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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11. 2023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는 어딜까

나의 퍼스널 컬러를 대하며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은 나에게 휴식이자 위안이 돼 줬는데. 구직활동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사치스런 시간처럼 여겨진다. ‘언제까지 여기 앉아서 이렇게 책만 읽고 있을 거냐고.’ 내가 속으로 외친다. 

카페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기운 빠진다. 어깨도 축 늘어진다. 자꾸만 쳐지는 나를 바로 세우는 게 쉽지 않다. 나는 어떻게 용기를 얻을 수 있을까. 별다른 스펙도 없이 살아온 내 인생이 문제 인 걸까. 내가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걸까. 엄마로 10년이라는 시간은 최선의 선을 다하며 살았는데. 깊은 한숨이 바닥까지 저며든다. 


취직이 뜻대로 안 됐다. 쥐어짠 용기마저 다 사라지려던 날, 구직활동을 도와주는 센터에서 퍼스널 컬러 강의가 있다는 소식에 바삐 신청했다. 

뭘 해야 될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는 요즘, 한창 나 자신이 누군지 알아보는 것에 푹 빠졌다. 취업에 앞서 내가 누군지 알아야 그에 맞는 직무를 선택할 안목이 생긴다는 어떤 분의 말에 깊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나 때에는 그런 것도 없었다. 

모의고사 성적에 맞춰 대학진학을 권했으니 말이다. 담임선생님은 내 점수와 지원하고 싶은 학교를 살펴보고선 체교를 가라 말했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발야구를 할 때도 깍두기로 뛰었는데 말이다. 깍두기는 아무나 시켜주는 게 아니다. 나처럼 못하는 친구들이 아무 편에도 끼이지 못하니 깍두기란 이름으로 놀이에 어정쩡하게 끼워줬다. 운동의 재능이 전무한 이런 내게 체교를 권할 정도로 점수에 맞게 진로도 정해졌었다. 

다시 직업을 선택할 기로에서 방황하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는 조금 알 것 같지만 뭘 잘하는지, 어떤 게 직업에 있어 강점인지 모르겠다. 약점은 무엇이고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그게 또 어떻게 일로 활용될 수 있을지 알아차리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Unsplash의Pars Sahin









퍼스널 컬러라는 말을 옷에 관심을 가지면서 알게 되었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고유의 얼굴 톤과 분위기가 있는데 거기에 걸맞은 계절의 컬러가 저마다 있다는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눠진 데다 라이트, 트루, 뮤트처럼 나름 복잡한 용어로 다시 여러 갈래로 나눠졌다. 안 그래도 관심 있어서 책으로 관련한 것들을 열심히 독학하고 있었다. 그 강의를 구직센터에서 무료로 진행한다 했다. 



나는 주황색이 좋았다. 오렌지 빛 컬러가 감미로웠다. 따스한 색감이 시린 내 마음까지도 밝혀주는 것만 같았다. 머스터드 색도 꽤나 좋아해서 그 색감과 걸맞은 옷을 자주 사 입었다. 내 눈엔 괜찮아 보이는데 그런 색의 옷을 입고 ‘어머, 잘 어울린다’ 소리를 거의 들은 적 없었다. 그래도 내가 좋으니깐 하고 별 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립 컬러는 얼굴에 맞는 어쨌든 잘 어울리는 코랄을 찾으려고 무참히 덤볐다. 아무리 골라도 내게 맞는 코랄은 잘 없었다. 뭔가 촌스러움이 묻어난다고나 할까. 그렇게 실패를 자주 경험해 가며 옷을 골랐는데. 사람에 따라 잘 들어맞는 컬러가 있다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Unsplash의Lucas George Wendt



붉은 기가 돌면서 얼굴이 조금은 하얀 편이기도 한 나는(아침에 일어난 내 모습은 노랗게 떠 있다) 눈동자는 다크 한 브라운이다. 머리색은 염색을 하지 않아도 검다. 눈코입의 이목구비가 뚜렷하지 않고 둥근 얼굴형을 가진 나는 귀엽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런 나는 주로 봄과 가을빛이 다채로운 옐로와 브라운 컬러의 옷을 찾아다녔다. 그게 어울리는 줄 알고. 다른 옷은 시도해 볼 생각도 거의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색의 컬러를 주로 찾아다녔다. 

퍼스널 컬러 테스트를 해보니 내 타입은 여름 쿨 톤 중에서도 뮤트였다. 뮤트는 아주 여리 하거나 쨍한 색감보다는 그레이 빛이 섞인 무 채색 느낌의 옷들이 잘 어울리는 톤이었다. 




구직센터에서 퍼스널 컬러 테스트를 하기 전부터(얼마 되진 않았지만) 나는 내가 여름이나 겨울 쿨톤 일거라 생각했다. 쿨톤을 가진 사람들은 분홍빛이 꽤나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탁한 분홍은 제법 어울렸다) 오렌지색은 쿨톤에게 어울리지 않는 컬러 중 대표라 했다. 그러니 주황빛을 머금은 코랄 립스틱이 그렇게도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 퍼스널 컬러를 예상한 뒤로부터 나는 푸른 계열의 옷을 더 사 입기 시작했다. 역시나 아름다운 가게에 가서 이너 티는 회색으로 고르고 겉에 두를 외투는 푸른 코발트와 약간의 청록이 섞인 코트를 선택했더니 내 눈엔 찰떡이었다. 립스틱도 여름 쿨톤에 잘 어울린다는 핑크빛을 발랐더니 누리끼리한 얼굴빛이 살아나서 신기했다. 




퍼스널 컬러를 알고 나서부터 옷을 고르는데 조금 더 자신이 생겼다. 내게 어울리는 색의 조합을 머리로 인지하고 나서는 조금 탁한 색들을 골랐다 하면 대부분 안색이 살아났다. 매니큐어도 퍼스널 컬러가 있던지 원래 그 색의 손톱인 냥 푸른빛과 분홍빛 누디한 컬러가 내 피부 톤과 꽤나 잘 어울렸다. 나의 분위기에 맞는 색감은 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이다. 다만 그걸 몰랐기에 옷 입기에 헤맸던 것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니 나의 컬러가 더욱 명확해졌다. 옷 입기에 내 나름대로의 물이 올랐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해도 내 눈에 만족스러웠다. 그것도 중요했다. 나를 미워할 때가 많았으니. 스스로에게 사랑스럽단 기분을 충분히 느껴보는 것은 자기 비난에 충실했던 내게 꽤나 중요한 일이 분명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음에 들 기회가 점점 생겼으니깐. 그 옷을 입고 밖을 경쾌하게 나돌아 다니고 싶었으니까.



Unsplash의Diya Pokharel




내게 어울리는 색이 세상에 존재하듯이 나에게 잘 들어맞는 직업도 이 세상 어딘 가에 존재하지 않을까. 


스무 살,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많은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고, 적성에 맞지 않았던 선택이었기에 나는 끝없이 방황했다. 그때는 돈을 버는 게 중요했고, 적성이 알게 뭐냐고 생각했다. 아니 진로와 적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취업을 잘해서 이름 있는 곳에 다니는 게 중요했다. 재수까지 했던 나에게 남의 눈에 어찌 보이느냐는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친구들보다 삶의 속도가 느렸기에 얼른 근사한 직업이나 직장을 가져서 우쭐대고 싶었다. 

병원일은 힘들었고, 일 못한다는 소리를 여기저기 들으며 다녔다. 누구보다 최선을 다해 일했는데 일의 포인트가 맞지 않았다. 내게 어울리지 않는 옷이라는 것도 모르고 같은 직무의 일에서 벗어날 생각을 해 본 적 없다. 여기서 그만둬 봤자 무슨 맞는 일이 있을까 포기하는 심정으로 다녔던 것 같기도 하다.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 본래의 직업으로. 남편과 함께 가정을 돌볼 책임을 지니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 내게 맞지 않는 옷이라는 걸 알면서도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다시 이전 직업을 선택할 수 도 있다. 분명 그렇게 일상을 살아내는 것도 매우 숭고한 일이다. 

자신의 직업에 완벽하게 만족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특히나 진로, 적성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된 지는 그리 오랜 일도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나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면 같은 직업 내에서도 다른 직무의 일 그러니깐 일의 방법을 다른 식으로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를 할 수도 있고, 무언가 판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업을 할 수도 있고, 부서 간의 조정도 할 수 있을 것이며 내가 일하는 곳을 알리는 직무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색의 강점을 가진 사람인지에 대한 이해를 늘려 나간다면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내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용기와 기회를 더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취업준비생으로 또 김칫국부터 마시고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퍼스널 컬러처럼 내 기질에 잘 들어맞는 일의 형태를 알 수 있다면. 그런 일이 있다면. 아니 나를 찾아가는 지난한 여정을 견디다 보면 여름 쿨톤이 어울리는 것처럼 나에게 걸맞은 자리도 있지 않을까. 


그 시간을 견딘다. 


내가 들어 찰 자리. 


희망을 놓지 않고 내일을 기대하면 내 작은 행동의 선순환들이 발이 달려 내가 노래할 수 있는 그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이리라.



Unsplash의Timon Stu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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