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명상을 하는 곳이라고 하면 탁 트인 하늘에 바다가 보이는 곳이나 절벽 위 같은 자연 속 풍경이 떠오른다.
아쉽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이런 곳에서 명상을 해본 적이 없다.
출근 전 10분은 1초와 같고 퇴근 후에는 녹초가 되어 내 마음을 살필 틈이 없다. 그나마 출근길 지하철에서 종종 명상을 하곤 했는데 이것도 최상의 방식은 아니었다. (지옥철에서 명상이라니 정말 수련하는 기분이었다.) 이래저래 핑계를 대고 보니 화장실에서 명상을 가장 많이 했다. 업무 중 예상치 못한 일이나 상사의 무례한 발언으로 마음이 불안해지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달려가는 곳이 화장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장실이 최애 명상실이 되어버렸다.
사내 타 부서 담당자와 미팅을 앞둔 날이었다. 나의 기획안을 1:1로 설명하고 관련 업무를 요청하는 자리였다. 첫 회의 전, 가슴이 두근두근 불편하게 뛰었다. 이상하게 처음 보는 사람과의 회의는 항상 긴장이 됐다. 사실 처음 보는 사람이라서 긴장이 되는 건지 내 기획안과 나에 대한 평가가 두려운 것인지는 잘 구분되지 않았다.
회의 1시간 전부터 다른 업무가 손에 안 잡히기 시작했다. 10분 단위로 모니터 하단의 시간을 체크했다. 벌써부터 스몰토크는 어떻게 할지, 어떤 식으로 회의를 진행해야 자연스러울지 걱정이었다.
회의 10분 전 자리에서 일어나 나만의 명상실로 향했다. 몹쓸 짓을 앞둔 영화 속 빌런처럼 칸마다 아무도 없는지 확인하고 비장하게 가장 구석탱이 칸에 들어갔다.
변기통 뚜껑을 닫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들숨- 날숨-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가-
호흡을 하며 콧 속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숨을 느꼈다.
그러다 천천히 귓바퀴에 주의를 옮기고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콸콸콸 배수관에 물이 흐르는 소리. 화장실 밖 복도에서 들리는 말소리.
저 소리가 나쁜지 좋은지 판단하지 않고 그냥 들었다. 물소리는 멈췄다 다시 이어가길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