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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r 28. 2024

더 큰 날갯짓을 위하여 더 큰 세상으로 너를 보낸다.

소중한 아가들을 보내며 

                                                           

 “오늘 공주 치마 입고 왔쩌요. 오늘 간직은 뭐예요?”수진이는 쫑알쫑알 귀여운 입을 쉴 틈 없이 움직이며 어린이집 등원한 자기의 가방과 도시락을 정리하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불현듯 이제 수진이도 내 곁을 떠날 시간이 되었구나. 등원하는 영아들을 맞이하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린 신생아부터 보육하는 가정 어린이집이다. 말을 시작하고 제법 의사소통이 되는 만 2세 가 되면 더 큰 세상으로 보내야 한다. 이제 수진이를 보낼 준비를 해야 하는 시간이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려는 중에 두 돌이 채 안 된 수진이를 앉고 수진이 부모님께서 불쑥 방문하셨다. 부모님과 상담하는 사이 수진이는 쏜살같이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어린이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잇감을 와르르 쏟으며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인다. 상담을 마친 후 다음 달부터 등원하기로 하고 집에 가려고 부모님이 수진이를 불러도 대답 없이 놀잇감 탐색 삼매경이다. 아버님이 얼른 아이를 안고 겉옷을 입히자 뒤로 벌러덩 누워 발버둥 치며 울어댄다. 부모님 두 분이 진땀을 흘리며 양말과 점퍼를 간신히 입혀 안고 나간다. 수진이 가족이 떠난 뒤 각반 교실을 둘러보니 폭탄 맞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교구장의 놀잇감이란 놀잇감은 다 바닥에 뒤엉켜 뒹굴고 있다. 놀잇감의 자리를 찾아 교실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는 휴 ~~ 손등으로 이마에 땀방울을 훔쳐냈다.


  수진이가 등원하던 첫날 어머님과 함께하는 적응 시간이다. 어머님께서 일이 있어 한 시간 정도 외출해야 한다고 수진이만 남겨 놓고 나가신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를 시켜도 관심이 없다. 어머니가 나가는지 들어오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낯가림도 없으며 그저 신기한 듯 이곳저곳 놀잇감 탐색에 빠져 있다. 그런 수진이를 보고 어머니는 낯가림이 없으니 부모와 함께하는 적응 시간은 필요 없다고 등원 둘째 날부터 수진이를 혼자 어린이집에 떼어 놓고 가신다. 수진이는 어머니가 가시는 것에도 관심 없고 혼자만의 놀이에 몰두한다. 그러다 친구들이 옆에 오면 밀거나 물어버린다. 그렇게 이삼일 놀잇감을 탐색하고 나서야 친구들이 보이는지 슬슬 친구들 곁으로 다가가 친구들이 가지고 노는 놀잇감을 막무가내로 빼앗거나, 놀잇감을 흩트려 놀이를 방해한다. 그런 행동을 못 하게 제재하면 뒤로 넘어져 머리를 바닥에 쿵~쿵~찧으며 운다. 바깥 놀이 시간 나가자고 하면 양말도 신발도 신지 않고 나가려 한다, 양말 신자 잡으면 뒤로 드러누워 발버둥이다. 간신히 달래 옷을 입혀 산책길에 나선다. 마이웨이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무작정 달린다. 그러다 산책 후 귀원 시간에는 안 들어오겠다. 또 뒹굴며 울어 젖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뒤로 드러누워 소리치며 울어대니 이웃에서 아동학대로 신고라도 할까 두렵기도 했다. 


수진이 부모님께 상담을 청했다. 가정에서 어떻게 보육하셨기에 집중도, 사회성 발달도, 의사소통도 거의 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어머님께서는 수진이를 낳은 직후 교통사고로 병원 치료와 재활치료를 오래 했단다. 자세히 보니 아직도 손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주로 연로하신 할머님께서 수진이를 돌보셨다. 상담하고 나니 상황이 이해된다. 티브이만 틀어주면 혼자서 조용히 티브이에 집중하니 대단한 집중력이라 생각했단다. 태어나서 제대로 된 상호작용이 없었다. 그저 티브이를 듣고 보며 혼자 지낸 것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영상을 보며 집중했는데 정지해 있는 상황은 못 견디고 상호작용이 없었으니 사회성도 발달할 수가 없었다. 적절한 언어 자극도 받아 보지 않았다. 계속 이대로 가면 부적응아가 될 수 있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쉽게 그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신다.


하루는 부모님 두 분을 불러 보육 과정을 참관해 보도록 했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 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른 친구들이 앉아서 색칠 놀이나 블록 쌓기 놀이할 때 수진이는 돌아다니며 친구들의 놀이 활동을 방해하거나 놀잇감을 흩트려 놓는 일이 거의 일상이다. 한 가지 놀이 활동에 집중하지도 못한다. 다행히 참관 수업 후 부모님께서 그 심각성을 깨달으셨다. 이제는 가정에서의 보육 방법을 바꾸시도록 제안했다. 우선 티브이는 없애고 그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하는 질 좋은 상호작용으로 보내도록 부탁드렸다. 그간 부족했던 상호작용을 보충해 줘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허용되는 일과 허용할 수 없는 일을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어린이집과 가정이 함께 끈질기게 2년여를 노력한 결과 스스로 하고 싶은 행동을 못 하게 하면 젖은 땅, 마른땅 가리지 않고 드러누워 뒹굴며 소리쳐 울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배웠다. “원장 선생님 우이 집에 놀러 오제요. 공주 치마 샤줄게요.” 대화도 통한다. 이젠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보낼 시간이다. 


사진으로 저장되어 쌓여있는 수진이와 함께 한 2년의 추억을 꺼내어 한 장 한 장 추억을 곱씹으며 몇 날 며칠 멋진 사진을 추려낸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수진이의 추억 앨범을 공들여 만든다. 부모님을 초대한다. 졸업장과 정성껏 만든 추억 앨범을 전달하고 부모님께서 준비한 꽃다발을 받아 든 수진이는 어설프고 귀여운 발음으로 송별 가와 답가를 부른다. 케이크에 촛불을 밝혀 수진이의 앞날을 환하게 밝혀주며 축하 노래의 순서로 수진이를 떠나보내는 졸업식을 마친다. 식이 끝나면 엄마 아빠와 함께 조리사 선생님께서 정성껏 준비해 주신 수진이가 좋아하는 반찬들과 소고기미역국으로 맛있는 마지막 만찬을 즐긴다. 그간 내 품에서 아무 탈 없이 잘 자라고 성장해 준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앞으로 더 큰 세상으로 날아가는 날갯짓을 활기차게 하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맛있는 점심 한 끼를 든든히 먹여 내 품에서 떠나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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