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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 Oct 10. 2023

라지도 엑스라지도 괜찮아요

평가와 기준 앞에서

“언니, 언니는 55 맞아.”


한 번도 44 사이즈라는 옷은 입어 본 적 없다.

작은 것들은 다 입어 보기도 전에 안다. 발을 집어넣는 순간, 아 안 맞겠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든다. 한번 입어나 보자 애쓸 것도 없다. 바지 지퍼라도 잠기면 입어보는 흉내나 내지. 억지로 입었다간 몸에 끼여서 벗는 것조차 낑낑대고 있으니 말이다.


이십 대 때의 나보다 삼십 대의 나는 몸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졌다. 아이를 둘 낳고 나서 안 그래도 없던 허리라인은 거의 사라졌다. 하체의 묵직함이 눈으로 다가온 순간, 아무 바지나 입었다간 스트레스를 받았다. 내 눈엔 허벅지의 튼튼함이 도드라졌으니 말이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내 세울 것 없는 내 몸매. 관대해졌다기보다 포기했다는 게 맞는 말일까.

그래도 첫 아이를 낳고서 옷을 입었을 땐 이 정도로 맵시 없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남에게도 그렇게 보이고 싶었던지 옷가게서 바지 살 때 ‘언니는 55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직은 괜찮다는 안도감과 기분  좋은 한숨이 가볍게 내뱉어졌다.




삼십 대 중반을 들어서 갑상선 기능저하증을 앓았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붓고 살이 붙었더랬다. 나도 알아차리지 못한 걸 친구가 알았으니.


“수야 너 옷에 등살이 찡겨.”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잠시 굶고 고구마를 먹으며 열심히 살을 뺐다.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살찌는 증상이 있으나 호르몬 약이란 경이로웠다. 핑계를 댈 수 없을 만큼 약만 먹었다 하면 내 신체 기능이 잘 유지되었으니깐. 그니까 나는 그냥 살이 찐 거다. 달콤하고, 기름진 것들. 세상엔 왜 그렇게 맛있는 게 많을까.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는 먹는 걸로 스트레스 풀 때가 많았는데 정작 먹을 땐 그걸 몰랐다. 그리고 바지가 끼이는 순간, 상의가 무섭게 들러붙는다는 걸 느낄 때 내가 점점 더 도톰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살이 차 오를수록 옷 가게에 들르는 건 두려운 일이었다. 평가받는 자리니깐. ‘언니는 55예요.’라는 그런 경쾌한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내 몸을 지적당하는 일은 실은 언짢으니깐. 하이웨스트를 고르려는 나를 은근히 말리는 그 직원분의 행동에 나는 상처를 입고 말았으니깐.













아름다운 가게는 평가 없는 천국이었다.

이 가게를 알고 나서부터 나는 옷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 줄어들었다. 여기는 명품도 더러 보이는데 그 비싼 닥스도 만원이면 살 수가 있었다. (요즘은 가격이 조금 더 올랐지만 당시 만원은 아름다운 가게에서도 비싼 편이었다) 그런데 그 옆에 상표가 다 떨어진 꽈배기가 짱짱한 회색빛 니트가 훨씬 마음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바지의 치수도 알 수 없었다. 겉보기는 말짱한데 상표들은 세월에 따라 빛을 잃었다. 허리치수를 알고 싶어도 숫자의 흔적이 바래서 나는 대충 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 옷이 55인지 66인지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상의는 여러 치수의 스펙트럼을 넘나들었다. 큰 오버사이즈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내가 직접 단추를 따서 위치를 조정해 옷을 변형해 입었다. 바지는 허벅지의 기막힌 튼튼함을 내 보이고 싶지 않아 수선집에 맡겼다. 요즘은 통 큰 것을 입는 게 대세라지만 내 다리 체형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다리가 짧고 더 튼튼하게 느껴지는 바지를 입을 때마다 옷을 다 뜯어 버리고 싶었으니.

워싱이 멋스러운 바지들은 놓치기 아까워 집으로 데려왔다. 밑단을 발목이 보이도록 자르고, 시침핀으로 내 몸에 맞게 핏을 조정해 세탁소에 가서 이렇게 품을 줄여달라 부탁했다. 요즘에 이렇게 줄여 입지 않아요 하는 사장님의 말씀에 ‘안 그러면 제 다리가 짧고 굵게 보여요’하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수선했던 바지를 먼저 입었을 때 다리가 날씬해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확신이 들었다. 내 체형엔 이거다라는 생각 말이다.

Unsplash의Mukuko Studio





어쩌면 내가 나를 엄격하게 바라보는 잣대는 세상의 기준과 평가로 생긴 것이리라. 그 누구도 나를 평가하지 않으면 나에 대해 바라보는 시선은 꽤나 자비로워진다. 내가 55를 입던 66이나 77을 입던 그 기준에 나를 맞추지 않으면 나 자신을 평가할 일도 덜해진다.


나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누군가의 의도된 평가일지도 모르나 그 말이 언짢은 건 나만의 문제이려나. 비교를 하면 열등감도 생긴다. 태어난 자체로 존귀한 우리는 왜 평가를 받고 비교를 얻어야 하는 걸까. 과연 그 기준이 옳고 마땅한 것일까.

그럼에도 작은 치수의 옷이 들어갈 때마다 가벼운 미소가 지어지는 내가 선뜻 평가와 기준에 대해 말하는 게 조금 멋쩍긴 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가게에서 마음대로 옷을 입으며 나는 브랜드와 신체 치수라는 규격 앞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마음에 들지 않는 허벅지는 핏으로 보완하고, 돋보이는 내 쇄골은 목이 파진 상의를 즐겨 입으며 세상에 드러내면 된다. 계란이 될 수 없는 내 얼굴형에 상심하지 말고 브이넥 카라의 블라우스로 동그란 얼굴을 우회하면 된다. 55 바지가 더 이상 맞지 않다고 슬퍼하지 말자. 체격에 맞는 핏의 옷을 입는 순간 55나 66, 77 같은 신체 사이즈는 그리 큰 목표가 아닐지도 모른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내 몸을 수용하고 이를 더 괜찮게 포장한다. 더 나은 내 모습을 아끼고, 가진 것의 매력을 뽐낼 기회를 선물하면 된다.



몸에 대한 기준은 세상이 만든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중고 옷을 내 멋대로 코디해 입으며 하기 시작했다.



Unsplash의Girl with red 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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