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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04. 2023

아이만을 위한 세계! 아니, 나를 위한 우주!


그 엄마는 내가 검은 매니큐어로 물들인 손을 들어 올릴 때마다 놀라는 기색이었다. 순하게 보이던 내가, 색깔 있는 매니큐어라곤 발라본 적 없던 내가 새까만 색을 그것도 열 손톱에 발라서는 자꾸 손을 올려대며 눈앞에 아른거리게 하니 말이다.

나도 요상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한 번도 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일탈 이라고나 할까. 푹 고아진 곰탕을 먹은 듯 속이 시원했다.




그 손톱을 하고 며칠 놀이터를 나갔지만 여전히 망부석처럼 앉아 있었다.

놀이터에 몇 시간이나 이젠 못 있겠다는 생각이 극에 달한 날, 침을 꼴깍 삼키고 한 시간만 놀이터에 있다 가겠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참고로 누구도 놀이터에 오래 앉아 있으라 시키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알람을 맞췄다. 이렇게라도 작정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거길 지키고 있을 것 같아서.

아이를 태권도에 보내면서부터 놀이터 갈 일이 줄었다.

올레! 나는 그 시간 동안 동네 카페에 앉아서 책을 봤다.





놀이터도 작은 사회라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애들 노는 것에 어른들이 서로 입댈 일이 많다. 즐거운 시간도 분명 있겠지만 엄마들끼리 서운할 일도 자주 있다. 사람 사이가 원래 얽히고설키는 거지만 애들 놀이엔 어른의 개입은 자랄수록 최소가 되어야 한다는 게 점점 나의 생각이 되었다.

엄마도 자신을 오롯이 돌보는 시간도 가지며 육아해야 한다. 뭐든 아이 위주로 톱니바퀴처럼 물려 생활하면 몸과 마음이 재처럼 다 타버리고 만다.




그 옛날보다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다.

밭을 맬까. 빨래터에서 얼음장같이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할까. 대신 엄마 노릇에 대한 기준은 그 어느 때보다 지극히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이 좋은 환경에서 애 키우는 것도 힘들어한다 타박하는 소리도 가끔 들린다. 예전 시대 육아환경과 비교하면 그런 말이 나 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 역시 옛날에 애 키우고 어찌 살아내셨을까 하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지금 나의 육아를 말해보자면 밭 매는 노동에서 다소 자유로워졌지만 친구 사귀는 것도 도와줘야 하고 노는 법도 가르쳐야 했다. 아이 키우는 선택지에 문제가 있어도 솔루션들이 너무 다양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이 좋은 환경에 애만 보면서 그것도 못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이 키우길 배워 본 적 없어 너무 어렵다고  말해보고 싶다. 아이 키우길 배워 보지도 아이 젖 먹는걸 본적도 심지어 일하느라 바쁜 부모님이 살갑게 놀아준 기억도 잘 없는 내가 아이에게 이 모든 걸 다 내어 주는 거 그게 쉬울까. 엄마가 되면 모성은 절로 자라는 아닐까 고민하며 내 머리를 쥐어 뜯은 적도 있는데 그건 아닌 같다. 각자 자신의 기질대로 육아를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기준에 기대지 말고 아이를 키워 나가는 것이다. 나와 아이의 기질에 자라나는 환경에 맞춰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다.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좋은 엄마가 돼야 한다는 나만의 강박적인 생각으로 놀이터에 그렇게 앉아 있었다. 죽어라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 하나로. 어떤 방식이 나와 아이에게 진짜 좋은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나는 이제 남의 잣대에 맞춘 기준을 저 버리기로 했다. 내 식대로 키우기로 했다. 온통 아이의 세계를 만드는 것에만 애를 썼다면 이제부터라도 내 작은 우주를 만들기로 했다. 그 삶 속으로 아이를 초대하기로 했다.


아이 친구 엄마들보다 내 친구와 더 자주 만나려 애썼다. 내 친구의 아이들이 함께 우리 집에 오면 우리 아이도 어울렸다. 예전처럼 내가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애쓰지 않았다. 다행히 애들은 태권도를 다니며 친해진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기 시작했다.

공부는 너희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 말하며 받아쓰기 50점이라는 점수에 눈 감았다. 나를 위해 공부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를 하는 독서모임에 참여했다.  내가 관심 있는 장르의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애들과 주말을 보낼 때는 편안한 옷을 입어도 그 외에는 내가 좋아하는 옷을 입었다. 등 뒤에 리본이 달린 여성스러운 옷, 나폴 거리는 시폰 블라우스, 베이지 색의 약간 굽이 있는 샌들까지 신으며 나의 여성스러움을 즐겼다.


놀이터에서 자주 입던 편한 바지와 후드 집업 점퍼는 내려놓고 나를 위한 스타일의 옷을 입기 시작했다. 옷에는 날개라도 달렸을까.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입을수록 하고 싶은 일은 더 자주 시도하고, 속에 담겨 있는 말들은 좀 더 강렬하게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끝까지 캐묻는 그 엄마에게 엷은 미소로 처음 이렇게 말도 해봤으니.


“저 그런 말 하는 거 불편해해요.”



Unsplash의Erik Dun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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