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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y 13. 2024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영아들의 안전과 그네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요즘 얘가 왜 이런대요? 어린이집 안 들어오려고 이렇게 난리를 치며 우네요.” 등원 시간 발버둥 치며 울어대는 유나를 번쩍 안고 유나 어머니께서 들어오며 하시는 말씀이다. 유나는 6개월 전 돌이 지나며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어린이집을 좋아하던 유나가 갑자기 어린이집 문 앞에만 오면 안 들어가겠다고 울어 대니 어머니께서는 당황해하신다. “아예 어제 하원 후 집에는 순순히 들어갔나요?” 하고 물으니 “ 아니요~ 그러고 보니 어제 집에도 안 들어가려고 떼써서 간신히 들어갔네요.” 하신다. “아예 시기적으로 그럴 때예요.”하고 말씀드렸다.


날씨도 따뜻하고 아장아장 걸어보니 재미있다. 이 넓은 세상이 마냥 신기한 것투성이다. 아마도 당분간은 집이든 어린이집이든 실내에 들어오는 걸 싫어할 것이다. 바깥을 좋아하고 마냥 밖에서 놀고 싶어 한다. 바깥 맛을 안 것이다. 더구나 날씨마저 살랑살랑 봄바람이 감미롭다. 어린이집에서도 수시로 선생님의 손을 잡아끌며 현관 앞으로 간다. 그런 유나를 위해서 벚꽃 잎이 떨어지기 시작한 어린이집 주변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바람에 벚꽃이 눈처럼 날리고 바닥에 떨어진 꽃잎은 바람 따라 이리저리 휘몰리고 있다. 그 광경이 신기한지 꽃잎을 따라 아장아장 바쁘게 걷던 유나가 그만 돌부리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놀라 얼른 일으켜 세워보니 코끝이 빨갛게 쓸리고 상처가 났다. 유난히 희고 예쁜 코를 가진 유나의 코에 흉터라도 생길까 걱정이 된다. 


얼른 부모님께 연락드리고 시간이 가능하면 병원에 같이 가자 하니 맞벌이이신 부모님 두 분 모두 근무 중이라 오실 수 없단다. 콧등이 아프고 쓰라린지 울어대는 유나를 앉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가서 일단 소독하고 상처를 핸드폰으로 찍어서 와보지도 못하고 궁금하고 걱정되실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의사 선생님께는 최대한 흉터 남지 않게 잘 치료해 달라 부탁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치료만 잘하면 흉터는 남지 않을 것 같으니 병원에 매일 열심히 다니며 치료를 잘해보자 하신다. 그 말이 그나마 조금은 위안이 된다. 


그 뒤로 어린이집에서는 매일 아침 등원한 유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상처를 소독하고 치료해야 했다.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던 유나도 내가 겉옷을 걸치기만 하면 병원에 가는 것을 알아채고 안 가겠다. 울어댄다. 우는 유나를 혼자서 차에 태우고 갈 수 없어 선생님 한 분과 함께 간다. 혹시 흉터라도 생길까 염려스러워 동네에서 제일 잘한다고 소문난 피부과로 가다 보니 예약도 안 된다. 선생님과 둘이서 유나를 데리고 아침 일찍부터 병원으로 가서 접수해 놓고 기다려야 했다. 유난히 낯가림이 심한 유나는 진료를 위해 의사 선생님 앞에만 가면 낯설어 발버둥 치며 소리쳐 운다. 우는 유나를 앉고 잡아주며 달래고 온 힘을 모아 의사 선생님의 치료를 돕는다. 그렇게 치료받고 나면 오전 시간이 다 지나간다. 선생님과 둘이서 2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병원에 다녀와야 했다. 


매일 오전 시간을 병원에서 울며 힘들어하는 유나를 달래 치료하고 오면 나도 힘이 쭉 빠진다. 울다 지친 유나는 돌아오는 차 속에서 잠이 든다. 그 모습을 보면 또 한없이 애처롭다. 더 신중하고 세심히 잘 보살펴야겠다. 다짐도 해본다. 봄꽃이 아름다운지, 날씨가 좋은지 감성에 빠져있을 여유도 없이 봄은 벌써 저만치 훌쩍 떠나고 있다. 이제는 겁이 난다. 아이들은 바깥 놀이를 좋아하고 행복해하는데 불시에 일어나는 사고가 두려워 바깥 놀이계획이 망설여진다. 다친 유나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혹시 흉터라도 남을까 노심초사했던 올 4월의 봄은 나에겐 잔인한 봄이었다.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다치게 하면 흉터가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치료해주어야 한다. 혹시라도 흉터가 생긴다면 부모님들의 원성이 클 것이며 간혹 이해 못 하는 부모님들은 문제 삼아 보상까지 요구하는 예도 종종 있다. 사후 어린이집에서 치료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느낌이면 부모님의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유나의 예쁜 콧날을 지키기 위해 어린이집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병원에 다니며 열심히 치료한 덕분에 다친 곳이 어디인지 표가 나지 않을 만큼 감쪽같이 치료가 잘 되었으나, 내 마음에는 풀기 어려운 숙제가 하나 생겼다. 아가들의 안전을 위해 그들의 행복한 바깥 놀이를 포기해야 하는가? 하는 딜레마가 주어졌다. 


오늘도 밖이 그리워 창밖을 바라보고 서 있는 유나를 보며 잠시 고민에 빠져보았다. “그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고 속으로 외치며 겉으론 “얘들아! 우리 승기 쉼터에 가자”하고 소리쳤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닌 푹신푹신한 잔디밭이 있고, 상수리나무 아래 다람쥐가 종종 찾아오는 곳, 솔향기를 솔솔 풍기는 시원한 소나무 그늘도 있다. 우리는 오늘도 사각의 콘크리트 건물을 박차고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는 숲 속 친구들이 있는 이름다운 숲으로 아장아장 귀여운 아가들의 손을 잡고 씩씩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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