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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y 16. 2024

시절 인연

떠나는 인연 잡지 말고 오는 인연 거절 말자 

 몇 년 전 삼월 입학식이 끝나고 부모님들과 함께 1주일간의 적응 프로프로그램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중 진우는 행동이 과격하고 활발한 아이다. 체격도 또래 친구에 비해 크다. 그 큰 아이가 활발히 움직이며 공동놀이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쉬지 않고 내달려 베란다 유리와 안쪽 벽에 힘껏 부딪히는 놀이를 즐겨한다. 조마조마하다. 본인이 넘어지고 부딪치는 것도 위험하지만 아장아장 걷는 다른 영아들과 부딪치면 대형 사고다. 같이 적응 프로에 참여하는 부모님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이다. 그런데 정작 진우 어머니는 그 심각성을 인식 못했는지 진우는 낯가림도 없으니 적응 기간이 필요 없단다. 첫날부터 종일 보육을 해달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다. 하루 이틀이라도 같이 있어 달라 부탁해서 간신히 이틀을 어머니와 함께하고 종일 보육을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우리 원에서는 영아들의 적응이 어느 정도 될 즈음 3월 중순 무렵이면 모든 영아를 데리고 실내 놀이터에 다녀온다. 그때는 신입 부모님도 함께 가서 도움을 줄 것을 부탁한다. 아직 아이 성향도 파악이 덜 된 상태고 부모님과 함께해서 아이가 편안하게 놀이를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진우 어머니께도 체험 활동을 함께 해달라 부탁드렸다. 그러자 어머니는 “저랑은 안 맞네요. 제가 힘이 들어 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이렇게 오라고 하면 저 못 다녀요” 하고 단칼에 거절하며 퇴소하겠단다. 과격한 아이를 적응 기간도 없이 종일 보육으로 맡겨놓고 첫 체험 활동이니 함께 해달라 드린 부탁에 안 맞는다고 퇴소하겠다니, 나도 너무 불안하던 터라 잡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시군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하고는 얼른 입학금을 돌려 드렸다. 두말없이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 마음이 씁쓸했지만 한편은 휴~하고 한시름 내려 놓게 된다.

    

한 학기가 끝나갈 무렵 어느 날 진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언가 전해 줄 게 있으니 잠시 들려도 되냐 한다. 가지고 갔던 가방이라도 돌려줄 생각인가 하고 그러라 말했다. 그런데 양손 가득 커피와 케이크가 들려져 있다. “무슨 일이세요?” 하고 물으니 케이크와 커피를 내 손에 들려주며, “죄송했어요. 원장님께서 아이를 위해서 하는 적응 기간을 제가 힘들단 생각에 원장님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퇴소하고 다른 곳을 가보고서야 원장님을 이해했어요.” 하며 눈물을 훔친다. 까맣게 잊고 있던 일인데 조금은 당황스럽다. 잊고 지나도 될 지난 일을 간식까지 사 들고 이렇게 눈물을 보이며 인사를 하니 어리둥절했지만, 멋있는 부분이 있는 어머니이다. 그 뒤 가끔은 본인은 못 다녔지만, 이곳저곳 아이를 보내본 결과 재롱이 어린이집이 최고 좋았다고 소개해 진우 어머니의 소개로 오는 아이들이 심심찮게 있다.

   

그다음 해 연말쯤 진우 어머니께서 찾아오셨다. 진우를 키우며 육아에 무지한 것이 많다. 느꼈단다. 부모의 잘못된 육아로 진우가 그렇게 산만했고 지금 유치원에서도 집중도 짧고 부산스럽단다. 학교 가면 공부를 제대로 할지 걱정되어 이제라도 스스로 보육교사 공부해서 우선 좋은 엄마가 되기로 생각했단다. 실습할 곳을 찾다 내 생각이 났다며 원장님께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내심 감동이다. 이렇게 열심히 배우려 하는 자세도 멋지다. 나도 인정받는 느낌이라 뿌듯했다. 4주의 실습시간을 열심히 한다. 항시 앞치마 주머니에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메모한다. 내가 해주는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였다. 그 뒤부터 스승의 날이 되면 몇 년째 꽃다발과 케이크를 사 들고 진우를 앞세워 찾아온다. 실습 지도를 한 나를 스승이라 찾아오면 약간은 민망하다. 

   

지난 2월 말경 모두 하원 한 어린이집에서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컴퓨터에는  즐겨 듣는 트로트 이찬원의 시절 인연 연속 듣기를 접속해 놓고 있었다. 띵~똥 띵~똥 하는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여니 진우와 어머니가 꽃다발을 한 이름 앉고 서 있다. “웬 일세요?” 하고 놀라 물으니 진우 아버님의 직장 이직으로 부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단다. 진우를 기르며 원장님을 본보기로 생각하고 자주 뵙고 조언을 듣고 싶었단다. 그래서 1년에 한 번 스승의 날만이라도 꼭 찾아뵐 계획이었는데 멀리 이사를 하게 되었다며 계획대로 될지 모르겠다고 한다. “원장님을 보고 배우며 우리 진우 잘 자라도록 할 수가 있었는데…” 하고 말끝을 흐리며 눈시울을 붉힌다.

  “사람이 떠나간다고그대여 울지 마세요오고 감때가 있으니 미련일랑 두지 마세요좋았던 날 생각을 하고 고마운 맘 간직하며 아아아 ~살아가야지바람처럼 물처럼 가는 인연 잡지를 말고 오는 인연 막지 마세요때가 되면 찾아올 거야 새로운 시절 인연”… 


컴퓨터에서는 여전히 시절 인연이란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다. 노랫말이 참 좋다. 시절 인연이란 불교 용어로 모든 만남과 인연에는 시기가 있어서 만날 인연은 때가 도래하면 반드시 만나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시기가 도래하지 않으면 만날 수 없다. 때가 되면 만나고 싶지 않아도 반드시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내게 진우와의 인연이 그런 시절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올해 스승의 날부터는 진우와 진우 어머니는 더 이상 보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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