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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장 Nov 18. 2024

빈 의자

쉬어 가는 공간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이다. 작은 시집 하나를 손에 들고 즐겨 찾던 승기 쉼터 동산을 홀로 오른다. 은행나무의 가로수가 양쪽으로 노랗게 물들어 있는 환경공단의 정문을 지난다. 가을 오후의 햇볕은 따스하나 공기가 서늘하다. 가슴 한켠에 뭔지 모를 그리움이 아련히 밀려온다. 바스락, 바스락 발걸음을 옮길 때 나는 낙엽 밟는 소리로 그리움을 달래 본다. 

    

봄에는 화려했던 벚꽃 나뭇잎이 빨간 단풍으로 물든 가을 길이다. 작은 정원을 동그랗게 한 바퀴 돌아가는 모퉁이 길이 있다. 그 모퉁이 길에서 멈춰 섰다. 거기에는 나를 기다리는 빈 의자 하나 있다. 인적 드문 곳이다. 그 빈 의자가 나는 좋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나, 가진 것 많은 사람이나, 조건이나 차별 없이 지친 사람은 누구나 앉아 쉬어 가라고, 배려해 주는 마음이 담긴 의자다. 의자에 앉아 손에 들고 간 양광모 시인의 시집 『부디 힘내라고』를 한참 읽었다. 서늘한 가을바람에 몸에 한기가 돈다. 자리에서 일어나 위에 걸친 스웨터를 여미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달그락달그락 자갈을 밟으며 자갈길을 200미터쯤 오르면 넓은 잔디밭이 나온다. 잔디밭 둘레에도 의자가 길게 서너 군데 있다.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과 나처럼 산책 나온 사람이 가끔 눈에 띄기도 하지만 그곳 역시 인적 드문 곳이다. 그곳의 의자도 빈 의자일 때가 많다. 오늘도 예상대로 빈 의자가 나란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 넓은 잔디밭을 몇 바퀴 돈다. 몸에 다시 온기가 돈다.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의자에 반듯이 누워 하늘을 본다. 파란 가을 하늘이 높고 아름답다. 눈이 부시고 가슴이 시리다. 

   

인적 드문 곳에 혼자만의 시간이다.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라서 더 좋다. 명상의 장소로 빈 의자가 있어 더욱 좋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이 의자에 앉아서 본다. 만물이 소생하는 희망을 노래할 수 있다. 여름이면 싱그러운 초록의 나무와 잔디의 푸르름을 본다. 젊음의 활력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이면 알록달록 단풍과 파란 하늘을 본다. 열매를 맺고 저물어 가는 삶의 반환점을 발견한다. 겨울이면 잔디밭에 하얗게 쌓인 흰 눈의 맑은 세상을 사심 없는 마음으로 바라볼 것이다. 

   

빈 의자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의 풍경화를 그려놓고 각기 다른 의미를 간직한 채 지친 나를 기다린다. 빈 의자는 심신의 안식처다. 빈 의자는 사색의 공간이다. 지친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와 쉬어 가라고 인적 드문 그 자리에 묵묵히 서 있는 빈 의자의 배려에 오늘도 편안하게 나만의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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