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을 보내는 마음
창가 탁자 위에 한 줄기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앉았다. 탁자 위에는 오색마삭줄이라 씌어있는 예쁜 화분 하나와 꽤 두툼한 흰 편지 봉투 하나가 올려져 있다. 봉투를 열어 보았다. 석 장의 하얀 편지지가 나온다. 빨간 색연필로 크고 작은 하트가 무수히 많이 그려져 있다. “원장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리듯 구불구불 적은 글씨다. 마음이 울컥해진다. 올해 졸업생 승진이다. 다음 편지지에는 “원장 선생님 저와 저의 동생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승아 올림” 글씨가 큼직하고 반듯반듯 제법 잘 썼다. 편지지 네 귀퉁이에 예쁜 하트도 그려져 있다. 지지난해 졸업한 승진이 누나 승아다. 마지막 깨알 같은 작은 글씨로 편지지 한 장을 가득 메운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원장 선생님 승아, 승진이 엄마예요. 갑자기 지방에서 인천으로 발령받아 올라오게 되면서 주위에 도움받을 사람도 전혀 없이 만 1세 된 승아와 갓 태어난 승진이를 처음으로 남의 손에 맡기게 되었지요.
많이 고민하고 많이 망설였는데 원장님과 상담 한 번으로 무한한 신뢰를 얻었어요. 큰아이를 맡기고 둘째도 고민 없이 원장님께 맡기게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두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 벨을 누르면 밝게 웃으며 맞아 주시는 원장님 품으로 서로 먼저 안기려고 달려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 부부 결코 한 번도 걱정하거나 어린이집을 의심해 본 적 없이 마음 놓고 편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영아기를 원장님같이 따듯하고 정 많으신 선생님을 만난 우리 아이들이 참으로 행운이었다. 생각합니다.
원장님께서 주신 큰 사랑이 자양분이 되어 우리 두 아이 모두 어디를 가나 잘 적응하고 잘 자라리라 믿어요.
원장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최선을 다해 나의 도리를 했을 뿐인데 정말 감동이다. 존경한다는 말에 자신을 뒤돌아보게 된다. 부끄럽지 않은 원장 선생님이었나 잠시 반성도 해보았다. 지난해부터 원생들이 줄고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한 학기만 하고 폐원해야 하나 고민이었다. 고민 끝에 부모회를 열었다. 다들 간절히 졸업하고 가고 싶단다. ‘그래 유종의 미를 거두자’ 근 삼십여 년 부모님들과 손잡고 잘 운영해 오던 어린이집이다. 부모님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면서 정리하자 마음먹었다. 이미 입소한 원아는 부모님들이 원하는 시기까지 보육하고 순차적으로 이별하기로 했다. 올해 졸업은 마지막 졸업이란 생각으로 더 애틋하다.
이제 새로운 원아의 입소는 더 이상 받지 않았다. 현재 있는 원아가 퇴소하는 시기까지만 함께하기로 했다. 그러자면 선생님도 줄여야 한다. 아이들의 졸업과 동시에 선생님 한 분을 권고사직 시켜야 했다. 졸업식이 끝난 후 선생님들과 이별의 아쉬움을 달랠 겸 점심 식사 후 햇살이 잘 드는 창가 탁자에 커피 한 잔씩을 뽑아 들고 둘러앉았다. 졸업생 부모님께서 주고 간 편지를 읽으며 모두 눈시울을 붉혔다.
창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한없이 따스하고 평화롭다. 곧 다가올 봄을 알리는 듯하다. 문득 “이별하기 좋은 날”이란 생각이 든다. 따스한 햇살의 축하와 위로를 받으며 졸업생들과 아쉬운 이별을 했다. 또 그간 몇 년을 함께 했던 선생님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다. 몇 남지 않은 원생들마저 떠나면 어린이집과도 이제 곧 이별이다. 아마도 완연한 봄이 되면 모두가 떠난 어린이집을 나 홀로 남아 삼십여 년의 흔적을 지워내고 있을 것이다. 그날도 이렇게 평화롭고 따스한 햇살이 나를 감싸 안아 위로해 주는 이별하기 좋은 날이기를 바라며 다가올 이별을 담담히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