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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글몽글 몽구름 Oct 20. 2023

엄마, 아내가 아닌 나의 나흘간 이야기- (2/2)

셋째 날과 넷째 날. 주말을 마지막으로 일러스트페어를 끝낸 이야기.

주말이라 사람이 많을 것도 알았다. 나에게도 토요일에 오픈런해서 오겠다는 디엠도 왔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인원이… 이게 맞아?


참가자(판매작가)들은 9시부터 입장, 방문객들은 10시부터 입장인데 물론 금요일에도 먼저 와서 기다리던 방문객들이 있긴 했지만 토요일의 부일페 방문객들은 엄청났다


9시 전에 도착했는데 이미 대기줄은 만선이었다. (사진을 못 찍었다.) 작년 부일페 방문객으로 갔을 땐 금요일이었어서 체감을 못했나…. 토요일은 오픈하기도 전에 벌써부터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토, 일요일은 브랜드작가를 만나려는 찐 팬들이 많은 느낌이라 유명한 브랜드의 방문객들이 대부분일 거라는 경험자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나도 그날은 내가 좋아하던 작가님들 부스를 방문하려고 생각했으나 그분들은 이미 많은 팔로워 및 팬 분들을 보유하신 분들이 시기에 찾아뵙게 되면 줄 서서 기다리다 내 부스를 많은 시간 동안 비워둬야 할 것 같아 점심시간쯤을 노려보기로 했다.


그리고 방문객 오픈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고 그 많은 사람들은 경험자 작가님의 말씀대로 유명작가님들 부스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나는 내심 부러워하며 내 부스를 지키며 인스타 업로드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자, 그 많은 사람들이 겸사겸사 내 부스에도 방문해 주는 콩고물방문도 나에게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한바탕 오전시간대에 많은 사람들이 쫙 들어왔다가 오후쯤 빠지기 시작하고 좀 지났을 때 나는 내가 가고 싶었으나 좀 멀리 계시던 작가님들께 차례차례 조공드리러 방문하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봐 주신 작가님들도 계셨고 서로서로 조공교환도 하며 내 나름대로는 영광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잠시 한가해진 틈을 타 나와는 다른 종류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님들 부스도 보다 보니 나름 인풋도 되면서 다양한 소재들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토요일은 판매와 구매도 같이 즐긴 하루였다. 계속 눈길이 가던 부스 작가님과도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고 내가 좋아했던 브랜드, 그리고 새롭게 눈에 들어오는 브랜드마다 방문해서 소소하게 구매도 하고 뽑기도 하고. 또 뜻밖의 반가운 방문을 해주시는 작가님들과도 인사를 하며 토요일 하루동안 일러스트페어에 대한 경험치가 급작스레 올라가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여러 작가님들과 알게 돼서 좋았던 건 이미 다회 간의 여러 종류의 페어참여 경험이 있는 작가님들이 많으셔서 이번 참여가 처음이라고 하니 많은 정보를 알려주셨다. 다른 페어에 참여하셨던 작가님들은 이번 부일페와 비교해서 어떤지도 알려주셔서 나중에 내가 다른 페어에도 참여할지 안 할지는 내 몫이지만 그래도 어떤 페어들이 있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서 이런 조언을 해주신 작가님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뭔가 다 같이 캐릭터를 만들고 그림을 그리며 굿즈를 제작한다는 공통점들이 있어선지 얼굴을 맞대고 함께 대화하면서 특히 경험이 있는 작가님들이 나 같은 신생작가들에게 많은 걸 알려주려 하시고 알려주고 싶어 하시는 부분에서 고마웠고 더 가까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작가님들 특성상 (MBTI 무새 같지만) 나와 비슷한 N, F(예상) 분들이 많아서인지 (남편은 ST스타일이라 대화 느낌이 아예 다르다. 음 뭐 싫다는 건 아님.) 작가님들과 공통된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내 관심사의 폭이 더 깊어지는 것 같은 느낌으로 대화가 풍요로우면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새로우면서 좋았다. 친구들과의 대화와도 다른 느낌. 


그리고 첫째 날 실내가 건조해선지 수분보충을 못해준 탓인지 감기기운처럼 목이 아프길래 둘째 날인 금요일 매장 내의 카페에 에이드 종류만 있길래 혹시 따뜻한 차로 만들어 주실 수 있으신지 죄송하다는 인사를 거듭드리며 목이 아프다는 이유를 들어 설명하자 직원분들이 기꺼이 만들어주며 그중 특히 한 직원분의 “작가님, 빨리 나으세요! 파이팅!!” 이 말 한마디가 내 마음속 봄날의 햇살처럼 파고들어 페어기간 내내 매장 내 카페를 적극 이용했었다. 


토요일 역시 중간에 방문했더니 오늘 목은 괜찮은지 물어봐주는 배려에 또 마음 찡 하며 감동했지만 티를 안 내려고 엄청 애쓴 것 같은데 잘 됐는지는 모르겠다. 갑자기 든 생각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에게도 이렇게 따뜻하게 마음 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아직 이 사회는 아름답다고 혼자 감동했었다.


문득 주부로서 폭 좁은 인간관계만 맺고 살다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삶을 좀 더 충만하게 해주는 아주 긍정적인 경험을 하나 획득한 느낌이었다.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다가 오랜만의 이런 따뜻함을 느껴본 것 같았다.


아무튼 일러스트페어의 셋째 날을 보내고 집에 갔더니 아이들은 나를 기다렸고, 왠지 워킹맘의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내 일 한다고 일찍 나가서 늦게 돌아와 아이들을 보니 이뻐 보이기만 하고, 같이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해지는 기분이었달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토요일 밤을 보내니 다음은 일요일. 일러스트페어의 마지막 날이 밝아왔다.


일요일도 아침엔 토요일 못지않게 오픈전부터 방문객들의 대기가 엄청났다. 하지만 전 날 이미 겪기도 했고 일요일은 막상 토요일만큼 많지는 않았어서 오늘은 정리하는 날이구나 하는 본능적인 직감이 들이닥쳤다. 하긴, 목, 금, 토요일은 6시 마감이었지만 마지막 날인 일요일은 5시 마감이었다. 아마 시간이 아무리 해도 안 났던 분들이 일요일은 꼭 시간을 내어 방문했을 거고, 와중에 재차 방문하신 분들도 계신 느낌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번 페어에서 브랜드를 알리려고 나온 거기 때문에 열심히 홍보를 했다.

“안녕하세요-  몽글몽글 몽구름입니다! 인스타 팔로우하시고 스티커 받아 가세요!”

영업용 미소와 목소리로 친근하게(그런 느낌으로) 다정하게(.. 해 보였겠지?) 열심히 홍보했으나 토요일보다는 저조한 상태였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계속 홍보를 했고 그중엔 방문해 주시는 분들도 더러 계셨으나 일요일은 아무리 해도 마지막 날 같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다. 


점심을 아침에 챙겨 와 사람 없는 틈을 타 먹은 뒤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지인 가족들이 방문해 주었다. 지인찬스는 역시나 최고인 것이 뽑기도 구매도 다양하게 해 주었다. 그러고 있다 보니 우리 가족들마저 방문해 주었다. 온 김에 다른 부스도 둘러보고 구경하라고 하니 엄마 껌딱지인 우리 집 귀염둥이들은 내 부스에 있겠다고 해서 미리 여분을 신청해 마침 두 개의 의자가 있던 터라 아이 하나당 의자 하나에 앉게 하고 나는 나름대로 홍보를 계속했었다.


일요일은 이렇다 할 큰 일이나 특별한 일이랄 건 없이 마지막 날의 수순들을 밟고들 있었다. 어떤 부스들은 오전이 지나니 이미 정리하고 있었고, 어떤 부스는 이미 정리한 뒤 집에 간 부스들도 있었다. 아마 먼 데서 오신 분들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주변 작가님들은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라는 것에 한 번씩 (예의상일지도 모르지만) 놀라주시더니 귀엽다면서 구매도 해가시고 선물도 주셔서 아이들이 받은 것이지만 괜스레 내가 더 고마운 감정이 들었다. 그렇게 따뜻한 하루가 지나고 곧 부스를 마무리하고 남편과 부스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정리하기 쉽게 접어주고 부피 줄여주면 내가 알기 쉽게 분류해서 상자에 넣어 마무리했다. 


엄마로서, 주부로서 경력단절이 된 채로 (중간에 유튜브로 수익창출도 제법 했었지만 집에서만 작업한 거라 제외하면) 5년 반 만에 한 사회활동이자 경제활동이자 외부활동인 셈이었다. 사람들과 만난 지도 오랜만이었어서 말도 많이 버벅거리고 유명한 브랜드도 아닌 탓에 행사에서도 많이 묻혔지만 그래도 이런 큰 규모의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는 자체가 나에게는 좋은 경험이자 다양한 가능성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초반에 이야기한 것처럼 중간에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아, 페어참가를 그만할까 싶기도 했지만 그래도 찾아주는 분들이 계셨고 그것만으로도 또다시 무언가에 도전할 용기를 얻어낸 참이었다. 그건 어떻게 보면 옆에서 끊임없이 지지해 주고 자극을 준 남편 덕도 많았다. 그가 아니었으면 행사진행하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지출도 현실적으로는 스스로 해결하기에 어려웠을 거고, 육아와 가사에 지쳐 현실에 안주하고 싶었던 내 마음들에 의욕이 더 생기지 않았을 거다.


다른 지인분들도 이번 행사 참여하는 게 무조건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진 않을 거라며 끊임없이 참가하라고 지지해 준 그 마음들에도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아마 이런 고마운 사람들 덕이 아니었으면 어렵게 찾아온 이 기회를 날려버리고(행사일이 가까워져 올 때 갑자기 참여를 포기하면 뭔가 페널티가 있었다.) 이런 소중한 경험을 하지 못했을 거다. 


다시 난 주부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릴 거고, 제작할 거다. 그리고 사진 찍고, 홍보할 거고. 매일은 못하겠고 자주는 못하겠지만. 주부로만 존재하던 나는 역시 내 영혼이 충만해지는 일을 해야 나만의 색을 찾을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다.


아직은 여전히 팔리지 않는 비인기 작가지만, 머지않아 잘 팔리는 품절대란 인기작가가 되길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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