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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May 23. 2024

오월의 산타

꿈과 희망을 나누는 산타 할아버지 

 “앗! 산타할아버지다. 안녕하세요~~? 유리창도 잘 닦으시네요. 올 크리스마스에도 꼭 오실 거죠?” 어느 화장한 5월 휴일 낮이다. 어린이집 전용 산타 할아버지가 다섯 번째 평가제를 앞둔 어린이집 베란다 밖 창문을 닦고 있다. 졸업생인 은아, 은지 자매와 어머니가 어린이집 앞을 지나다 보고 건네는 인사말이다. 평가인증 때가 되면 꼭 12월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나타나서 유리창을 닦아주는 고마운 할아버지다. 이번 다섯 번째 맞은 평가제에도 어김없이 나타나 어린이집 창문을 깨끗하게 닦아주는 산타 할아버지는 재롱이 어린이집의 힘든 일을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나의 남편이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에 꿈과 희망을 부모님들께는 옛 추억을 되살려 주고자 해마다 

12월이면 우리 어린이집의 원생 가정에 재롱이 만의 전용 산타 할아버지께서 가가호호 찾아다니신다. 아이들 선물은 서울 신길 시장까지 가서 손수 준비 해오신다. 크리스마스에는 부모님이 좋아하는 선물이 아닌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고르느라 나름 고심한다. 미리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을 넌지시 물어보면 다 말해준다. 그런데 받고 싶은 선물이 자주 바뀌는 것이 약간의 문제 이긴 하다.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우리 원생의 가정에 초등학교 입학 전의 어린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그 형제자매도 산타 할아버지가 직접 전해주는 선물을 받고 싶어 한다. 그 자리에서 우는 모습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다. 또한 어린 영아들은 커튼 뒤에 숨어 산타 할아버지가 신기하고 궁금하지만 무서워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다가오지 못하고 우는 아가들도 있다. 이럴 때는 잘 노는 아가들을 울려놓고 오는 상황이 벌어진다. 참으로 민망했다.

   

모든 가족을 행복하게 해 줄 산타 할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고민 끝에 원생의 어린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그 형제자매의 선물도 같이 준비했고, 어린 영아들은 산타할아버지를 무서워하지 않도록 원장인 내가 산타 행사 며칠 전부터 산타 옷을 입고 아가들과 놀며 낯이 익도록 보여줬다. 노력한 결과 우는 친구 없이 부모님과 온 가족이 즐겁게 산타를 맞이하며 행복한 꿈과 추억을 만드는 시간이 되었다. 가족 모두에게 점점 기대에 찬 행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도 1년은 산타 할아버지가 찾아간다. 얼마나 많이 자랐는지 궁금하기도 하거니와 꿈과 추억을 먹고 잘 자라도록 응원차이다. 졸업 후 1년 정도는 순수한 시기다. 자기 유치원 산타 할아버지는 늘 보던 체육 선생님이 하는 가짜 할아버지란다. 하지만 어린이집 할아버지는 진짜 산타 할아버지라고 좋아한다. 우리만의 전용 산타 할아버지는 자주 보지도 못했고, 배가 불룩 나오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진짜 할아버지다.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 어린이집 창문을 닦았으나 다 닦고 나니 늦은 점심시간이다. “배고픈데 우리 점심시켜 먹을까요?”했더니 “그럽시다. 그간 당신 평가제 준비에 힘들었으니 내가 쏘리다” 한다. 그러더니 “아니 내가 일을 도와줬으니 당신이 사야 하는 것 아닌가?” 하며 농담을 건넨다. 시간도 늦었고 배도 고파 가까운 중국 음식점에 짬뽕과 볶음밥을 시켰다. 방금 닦아서 깨끗해진 유리창 앞 베란다에 신문 한 장을 깔고 마주 앉았다. 깨끗한 유리창으로 봄의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이 오월의 아카시아 향을 싣고 불어와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배달시켜 온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지나간 시간을 회상해 보았다. 초창기에는 가정 살림과 겸해서 시작한 놀이방이다 보니 남편은 가끔 늦게 하원하는 아이보다 일찍 퇴근하는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기도 했다.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유난히 남편을 잘 따르던 종현이는 남편이 잠시 집에 들렀다 나가기라도 하면 같이 따라가겠다. 떼를 부리기도 했다. 그러면 잠시 데리고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기도 하며 정을 듬뿍 줬다, 유난히 할아버지를 잘 따르는 종현이 덕분에 우리 남편은 아이들 사이에서 종현이 할아버지로 통했다. 이런저런 추억을 들춰보니 행복한 추억이 참으로 많다. 

   

코로나19가 발생하고 2년간은 집집이 방문하는 산타 행사를 취소해야 했을 때, 재롱이 가족들도 서운해했고, 산타할아버지도 서운해했다. 이제는 꼭 12월이 되면 재롱이 산타 할아버지가 가정을 방문해서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번 평가제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허전한 느낌이다. 여기는 그만만 해도 구도심이 되며 젊은이들이 신도시로 많이 떠난다. 한 해가 다르게 아이들도 줄어든다. 또한 그에 따라 우리도 나이가 드니 얼마나 이 일을 더 하게 될지 모르겠다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내가 퇴임하는 날 당신도 재롱이 전용 산타 퇴임식 함께 합시다.” 우리는 마주 보고 허전한 웃음을 웃으며 식사 자리를 정리했다. 깨끗해진 창으로 비추는 봄 햇살과 싱그러운 바람도 함께 쓸쓸한 미소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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