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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오톡방 12화

12. 탈방

40, 수진

by 장하늘

오톡방

(40, 수진)


12. 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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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벙개 이후, 수진에게 쏟아지는 메시지들

수진의 핸드폰은 쉴 새 없이 울렸다.

그녀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개인 톡을 보내왔다. 단순한 안부부터 노골적인 대시까지, 다양한 메시지들이 수진을 둘러쌌다.

노을: 타임, 안녕~ 나 벙개에서 본 노을 기억해? 다음에도 또 보자.

도브: 타임눕, 목소리도 듣고 싶네요~ 전화 한 통? ㅎㅎ

태양: 칭구? 오늘은 뭐해? 언제 술 자리 만들까?

마루: 타임? 나랑 커피타임?

수진은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뭐야…’

기혼방에서는 그래도 사람들 간에 어느 정도 선을 지키는 분위기였는데, 여긴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돌싱과 미혼들이 많다 보니, 수진을 대하는 태도도 더욱 적극적이었다.

벙개에서는 다들 그저 가볍게 웃고 떠드는 분위기였지만, 막상 개인 톡에서는 마치 서로에게 관심이 있는 듯한 메시지가 이어졌다. 수진은 조금은 들뜬 기분이 들면서도 동시에 불편함을 느꼈다.

'나는 그저 새로운 공간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었을 뿐인데.'

그녀는 몇몇 톡을 가볍게 답장하고, 몇 개의 메시지는 읽지 않고 넘겼다. 하지만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새로운 메시지, 예의라고 생각하며 수진은 답장을 이어갔다. 수진의 핸드폰은 끊임없이 울려댔다.

타임, 반가웠어! 심심할 때 언제든 콜해

타임눕, 오늘 뭐해요? 저녁에 한강 한 바퀴 돌래요?

타임눕, 솔직히 벙개에서 제일 매력적이셨음 ㅎㅎ 한 번 더 보고 싶어요.

처음에는 가벼운 안부 인사와 친근한 제안들이었다. 하지만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톡의 내용과 분위기가 달라졌다.

타임누나, 솔직히 누나 너무 좋아요. 하루 종일 생각났어요.

벙은 언제쯤 나오세요?

타임, 나랑도 놀타임.

타임눕 둘이 식사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으세요?

많은 사람들의 관심, 수진은 처음엔 가벼운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점점 부담으로 변해갔다.

톡에 예의상 답하면, 다시 또 오고, 짧게 답을 해도 대화가 끝나지 않았다. 상대방이 수진이 관심이 없다는 걸 모른다는 듯, 집요하게 대화를 이어가려고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수진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쉬었다. 그녀가 원하는 건 그저 새로운 사람들과의 가벼운 소통이었지, 이런 집착 같은 관계가 아니었다.

한두 사람이 아닌 여러 명의로부터의 개인톡이 의무감처럼 느껴졌다.

타임눕? 벙개 안와요?

타임누나, 인기녀라 이미 썸중?

수진은 순간 몸이 움찔했다. 단순한 관심을 넘어 집착에 달하는 듯한 톡 내용.

‘이건 아니다.’

수진은 톡을 보는 게 스트레스로 변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채팅방을 열었다. 기미돌방의 채팅창은 여전히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 저녁 한강에서 다시 한 번 모일 사람~~?

어제 벙개 나왔던 분들, 다들 분위기 너무 좋았어요. 오늘도 달려?

타임눕도 오실 거죠? 이번엔 빠지면 안 돼요 ㅎㅎ

사람들은 여전히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하지만 수진은 더 이상 그곳이 편하지 않았다.

수진은 조용히 방을 나가는 버튼을 눌렀다.

순간, 묘한 해방감이 들었다.

더 이상 쏟아지는 메시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원치 않는 대화에 억지로 답할 필요도 없다.

그녀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했다.

문득, 정리된 식탁처럼 깨끗해진 채팅창이 떠올랐다.

깔끔하고 조용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한 공간.

수진은 한동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결국 화면을 꺼버렸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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