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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r 25. 2024

27년 만의 휴가

유여 곡절 끝에 떠난 휴가 

4월 초 일요일 갑자기 이상고온이다. 꽃망울을 맺기 시작하던 벚꽃이 하루 사이 만개했다. 벚꽃이 지기 전 어린이집 아이들과 꽃구경을 다녀와야겠다. 벚나무가 많아 봄이면 자주 찾는 승기 쉼터에 답사 겸 올라가 보았다. 만개한 벚꽃이 흐드러진 봄의 풍경은 황홀했다. 눈에만 담기에는 아쉽다. 핸드폰 셔터를 바쁘게 눌러댔다. 혼자 보기 아까워 초등학교 친구 중 여섯 명이 함께하는 단체 카톡방에 사진을 올리자, 띠리링 띠리링 전화벨이 울린다. “우와! 너무 아름답다.”흥분된 어조의 친구 목소리다. 들떠있던 내게 친구의 목소리는 도화선이다. 몇 년 전 스승의 날 초등학교 육 학년 담임선생님을 찾아뵙고 금산에서 유명한 도리 뱅뱅이란 음식을 얻어먹던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도리 뱅뱅이 얻어먹으러 또 가자!!” 하며 그 친구와 의기투합한 나의 모사(謀士)는 시작되었다. 

   

돌아가며 맡던 총무를 내가 맡고 있다, 귀찮은 생각에 내가 총무를 맡은 기간에 아무 일도 벌이지 말고 그냥 가지고 있다 다음 총무에게 넘기겠다. 생각했는데. 들뜬 기분에 깜박 잊었다. 단체 카톡방에 “우리 황 선생님께 도리 뱅뱅이 얻어먹으러 가자” 이 한마디에 단톡방이 벌집을 쑤셔놓은 듯하다. 언제?라는 날짜를 정하는 것부터 문제로 시작된다. “스승의 날 무렵 좋잖아” “아녀 아녀 오월은 가정의 달이라 다들 바쁠 겨 ”“야 이번엔 평일로 하자” 아차 괜히 시작했구나. 난 평일이 어려운데 친구들은 이제 모두 정년퇴직하고 심심하던 차니 기회다 싶은 거다. “야 원장이 것도 못 빼냐?” 다들 난리다. 잠시 고민해 보았다. 그동안 나 때문에 계속 좋은 날 못 잡았는데 또 나 때문에 주말에 복잡하게 다녀올걸. 생각하니 미안함과 들뜬 기분으로 “까짓것 그러자” 하고 대답하고 말았다. 


27년 만에 휴가 좀 한번 가보자 마음먹고 육아 종합 지원센터에서 지원해 주는 대체 교사를 신청했다. 날짜를 정해 선생님과도 약속을 잡았다. 앞으로도 한 달이나 남은 여행을 두고 단톡방이 매일 시끌벅적하다. “얘들아, 선물은 뭐로 할까?” 꽃바구니도 하자 등 의견이 분분하여 정신이 없다. 나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내가 더 나이 들어 제자들이 찾아오면 어떤 모습이 좋을까? 젊잖은 신사보다는 아가 때의 순수함이 남아있는 천진난만한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똑같이 티셔츠에 “스승님 존경합니다”. 란 문구를 새겨 넣어 맞춰 입고 가면 어떨까? 하고 의견을 내자 “좋은 아이디어다”“야 난 남사시러워 못 입어”다양한 반응이지만 다행히 찬성 쪽이 많다. 다양한 이견이 많아 한 가지 결정할 때마다 일을 괜히 벌였나 하는 후회가 잠깐씩 들기도 한다. 일단 “스승님 존경합니다”란 글귀를 새긴 티셔츠를 미리 주문했다. 생각보다 일찍 받았다. 다 손빨래해 그날 가져가서 바로 입도록 준비했다. 여행을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설레고 행복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육아 종합지원 센터에서 해마다 어린이집에 “영유아 발달 슈퍼비전”을 제공한다. 어린이집에서 육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의 사례를 가지고 전문가와 원장과 담임선생님들이 함께 모여 5회기 동안 토론하고 공부하며 보육 현장에 나와 관찰하고 컨설팅해 준다. 보육에 어려움을 지원해 주는 좋은 프로그램이다. 해마다 그 프로에 참여해서 도움을 받곤 했다. 올해도 꼭 그 프로에 참여해서 도움을 받고 싶은 아이가 있어서. 슈퍼비전 지원 공지만 기다리고 있던 참이다. 그런데 공지가 뜬 것이다. 확인해 보니 첫날 사례 발표 날이 마침 친구들과 선생님 뵈러 가기로 약속된 날이다. 고민이다. 27년 만에 처음으로 대체 교사까지 신청해 놓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기대하고 있는데, 며칠을 혼자서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난 아직 일하고 있다. 일을 하면 일이 우선이다. 나의 책임을 다하자, 생각했다. 친구들 단체카톡방에 미안하다. 사과하고 상황설명을 했다. “야 선약이 우선이지 뭐야”“안돼 너 빠지면 무슨 재미로” 미안하다 백배사죄했으나 단톡방의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선생님께 전화해서 날자 다시 바꿔보자” 하는 친구도 있다. 그건 아니다. 나 하나 때문에 여러 사람 번거롭게 할 수는 없다. 친구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과하며 이해시켰다. 

    

그 뒤로 왁자지껄하던 단톡방이 조용하다. 모두 내 상황을 이해는 한다지만 한 친구가 불참하게 되니 흥이 깨지는 모양이다. 신났던 분위기를 내가 깬 것이다. 며칠이 지나도 단톡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하다. 마음이 불편하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들은 깜짝 놀란다. “원장님 그렇게 좋아하시고 옷 맞추고 대체 교사까지 신청해 놓으셨는데 어떻게 해요?” 담임교사가 먼저 의견을 제시한다. “발표할 사례를 저에게 적어 주시면 제가 발표해 볼 게요. 다녀오세요.” 한다. 다른 선생님들도 모두 가라고 응원해 준다. 육아 종합지원 센터 영유아 발달 슈퍼비전 담당자에게 전화했다. 첫 회 한 번만 불참하고 남은 4회는 잘 참석하겠다 부탁드리니 담임선생님 혼자서 괜찮으시다면 그렇게 하라 한다. 고요하던 단톡방에 “얘들아 나도 가도록 할게” 하고 한마디 올렸다. 다시 단톡방은 활기를 찾고 시끌벅적하다. “우와 만세” 하며 만세를 부르는 친구도 있다. 고마웠다. 다들 간절히 함께하고 싶었구나. 생각하니 행복했다. 평일에 처음 떠나는 휴가에 고지식한 남편의 반응도 약간은 걱정된다. 미리 마음 상할 필요 없다는 생각이다. 떠나기 삼 일 전쯤에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핀잔 한마디라도 들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여행 전날 집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북어 시래기 된장국과 병어 조림해 놓고, 어린이집도 식자재와 서류 등 모든 준비를 해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가슴에 “스승님 존경합니다”란 문구가 쓰인 하얀 티셔츠를 입고 가방에는 각자 친구들이 입을 셔츠를 담아 들고 인천에서 대전으로 향하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으며, 27년 만의 휴가를 떠났다. 차 속에서 딩동 카톡이 온다. 선생님들이 커피와 던킨도너츠를 카카오톡으로 보내왔다 “친구분들과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여행하고 오세요.” 딩동, 이번엔 남편에게 온 카톡이다. “가방 앞쪽 지퍼 열어봐요” 가방을 열어보니 흰 봉투에 오만 원짜리 신권 네 장이 들어 있고 “즐거운 여행하고 오시오”라고 쓰인 메모지 한 장이 들어 있다. 가슴이 뭉클하다. 차 창밖의 풍경은 연초록으로 화사한 봄 햇살을 받아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열심히 살아온 나의 휴가를 하늘도 축하해 주는 듯하다. 27년 만의 나의 휴가는 그렇게 온 세상 사람과 온 천지 만물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하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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