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은 건 대기번호 11번
(부일페=부산일러스트페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한 대로 한 번에 덜컥 붙지는 못했다.
첫 부일페 참가신청의 결과일은 2월 17일. 내가 받은 건 대기번호 11번.
문구작가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나는 부산일러스트페어의 규모가 어느정도인지 확실하게 알지는 못했다. 일러스트페어로서 규모가 어느정도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산에서 하는 일러스트페어는 시행한 지 얼마 안됐기 때문에 혹시나 바로 붙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보다 쉽게 도전한 것도 있다. 나름 내 캐릭터에 대한 애정하나만큼은 대단하기도 했고 큰 대회일수록 신인작가 비율도 정해져 있다고 하니 행운이 실수로 나에게 두걸음정도 다가와주길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신청을 하고 미술이나 디자인과 관련이 없던 내가 그림 관련 포트폴리오란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준비하면서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뿌듯함도 있었다. 그러고보니 떨어진다는건 아예 계획에 넣질 않았었네! 터무니없을 정도로 어이가 없다!!!
이 세상엔 나보다 잘하면서 더 열심히 노력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문구작가라는 카테고리 안에서도 다양하고 많을 텐데 왜 당연히 한 번에 붙을 거라 생각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 ‘신인작가의 비율’에 승부를 걸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대기 11번이었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나는 끊임없이 내 일을 하며 묵묵히 기다려보았다. 그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싶지만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라도 기다리는 마음.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 그래도 남아있는 작고 소중한 희망.
대기번호여도 아마 5-6번대 안쪽이었다면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었겠지만 11번이라니 애매했다. 전체 대기번호도 아니다. 내가 받은 대기번호는 같은 계열, 같은 경력 내에서의 대기번호였기 때문에 단순히 참가포기하는 사람이 11명이 생겨야 참석할 수 있는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절대 붙을 수 없는 번호가 아닌가. 어지간하면 부일페 같은 큰 행사에 참여하는 신인캐릭터 작가가 이 좋은 기회를 포기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서 희망을 가지고 기다렸다고는 하지만 반정도는 포기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사실 취미부자인 나는 타로카드도 취미로 하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 중에 타로카드 하는 사람들도 몇 있다. 기다리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사람들에게 타로를 봐달라며 그 사람들의 바쁜 일상에 무례를 범하기도 했는데 그 평온한 타로인들은 그때마다 일괄된 답변을 온기가득한 공감과 함께 내어주었다. 자그마치 두 달동안이나.
올해는 둘째도 어린이집에 보내게 되면서 조금 여유가 생긴 시간을 아이들에게 더 관심을 가져보고도 싶고 어린이집 운영이 궁금하기도 해서 학부모운영위원회를 맡게 되었다. (대단한 건 아니고 신청자 받을 때 신청하면 된다.) 분기별로 회의가 있으면 참가만 하면 되는 그런 감투를 쓰는 것인데 마침 4월 중순의 그날은 학부모 운영위원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쌀쌀하던 날씨는 따뜻하다 못해 벌써 여름인가 하고 생각하게 만든, 봄치고 많이 더운 날이었다. 학부모 운영위원회를 가기 위해 아이들 등원을 시킨 뒤, 나도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면서 그날따라 잘 들고 다니지 않던 업무용 서브폰을 챙겨나간 날. 왠지 긴장된 마음으로 어린이집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이 어느순간 멈추더니 서브폰이 갑자기 보고 싶어 집어 들었는데 웬걸. (나는 서브폰에 위젯으로 업무용 메일을 바로 볼 수 있게 위젯으로 빼 두었다.) 새 메일-부산일러스트페어-에 제목도 떡하니 참가확정메일이 와있는것 아닌가!?
길에서 소리를 짧게 꺅 지르다 말고 다급하게 메일을 탭 했다. 참가확정됐다는 내용의 메일을 들뜬마음으로 차분히 읽어 내려갔다. 너무 기쁜 마음에 아직은 여유 있던 입금 날짜보다 훨씬 빠르게 계약금을 입금하고 어린이집까지 조금남은 길을 가면서 나의 친애하는 타로지인들에게 당신들 덕분이라며 이 좋은 소식을 얼른 알려주고 행복한 마음으로 어린이집 운영위원회의를 마칠 수 있었다.
이때까지 심란하던 내 마음이 이후로는 조금 차분해질 수 있었다.
아차차! 그리고 이 소중했던 날 기억을 자세히 남길 수 있게 해 준 브런치에게도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