 다시 듣기 좀 불편했지만 눈으로 보고 싶었다.



이리저리 검색해 보니 매장이 하나 있었다. 예전에는 관심도 두지 않았던 ‘아름다운 가게’. 생각보다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미리 네이버 이미지를 훑어보니 내부도 깔끔했다. 내가 산 옷의 비용이 누군가에게 기부도 된다 하니 서로가 좋은 일인 듯싶었다.

그렇게 버스를 타고 고 아름다운 곳으로 향했다. 헌 옷이니 새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기대를 내려놓자고 나를 다독이고. 그냥 한번 중고의 맛 좀 보자며. 약간의 걱정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가게로 향했다.




아름다운 가게여. 내가 간다. 옷 욕심이 그득한 아줌마가 너를 만나러 간다.



Unsplash의Sarah Dorweiler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