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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02. 2023

쎄 보이고 싶은 날엔 열 손가락에 검은 매니큐어를


그 누구도 내게 그러라 권하진 않았지만 나는 자칭, 타칭 배려인이었다. 

물건을 나누더라도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것은 내가 가졌다. 그 사람의 욕구를 더 우선해서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여 있었다. 아무도 시키고 권한 건 아니었는데 참는 게 버릇되었다. 

참는다는 것은 포기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원하는 게 있어도 입을 꼭 다물었다. 아무리 짬뽕을 먹고 싶어도 다들 짜장면을 먹는다면 오케이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흔쾌히라는 가면을 쓰고.



외로움을 두려워했다. 

누구나 느끼는 외로움. 나는 좀 특별한 구석이 있어서 세상의 모든 힘듦과 어려움들이 나에게 유독 더하다는 생각을 해 왔었던 것 같다. 사무치게 외로운 날 심하게 마음을 앓았다. 어떤 날은 내가 사람에게 버려질 까봐 두려워하는 날도 있었다. 이 모임에 소속되지 못하면 곁에 사람이 없으면 혼자 길을 걸으면 나는 끝장이라고 생각했다.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과 했을까. 나는 내 마음보다 항상 그 사람의 마음을 우선하게 되었다. 그게 사랑받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특히 아이친구 엄마들 사이에서 내 배려심은 더했다. 

일어나고 싶어도 꾹 참고, 말하고 싶어도 넘겨버렸다. 집에 가고 싶은데 더 앉아 있고, 애들이 재미있게 노니 참자며 나를 달랬다. 아무도 나를 막지 않았는데 나는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켰다. 가장 늦게 놀이터에서 집에 가는 사람은 아마도 나였을 것이다. 다음 날이면 놀이터라는 곳에 가기 싫어서 비라도 내렸으면 하고 빌면서도 꾸역꾸역 그 자리를 나갔다. 

내가 왜 그랬을까? 분명 즐겁게 노는 아이를 위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잘 가는 탓도 있었다. 가만 보면 시간은 합리화일 때가 많았다. 그것보다 이 사람과의 관계를 잃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다. 쉬고 싶다는 내 욕구를 들어줘도 되는데 말이다. 내 위주로 해버리면 멀어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자주 사람들 과의 관계에서 약자가 되었다. 아무도 내게 시키지 않았지만 내 욕구보다 남의 욕구를 우선했다. 내 것을 따지는 것은 이기심이라 생각했다. 그런 일들이 자주 쌓이다 보니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도 잃어버린 것 같다. 

나를 꾸미는 것이 돌보는 것이라 생각되지만 나에게 마음을 쓰는 것도 돌봄의 하나이다. 나를 아끼고 내 편이 되어주고, 때론 내 변호인이 되어서 함부로 말하는 그 사람에게 할 말도 할 줄 알았어야 했는데. 난 그런 방면에 있어서는 영 젬병이었다. 

나는 왜 그렇게 착한 사람 가면을 쓰고 다녔던 걸까. 나 자신에 대한 확신과 사랑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면 사람들이 떠나갈까 봐 두려워했다. 나의 배려심과 착함이 사람을 내게로 끄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버려질까 봐 너무 두려웠던 것이다.



Unsplash의Anthony Tran






아주 어린 날, 바쁜  부모님 곁에서 나는 항상 사랑에 고팠다. 

힘든 삶을 살았던 부모님은 그게 최선이었겠지만 어린 나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게 사랑에 굶주려 어른이 되었다. 나의 부모님은 여유가 있는 지금은 내게 최고의 사랑을 보낸다. 어렸을 때 사랑이 충전되지 않은 채 그대로 자란 내 모습은 커서도 이런 나를 휘둘렀다. 그렇게도 마음을 채우고 싶었던지 여기저기서 사랑을 구걸하고 다녔다. 그것도 자존심 상했던지 배려와 착함으로 위장을 해서 은근히 애정을 바랐지만 말이다. 


나의 기질은 원래 자유롭고 독립적이다. 

하고 싶은 게 많고 이리저리 바람처럼 나부끼며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내가 남에게 맞추고만 살아왔던 날들은 얼마나 갑갑한 시간들이었을까. 이유 없이 자주 두통을 앓았고, 잠을 설쳤다. 뭔가 할 말이 머릿속에 떠다니는 데 쉽게 뱉어내지 못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로 며칠째 잠도 못 잔다는 것을 알아챈 그날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놀이터에서도 오랜 시간 앉아 있고 싶지 않았다. 



나와 마음 맞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애들 교육엔 별반 관심도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당신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더 이상 자식을 잘 돌보는 엄마로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놀이터 이외의 내 삶도 중요했던 까닭이다. 

아이들은 스스로 친구를 만들고 자라야 된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내가 자꾸만 누구와 누군가를 엮어서 우리가 되게 만드는 것은 이제 아니라고 생각했다. 언제까지 그 일을 해 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나 이리저리 실수도 해가며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어 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나답게 나 다운 친구를 아이들과 상관없이 사귀고 싶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대해서 알아가기 시작할 때 나는 검은 매니큐어를 바를 생각을 했다.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쎄 보이는 내 모습을 통해 나올 것이라 나도 모를 궁리를 하게 됐다. 


그날 새까만 매니큐어를 열 손가락에 바르고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러 갔다. 



Unsplash의Allef Vinic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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