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복지센터에는 680억 원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이 있습니다.
김 00 어르신은 00 제약 회사에 다니셨고, 정년 나이가 되어 퇴직을 하셔야 하는데 정년 5개월을 남겨놓고 갑자기 심장판막증이 발생하여 119를 불러 응급실로 가셨습니다. 680억 어르신은 호흡곤란과 피로감, 부종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680억 어르신은 병원 치료를 받은 후 42일 만에 퇴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퇴원 후 합병증이 발생하여 침상에서 생활을 하셔야 했습니다. 이 00 어르신은 침상에서 생활을 하시면서도 680억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2019년 9월, 680억 어르신 보호자(부인)와 계약을 하기 위해 어르신 댁을 방문하였습니다. 어르신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전에 느껴보지 못한 환경에 깜짝 놀랐습니다. 현관문부터 황금 문으로 되어 있었고, 화분이며 가구까지 모두 황금색이었습니다. 베란다에는 국화꽃들이 화분에 심어져 있었는데, 그 화분 색깔도 모두 황금색이었습니다. 680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가지고 계신 분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돈을 갖고 계신 어르신과 계약한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습니다.
저는 680억 원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 댁에 들어서자마자 긴장하여 몸이 굳었습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제대로 뜰 수도 없었습니다. 우선 어르신을 뵙기 위해 침실로 갔습니다. 침실에 누워계신 어르신은 안간힘을 쓰시며 일어나 앉으려고 하셨습니다.
역시 침대와 이불, 벽에 걸려 있는 액자 틀까지 모두 황금색이었습니다. 하지만 황금으로 둘러싸여 있는 어르신의 메리야스는 바래서 누런빛을 띠고 있었고,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680억 원의 할아버지 옆에 계신 할머니께서는 흰머리에 파마기가 전혀 없으셨습니다. 바람이 불면 갈대 같은 빛깔의 머리카락이 흩날렸습니다. 집구석구석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지만, 노부부는 검소하다기보다 해탈하신 분들 같았습니다.
계약을 마치고, 680억 원 어르신의 인품에 맞는 요양보호사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잘 살고 계신 어르신들을 서비스해 드리려면 미모와 학식, 교양까지 갖춘 요양보호사를 모집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680억 어르신 댁은 분당에 있었고 교통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요양보호사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미모와 교양, 학식을 갖춘 요양보호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한 복지센터장은 680억 어르신과 계약을 한 지 벌써 한 달이 넘었습니다. 모든 조건을 갖춘 요양보호사들을 면접에 모셨지만, 어르신께서 모두 거절하셨습니다.
‘그럼 그렇지, 내 팔자에 무슨 680억 원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과 계약이 성립되겠나.’
이제 워크넷에서 전화를 걸어온 요양보호사들은 모두 면접을 보았고, 더 이상 전화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니, 요양 서비스만 잘해드리면 되는데 왜, 왜, 왜 계속 퇴짜를 놓으시는 거야! 아~~~’
저는 면접 본 요양보호사들이 어떤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으신지 여쭤보기로 했습니다.
“어르신! 지금까지 요양보호사를 아홉 분 면접 보셨는데, 어떤 점이 제일 마음에 안 드십니까? 말씀해 주시면 어르신 마음에 맞는 분을 면접시켜드리겠습니다.”
“아주머니, 제대로 된 요양보호사를 데리고 와야지. 어찌 하나같이 다 그래...”
저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양손만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었습니다.
“아주머니, 나가보세요. 그리고 제대로 된 요양보호사를 데리고 와요.”
어르신은 구체적으로 어떤 요양보호사를 원하시는지 말씀하지 않으시고, 나가라고만 손짓하셨습니다.
저는 680억 원을 가지신 어르신과의 계약을 파기할 수 없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다 뒤져서라도 어르신이 원하시는 제대로 된 요양보호사를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워크넷뿐만 아니라 당근마켓, 그리고 어르신 댁 근처 골목과 버스정류장에 요양보호사 모집 광고지를 이틀 동안 붙였습니다. 그 결과 요양보호사 12명이 몰려왔습니다.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12명의 면접을 진행했습니다.
“아니, 아주머니는 보는 눈이 그렇게 없습니까? 어떻게 모두가 똑같을 수가 있습니까?”
‘대체 제대로 된 요양보호사란 어떤 사람을 말씀하시는 걸까?’
마지막 한 명만이 남았습니다. 이번 요양보호사마저 불합격하면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아, 이 어르신과는 인연이 아니구나.’ 게다가 이렇게 까다로운 어르신을 계속 관리한다는 것이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런 어르신을 케어하는 요양보호사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가 될지 생각하니, 포기하는 것이 옳겠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요양보호사는 앞서 면접 본 분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학력도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잘한다고 했습니다. ‘680억 어르신 댁에 과연 어울릴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래도 면접을 보시게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두 손을 모으고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발 이번에는 꼭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어르신, 요양보호사 모시고 왔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들어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셨습니다. 손을 씻고 오신다고 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께 감염이 될까 염려해 바깥에서 옷을 털고, 손을 씻고, 마스크를 착용한 뒤 정중히 인사드렸습니다.
“어르신, 안녕하세요. 김말수 요양보호사입니다.”
“저쪽 의자에 앉으세요. 편히 앉으세요. 여보, 여기 물 좀 갖다 드려요.”
어르신은 지치지도 않으신 듯 요양보호사에게 이것저것 물으셨습니다.
“고향이 어디십니까? 나이는? 성은? 자녀는? 남편은? 자녀들은 출가시켰습니까?”
요양보호사는 어르신의 질문에 또박또박 사실 그대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고향이 청주입니다. 나이는 69세입니다. 성은 김 씨이고, 자녀들은 모두 출가해 제 밥벌이를 하며 살고 있습니다. 남편은 아파트 경비를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 더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음... 내일부터 우리 집에 와서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요양보호사가 대답했습니다.
“네, 내일부터 올 수 있습니다.”
저는 혹시라도 거절할까 조마조마했는데, 그 순간 마음속으로 ‘주여, 감사합니다’라고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저는 요양보호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일할 수 있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오늘 고생 많았어요. 좋은 아주머니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어르신은 고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은 면접 본 사람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고, 옷차림도 검소하며, 화장기 없는 순수한 인상 외에는 특별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어르신께서는 그분을 선택하셨습니다. 계약이 파기되지 않고 성립된 것만으로도 저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그 후 680억 어르신은 김말수 요양보호사에게 따뜻하게 대하시며 매일 아침 신문을 읽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하루에 한자 세 글자를 크게 써 달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어느덧 1년이 넘었습니다.
어르신은 건강이 많이 회복되셨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공원을 산책하시고, 워커로 거실을 다니실 정도로 좋아지셨습니다.
“아주머니, 밖에 나갑시다.”
어르신은 요양보호사와 함께 동네를 산책하시다가도 휠체어에서 내려 쓰레기통을 뒤지며 소주병과 맥주캔을 주워 모으셨습니다. 식사도 콩나물국, 새우젓, 계란찜이 전부였고, 옷도 해어질 때까지 입으셨습니다.
요양보호사는 두 번의 실수를 했다고 했습니다. 첫 번째는 메리야스를 삶아도 누렇게 변한 것을 락스를 희석한 물에 담가 두었다가 모두 삭아버린 일이었습니다. 요양보호사는 만 원에 세 장씩 하는 새 메리야스를 사 드렸습니다. 두 번째는 양치 도움을 드리며 치약을 칫솔 끝까지 짜드렸더니 너무 많다며 호통을 받았다는 일이었습니다. 어르신은 평생 절약하며 살아오신 습관이 몸에 배어 계셨습니다.
할머니 역시 아무 말씀 없이 꽃을 가꾸고, 해어진 옷을 꿰매며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680억 어르신을 만난 지 7년 4개월 만에 어르신은 소천하셨습니다. 입는 것, 먹는 것, 돈 쓰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막대한 재산이 있으셨음에도 휠체어를 타고 쓰레기통에서 버려진 병과 캔을 주워 모으셨습니다.
어르신은 처음 면접 때는 까다로우셨지만, 김말수 요양보호사가 7년 넘게 곁을 지켰습니다. 요양보호사가 76세까지 어르신을 케어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저는 요양보호사님께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680억 원 어르신께서도 지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그 많은 돈을 모으신 비결을 여쭤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덕분에 한문을 많이 알게 되었다”며 좋은 분이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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