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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06. 2023

삶이 힘겨운 날엔 옷 사러 간다

옷처럼 내 인생도 고를 수 있을까

-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할 때 나는 옷을 사러 간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아이들을 키웠다. 잠시 카페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십 년이라는 삶을 두고 봤을 때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다. 나는 거의 아이의 그늘을 따라 살았다고 해도 과함이 없었다. 그런 내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애들 교육비에 신중해져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그게 마냥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은 자랄수록 뭔가 해보기를 원했다. 배우고 싶은 것을 말리는 것도 참 어려웠다. 돈이 없으니 이건 배울 수 없다 매번 말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모든 것에는 돈이 필요했다. 내가 살고 싶은 환경을 선택하려 해도 돈이 필요했다. 내가 배우고 싶은 것에도 모두 돈이 들었다. 그런 삶에서 돈을 제외하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니 진짜 일을 하러 가야 했다.


십 년이라는 시간은 참말 무서운 거였다. 앞으로 나서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 아무쪼록 닥치면 다 해낼 수 있을 거라 이야기하지만 그 문을 나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해보자 결심하고 이리저리 구인광고 사이트를 뒤졌다. 육아와 관련된 일말 고는 오래 해본 일이 거의 없었다. 일을 알아보는 내내 비참함이 몰려왔다. 내가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며칠 동안 구인사이트를 뒤지며 열을 올렸다. 잠도 잘 안 왔다. 예민한 나는 감정이 몸으로 자주 전해지는데 5일 동안 변비가 왔다. 그 정도로 일을 시작하는데 두려움과 막막함, 먹먹함 온갖 감정들이 선물 보따리처럼 몰려들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던가. 나는 꾀를 내기 시작했다. 잘하는 게 뭔지, 할 수 있는 게 무언지 모르겠어서 그냥 딱 다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들 찰나 도서관이 생각났다. 

책에는 답이 있을 거야. 도서관 사람들 속에 함께 조각 퍼즐처럼 껴 앉아 진로, 적성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취업에 관련해서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도 참여하고, 취업 컨설팅도 받았다. 아쉬운 건 10년이라는 공백이 그리 간단히 깨질만한 공식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마음은 너무 작아져서 누군가의 말에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취업 상담을 받으며 원래 밝은 사람의 기질이 보이는데 이렇게 내향적으로 살아가면 힘들 것이라는 그 말에 마음이 파르르 떨렸다.


‘사람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더 움츠려드는 거 같아요.’


나는 잊고 있었던 나의 내향성을 다시 찾아서 기뻤던 사람인데 말이다. 움츠려 드는 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서서히 피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을 탓하고야 말았다.



Unsplash의Steve Johnson










마음이 허약할 때 나는 더 자주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의 잣대와 평가에 더 귀를 기울였다. 내가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너 잘못 살고 있어’하는 말에 의미를 두었다. 두고두고 곱씹고 가던 길을 멈추고 심지어 주저앉아 울었다. 그 사람이 하는 말도 맞는 부분일 수 있으나 나만큼 내 인생을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참고만 하되 내 갈 길은 스스로 선택하는 게 맞는 거였는데. 나는 자주 그러지 못했다. 그 사람 말이 내 전부 인냥 종종 픽 하고 쓰러졌다. 


내가 마음이 여린 날엔 삶의 많은 부분을 타인에게 건넸다. 내향성을 되찾고부터 그런 일들은 점점 횟수가 줄었다. 남에게 기대는 것 보다 스스로에 기대하는 게 뭔지 자주 질문하고서부터 인생은 확실히 자유로워졌다. 그런 시간들이 내 볼을 발그스레 물들이고 있었는데 다시 얼어붙고 말았다. 다시 또 남의 말에 기대어 살아갈 것인가. 나 스스로 삶의 문을 열고 나설 것인가. 


삶의 주도성을 되찾는 일에 가장 좋은 것은 내 인생의 작은 부분이라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다. 


큰 산을 움직여야 더 나은 삶이 내게로 올 것 같지만 그 처음 시작은 대체로 소박했다. 책 제목처럼 침대부터 정리한다던지, 새벽에 눈 비비고 일어나 내 시간을 확보하는 일. 하고 싶은 취미나 운동을 시작으로 삶은 보이지 않는 틈바구니 속에서 조금씩 매끄럽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게 생각났다. 내 일상에서 스스로 선택하고 취할 수 있는 작은 부분을 찾자고. 







마음이 힘겨울 때 버릇처럼 아름다운 가게에 들렀다. 만날 사람이 없을 때 시간을 때우고 싶을 때 거기에 들러 눈에 들어오는 옷을 입었다 벗었다 고르며 쇼를 하는 시간은 나를 흥분시켰다. 특이한 스타일의 옷들도 많아서 평소라면 절대로 입지 못할 옷들을 입으며 내 모습을 감상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거기서 내 체형과 얼굴에 맞는 옷 색의 조합들을 배워 나갔다. 소비로 인해 솟아오르는 도파민이 나를 기쁘게 해 줬을 것이고, 비용이 저렴해서 스트레스 풀기에도 만만했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 누구도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 옷, 네 얼굴에 안 받는데. 네 체형에 하이 웨스트는 좀 그럴 텐데’하는 간섭 없이 마음껏 나를 연구하는 그 자리가 좋았다. 


중독으로 비취든 어쩌든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저지르는 일탈 같은 순간이 좋았다. 그렇게 노력해도 아직 온전한 스타일은 다 갖추지 못했지만 어느새 뚜렷 해지는 내 취향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점점 옷을 사며 실패할 확률이 줄어들어 좋았다. 계절이 지날 때마다 옷 앓이를 하지만 한 계절이 끝나갈 때쯤 마음에 드는 옷들이 선명하게 옷장에 들어차 있는 게 좋았다. 


옷을 고르는 일처럼 내 삶도 그렇게 이어지지 않을까. 

지금은 어떤 일로 삶을 채울까 골머리 앓지만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해 나가다 보면 일상은 좋아하는 옷으로 차 있는 옷장처럼 선명해지지 않을까. 누군가의 말에 픽하고 쓰러지겠지만 꿋꿋이 스타일을 만들어 나가다 보면 삶에 대한 나의 시선도 확고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내 인생이라는 스타일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오늘도 옷을 사러 간다. 내 삶도 기꺼이 고르겠다는 마음으로.




Unsplash의Harry Cunningh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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