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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y 06. 2024

엄마가 편안한 곳이라야 아이도 편안하다.

신뢰로 키워가는 아이 

몇 해 전 8월 중순 어느 날 무더위를 쫓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점심시간 무렵이다. 배가 볼록하니 임부복을 입은 젊은 어머니가 예고 없이 방문하셨다. 날씨 탓인지 약간 초조한 모습이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아이 아빠가 우리 구로 발령받아 9월에 이사를 오게 되었단다. 둘째는 태중에 있고 큰 아이가 두 돌이 되어가는데 혼자 보기 힘들어 이사하면 바로 어린이집에 맡기려고 어린이집을 알아보는 중 이란다.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보내는 거라서 뭘 어찌 알아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며 조용히 내 이야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우선 운영 안내 집을 펴 들고 운영철학과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우리 아이들의 자유로운 숲 체험 활동 사진을 보여주었다. 자연에서 자유롭고 밝게 뛰어놀며 성장하도록 하는 내 보육관을 어필하고 싶어서였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 듯 선생님들의 근무 연수를 묻는다. 마치 그때는 선생님들이 모두 9년, 8년, 6년의 근속을 자랑하고 있었다. 자신 있게 근속연수를 이야기하자 웃으며 부동산과 여러 곳에서 대충 이야기를 듣고 왔다고 말씀하신다. 처음 아이를 보내는 거라 어느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몰라 구청 출산보육과에도 문의해 보았단다. 구에서는 가능하면 선생님들의 이직률이 적은 곳이 안정적으로 잘 운영되는 곳이라 말하더란다. 우리 구에서는 교사의 근속 연수가 우리 어린이집을 따라갈 원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름 사전 조사를 하고 오신 것이다. 대게는 인터넷에 떠도는 증명되지 않은 글을 믿으며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경우가 흔한데 어머니께서는 직접 발품을 팔아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신중함에 놀랐다.


 또 어디서 들었는지 어린이집의 에너지 흐름이 환경에 맞춰졌는지 아이들에게 맞춰졌는지 보라고 들었단다. 정말 정확한 정보를 듣고 오셨구나 싶다. 한번 봐서 에너지의 흐름까지 파악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젊은 어머님들 보통은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환경이나 선생님이나 원장이 젊고 예쁜 곳을 선호한다. 우리 구에서 가장 오래되어 시설도 낡았고, 원장이란 사람은 나이도 꽤 들었으며 생긴 것도 대충 생겨 매력도 없다. 청소만 깨끗이 하도록 신경 쓰고 환경을 예쁘게 꾸미는 건 선호하지 않는다. 환경 꾸밀 시간을 아이들에게 투자하자는 것이 내 지론이다. 어머님과 대화하다 보니 어린이집을 고르는 기준이 우리 어린이집이 부모님의 기준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심 반갑다. 잘 듣고 잘 찾아오셨구나 싶다. 내 운영철학을 좋아할 수 있는 나와 유사한 보육관을 갖은 부모로 우리 학부모가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정성껏 상담했다. 어릴 적 자라면서 어머니께서 집에 온 손님은 물이라도 대접해 보내는 것이라고, 특히 임산부는 맨입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지방에서 올라오셨고 더구나 임신 중이다. 그리고 마치 점심시간이니 점심 식사를 있는 밥에 있는 국이지만 따뜻하게 대접했다. 그리고 가는 길에 구질구질 내리는 비를 피하도록 헌 우산도 하나 챙겨주었다.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내심 뿌듯했다. 


9월이 지나고 10월이 되어도 그 부모님은 오지 않으신다. 아하 다른 곳으로 가셨구나! 나랑 잘 맞을 것 같았는데 아쉬운 마음이지만 별도리 없이 잊고 있었다. 그런데 10월 중순쯤 큰아이 현승이의 손을 잡고 쓰고 갔던 헌 우산을 들고 찾아오셨다. 잊지 않으셨구나. 반가웠다. 이사하고 짐 정리하느라 그간 바빠 못 찾아왔단다. 배도 더 부르고 힘이 든다고 이제는 아이를 맡겨야겠다고 말씀하신다. 다음 날부터 현승이는 어머님과 적응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낯가림이나 편식도 없이 의젓하게 잘 지낸다. 현승이가 집에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잘 노니 어머니께서도 아직은 낯선 동네라 아는 사람도 없고 심심하다며 오전 내내 어린이집에서 현승이와 함께 생활하다 점심도 같이 먹고 같이 하원한다. 임신 중이라서 인지 밥도 맛있다고 잘 드시며 어린이집을 편안해하신다. 어린이집을 신뢰하고 편안해하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며 현승이는 젠틀맨이란 수식어를 받을 만큼 의젓하고 편안하게 잘 생활한다.


어느덧 둘째 현진이가 태어났다. 현진이가 첫 돌 무렵 어린이집에 입소하면서 현승, 현진, 남매 모두 재롱이 가족이 되었다. 둘째 현진이는 오빠 따라 자주 왔던 곳이라서 인지 낯가림이 전혀 없다. 현진이까지 어린이집에 편안히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격적인 부모님의 맞벌이가 시작되었다. 현승, 현진 부모님은 출근하기 바쁜 아침 시간에도 아침밥은 꼭 먹이려 노력하고 늦은 날은 주먹밥을 만들어 급하게 먹여 가며 등원시키는 날도 있다. 그렇게 정신없이 출근하지만, 아이들도 부모님도 서로 한 번도 떨어지기 힘들어하지 않고 웃으며 잘 헤어진다. 아이들은 시간 맞춰 우리 부모님이 나를 데리러 온다는 믿음으로, 부모님은 어린이집에서 우리 아이들을 잘 보살펴 준다는 믿음으로 서로가 편안히 헤어진다. 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부모는 직장에서 서로 다른 일과를 보내고 저녁이 되면 네 식구가 반갑게 만나는 모습은 보는 나도 흐뭇했다. 


둘째 현진이가 졸업하던 날 두툼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졸업하는 현진이는 큰 하트 그림 하나와 그린 듯한 글씨로 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미리 졸업한 오빠 현승이로부터는 제법 반듯반듯한 필체로 원장 선생님 그동안 저희 둘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란 글과 작은 하트가 수업이 그려져 있다. 마지막으로 어머님의 A4용지 두 장의 빡빡한 편지다. “의심도 많고 불안증도 심한 저를 단 한 번의 상담으로 가슴 가득 믿음으로 채워주신 원장님, 두 아이를 보내면서 단연코 한 번도 불안하거나 의심하는 마음을 가져 본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등원하면서 가지 않겠다 투정 한번 부리지 않고 어린이집으로 반갑게 달려들어 가던 모습은 원장님과 선생님들의 진심 어린 사랑 덕이라 생각합니다.” 하는 부모님의 긴 편지를 읽으며 부모님께서 어린이집을 신뢰하는 만큼 아이들도 어린이집과 선생님을 믿고 잘 따른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 부모님의 신뢰 덕분에 현승, 현진 남매 모두 어린이집을 행복하게 잘 다닐 수 있었다. 어린이집을 믿고 귀한 자녀 둘을 맡겨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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