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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y 27. 2024

우산이 없어 창피했던 아이

아들아이의 성장기

어느 해 3월 하순쯤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 점심 무렵이다. 어린이집은 아이들의 점심을 챙기느라 분주한 시간이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들 녀석이 뾰로통한 모습으로 들어오며 하는 말 “엄마 비 오는데 왜 마중 안 왔어요?” 하고 말한다. “아하 비가 많이 오니?”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분주했다. “아니요 많이는 안 오는데 나만 우산이 없어 창피했어요”하고 말한다.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었겠네” 그 당시에는 어린이집이 아닌 놀이방으로 가정 살림과 함께 하도록 인가가 났었다. 그래서 나도 아들을 돌보며 일할 수 있도록 가정 살림과 함께 하는 놀이방으로 일을 시작했다. 중간에 어린이집으로 명칭이 바뀐 것이다.

   

처음 놀이방을 시작할 때 아들과 한 약속이 있다. 외둥인 아들은 강아지를 기르고 싶어 했다. 아파트에 살던 우리는 아파트에서는 강아지를 기를 수 없으니 엄마가 놀이방을 해서 돈을 벌면 단독 주택을 사서 그때 강아지를 기르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니 걱정이다. 아들에게 물었다. “그럼 엄마가 놀이방 하지 말고 단독 주택과 강아지 포기하고 비 오면 너 마중도 가고 그렇게 그냥 살까?”하고 묻자 조금 생각해 보던 아이는 “아니에요. 그냥 하세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앞으로도 비 와도 엄마는 마중하러 못 갈 것 같은데” 하자 “그럼 제가 우산을 잘 챙길게요” 하고 말했고 그 뒤론 일기예보도 잘 챙겨 보고 비가 온다면 스스로 우산을 챙기며 준비물도 알아서 잘 챙긴다. 그렇게 엄마의 큰 도움 없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무탈하게 잘 마쳤다. 

     

아들아이가 고2가 되던 어느 날 어린이집에 출근하여 아침 일과를 막 시작하려는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따르릉 하고 온다. “엄마 죄송한데요. 제가 해놓은 수행평가 과제를 깜박 잊고 책상 위에 놓고 왔어요. 가져다주실 수 있을까요?”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전화기가 필요 없다고 대학에 입학해서야 핸드폰을 샀던 아들이 친구의 핸드폰을 빌려 전화를 한 것이다. 이번 과제는 대입 수행평가에도 들어가는 거라 꼭 필요하단다. 엄마로서 대입에 필요하다는 말에 망설임 없이 책상 위의 과제를 찾아들고 아들 학교 정문 앞으로 달려갔다. 기다리고 서 있던 아들은 과제를 전해주자. 머리를 90도로 숙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란 말을 연발하고 “조심히 가세요”. 하며 인사를 깍듯이 남기고 교실로 급히 달려들어 간다. 그런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가슴 한쪽이 미어지며 콧등이 찡해져 온다. 유치원부터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되도록 처음으로 했던 아들의 부탁이다. 부모가 이런 부탁 한번 들어주는 게 그리 감사한 일일까 생각하니 아들에게 미안하다. 

    

고등학교 삼 년 내내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밤늦게 돌아온다. 간식이라도 챙겨주려는 마음에 안 자고 기다리면 “엄마 기다려 주시는 것 부담돼요. 그냥 주무세요. 그냥 주무셔도 하나도 안 서운하니까요” 하고 말하며 모든 것을 부모 의지 없이 스스로 해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원하던 학과의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생활 중 어느 날 어린이집 아이들과 가을 소풍을 가고 있는데, 전화를 잘하지 않는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자 무턱대고 하는 말 “엄마 해냈어요” 그런다. “무엇을?” 하고 물으니 “미국 인턴 합격했어요.” 평소 흥분하지 않는 아들인데 목소리가 좀 들떠 있다. 전혀 모르던 이야기에 약간 당황했지만, 아들의 목소리에 뭔가 좋은 일이고 대단한 일일 거란 직감으로 “그래 잘했네, 축하한다. 저녁에 집에서 이야기하자”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말이 없던 아들은 혼자 자라서인지 무엇이든 부모에게 상의하기 전에 일을 이루어 놓고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때 지금의 며늘 아이인 여자친구가 있어 그 친구를 통해 종종 아들의 학교생활 이야기를 듣곤 했다. 그 뒤로 미국 인턴의 소식도 아들의 친구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아들의 학교에서는 해외로 인턴을 보내는 제도가 있단다. 보통 미국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어학연수를 다녀왔거나 유학을 다녀와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차지한단다. 우리 아들처럼 전혀 외국을 나가보지 않은 경우는 합격이 어려운데 그것을 해냈기에 대단한 거란다. 그러고 보니 한 1년 전부터 새벽에 학교에서 실시하는 어학교실을 신청했다고 열심히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때부터 원어민영어 선생님과 영어를 공부했단다. 영어 수강 신청은 한 30여 명 정도 했는데 새벽반이다 보니 신청만 해놓고 못 오는 친구들이 많아 어느 날은 원어민 선생님과 단둘이서 수업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한 번도 빠지지 않으려고 늦으면 택시라도 타고 갔단다. 그렇게 해서 원어민 선생님께서 성실성을 높이 평가해 주셨는지 추천서도 써주셨던 모양이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통해서 그런 과정을 자세히 듣고는 우리 아들이 잘 컸구나! 스스로 하는 습관이 정답이었어, 내가 늘 바빠서 많은 도움을 줄 수 없었던 것이 우리 아들아이가 독립적으로 잘 자랄 수 있었던 거라고 스스로 를 위로했다.

   

 미국 인턴 생활 1년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고는 서울에 있는 작은 금융계열의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몸에 맞지도 않는 아빠의 재킷을 빌려 입고 다녀온 후 졸업할 때까지는 인턴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학교를 졸업한 후 그 회사의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며 본격적인 서울로의 출퇴근 전쟁이 시작되었다. 새벽 일찍 출근해야 차가 밀리지 않고 일찍 도착한단다. 새벽 다섯 시가 되면 스스로 일어나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출근한다. 내가 일어나 뭐라도 챙겨 먹이려 하면 그럴 필요 없단다. 괜히 일하시는 엄마 피곤하게 하지 않겠다고 혼자서 조용히 나간다. 회사 근처에서 운동하고 샤워하고 대충 아침을 때운 후 출근하는 것이 차 속에서의 시간을 줄이는 일이라고 몇 년간 그런 생활을 반복한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그 당시 10년 가까이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으니 결혼하면 어떻겠나 제안했다. 그럼 저희가 알아서 하도록 지켜만 봐달란다. 그러마! 하고 허락하자 그동안 둘이서 조금씩 모아놓은 돈을 합쳐 결혼을 준비한다. 엄마 아빠의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이야기하라 했지만, 아니란다. 우선은 자기 둘만의 힘으로 준비하여 시작해 보겠단다. 우리 부부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스스로 잘하는 모습에 뿌듯한 마음 반, 서운한 마음 반의 심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을 믿고 지켜만 보았다. 둘이 알아서 결혼 준비를 잘해나가는 모습이 그저 기특하기만 했다. 그렇게 우산이 없어 창피했던 아들아이는 잘 자라서 부모의 도움 없이 독립까지 스스로 멋지게 해냈다. 아이들의 결혼식 선물로 유일하게 해 준 것이라고는 내 마음을 담아서 써준 이 글뿐이다. 글을 함께 올려본다.      


수줍게 찾아온 두 청춘의 첫사랑    

알콩달콩 아름답게 사랑 키우며

서로의 성장을 격려하고 지지하며 마음 키운 지 

어언 십 년 하늘이 유난히 파란 멋진 가을날 

아름다이 백년가약 언약하는 두 사람 정말 아름답구나!     


한 사람은 대만으로, 한 사람은 군으로 

또 한 사람은 미국으로, 또 한 사람은 중국으로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에도 격려와 신뢰로 아름다이 피운 

두 사람의 사랑 아름답다는 말 한마디론 부족한 듯 

감이 숭고하다 말해주고 싶은 두 사람의 사랑이구나!      


이런 너희가 오늘 신랑과 신부라는 이름으로 하느님과 

여러 친지분의 앞에 선 모습을 보니 부모로서 정말 흐뭇하고

행복하며 가슴 벅찬 감동이구나!

파아란 가을 하늘도 알록달록 가을 단풍도 

축하해 주는 듯하구나!     


항시 誠愛敬信 성실과 사랑 공경과 믿음으로 생활하길 부탁한다,

그동안 둘이서 예쁘게 사랑 키우고 성장했듯이 

이제는 그 두 사랑이 하나 되어 더욱더 아름다운

빛을 내는 보석 같은 삶이 되리라 믿는다. 

너희들 곁에는 항시 너희 두 사람을 믿으며 응원하는 

부모님이 계신 것 잊지 말고 행복하여라

사랑한다, 아들아! 사랑한다. 며늘아기야!

-

 영원한 응원군 엄마 아빠가~     

 

아들아이의 이 이야기는 어린이집 학부모 교육 중 가끔 부모님들께 들려주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더러는 눈시울을 붉히는 부모님들이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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