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뭐부터 해야 하지?
사실 일러스트페어 합격메일을 받고 순간 기쁘긴 했지만 시간이 잠시 지나고 바로 머리가 멍해졌다.
어… 뭐부터 해야 하지?
지금까지 수많은(=내가 좋아하는) 문구작가 및 사장님들의 유튜브, 인스타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큼지막하게 여러 품목을 그려보긴 했지만 막상 합격을 하고 보니 갑자기 겁이 덜컥 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큰 행사에 참가해도 괜찮은 걸까, 애엄마로서 육아에 충실할 것이지 너무 무책임하게 도전한 건 아닌가, 주변에 정보 주고받을만한 지인도 없는 주제에 겁대가리 상실한 건 아닐까 등등 불건강한 INFP의 어두운 면이 꿈틀거리며 커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얼른 준비하자, 이렇게 슬퍼하고 좌절하고 있을 시간에 뭐라도 하나 만들면 된다는 생각에 메모어플을 얼른 켜서 지금 제작할 수 있는 스티커 개수를 정하고, 평상시에 만들고 싶었던 품목들 중에서 가능한 것들 위주로 하나 둘 정하기 시작하자 금방 틀이 잡혀갔다.
대략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체크해 가면서 제작했던 것 같다.
사실 품목만 정해두고 계획 없이 오늘은 어떤 품목을 몇 시간 작업하고, 어떤 날은 또 다른걸 몇 시간 작업하고 이런 식으로 그날그날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완료된 내용만 체크하면서 일을 진행시켰던 것 같다. 나는 계획대로 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는 편이 효율이 훨씬 좋은 편이라서 그렇게 하긴 했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는 뭐 제대로 하나 싶을 순 있겠지.
특히나 나의 이 글이 일러스트페어를 처음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크게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큰 틀을 공유해 보자면 아래와 같다. (그래도 MBTI - P들끼리 통하는 암튼 뭐 그런 게 있다고 치자.)
1. 하고 싶은 품목 모두 리스트업 (다 할 수 없는 부분 감안하고 넉넉하게 여러 종류 생각해 두기)
2. 부스사이즈 확인
3. 제공데스크 사이즈 체크 (개수 및 배치 고려)
4. 데스크 위에 올릴 거치대 사이즈체크 (판매상세페이지 참고 - 데스크 범위 내에서 초과되면 안 됨.)
5. 거치대사이즈에 맞는 품목 (거치대는 내경까지 체크할 것, 그리고 굿즈들 사이즈 정하기)
6. 리스트업 중에서 가능한 종류들로 하나하나 준비해 보기(여기서 위의 체크리스트들을 활용했다.)
7. 품목별 종류 (엽서 몇 종류, 마스킹테이프 몇 종류, 스티커 몇 종류 등 구매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을 최소이상으로 준비하기)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다 보니 어느새 7월이 됐고, 샘플발주가 먼저 필요한 제품들은 샘플발주를 하기 시작했다. 스티커, 떡메모지들은 늘 맡기던 업체 색감을 알아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립톡, 키링은 그림만 잘 그리고 파일 접수하면 되는 거여서 어렵지는 않았는데(아이디어 내기가 쉽지 않아서 그렇지..) 마스킹테이프는 혹시나 내가 그린 그림에서 이음새가 끊기거나 어색하거나 하면 안 되는 거라 정말 밤에도 낮에도 눈알 빠져라 이어 보면서 그림파일에서 컬러링이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계속 확인하면서 작업했던 것 같다.
(육아하면서 작업하기란 정말 힘들다… 모든 워킹맘들 파이팅,,!!!)
스티커제작에도 당연히 심혈을 기울였지만 특히 그립톡과 마스킹테이프에는 진심이었다. 문구사장님들 모두 그렇겠지만 나도 내 나름대로 내 폰에 붙이고 싶은 그립톡, 내가 대꾸할 때 쓰고 싶은 마스킹테이프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준비하다 보니 엄청 대용량으로 제작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만들면서 올해 들어 가장 뿌듯했던 과정 중에 하나였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사실 그중 마스킹테이프는 몇 번씩 갈아엎기도 했다.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고. 실제로 마스킹테이프는 화지라고 하는 반투명의 종이테이프 같은 곳에 인쇄돼서 생각보다 색이 많이 연해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진하게, 그렇지만 내 브랜드에서 추구하는 색감인 파스텔톤을 지키면서 만들어야 해서 색감조정을 정말 몇십 번, 몇백 번은 한 것 같다. (미술, 디자인 전공자분들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업체에 파일 접수했다고 끝이 아니라 제작 전에 업체에서 패턴이 몇 회 반복된걸 미리 보여주는데 그걸 보면서 수정사항이 있으면 바로 또 수정했던 기억이 있다. 수정사항이 있을 때 바로바로 해주지 않으면 제작기간도 오래 걸리기에 문자 받으면 육아 중에도, 저녁준비 중에도 방에 들어가 잽싸게 맥북을 열어 작업하고, 또 올라오면 바로 확인하고. 이번 마스킹 테이프들에 전력을 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과장이긴 합니다.)
그렇게 준비한 제품들로 일러스트페어를 준비하다 보니 인스타홍보 및 중간 마켓준비를 못했던 건 많이 아쉬웠지만 제품 준비에 대한 아쉬움은 적었다. 다음 글은 일러스트페어 당시의 내 느낌을 글로 옮겨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